[Preview] 동양, 여성, 서양, 남성

글 입력 2018.08.1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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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판소리를 애정하는 편은 아니다. 어쩌다 듣게 되면 흥겨움에 기분이 좋아지지만 따로 찾아서 듣거나 공연을 보러간 적은 아쉽게도 없다. 그래서 이번 문화초대가 판소리 공연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기대감에 부풀기보다 조금 망설여졌다. 익숙하지 않은 전통예술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아직 좀 어렵겠지, 생각하며 포스터를 봤다. 전통적인 느낌에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더한 포스터는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포스터 왼쪽 구석에 적혀 있는 한 문구에 눈이 갔을 때 난 몇 초 지체하지 않고 이 공연을 같이 보러갈 친구에게 연락했다.


오셀로 포스터.jpg
 

바로 이 문장이다: “동양 여성의 눈으로 새로 쓰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오직 눈길을 끌기 위해 만들어진 현란한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다. 줄거리의 꾸밈없는 요약일 뿐인 이 한 줄은 너무나 많은 물음표를 던지며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셰익스피어와 단이의 오셀로


원작 오셀로는 남성중심적인 사건과 세계관 속에 서사가 진행된다. 그런데 이 공연에선 여성 주인공이 여성적, 동양적 가치를 투영하여 오셀로를 재해석한다는 점과 우리나라의 전통예술인 판소리로 서양의 고전비극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너무나 신선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표현이 될지 정말 궁금해졌다. 상반되는 시대, 공간, 성별에서 극강의 신선함이 나오는 만큼 어쩔 수 없는 괴리감이 존재할 것인데 이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융합할지도 궁금해졌다.

서점에 가서 오셀로를 한 번 읽어봤다. 가족의 반대까지 극복한 단단한 사랑이 최측근의 음모로 인해 질투와 불신으로 이어지고 결국 모두 처참하게 무너지는 내용이었다.

<베니스 공국의 원로 브라반쇼의 딸 데스데모나는 무어인 장군 오셀로를 사랑하게 되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때마침 투르크 함대가 사이프러스섬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자, 오셀로는 이 섬을 수비하기 위하여 데스데모나와 함께 사이프러스로 떠난다. 오셀로의 기수(旗手) 이아고는 오셀로가 자신이 갈망하던 부관의 자리를 캐시오에게 준 데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계획한다. 사이프러스에 도착한 날 밤 이아고는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캐시오에게 일부러 술을 먹여 소동을 일으키게 하고 이 일의 결과로 캐시오는 부관의 자리를 파면당하게 된다. 이아고는 캐시오에게 데스데모나에게 잘 보이는 것이 복직의 지름길이라 일러준다. 그리고 오셀로에겐 캐시오와 데스데모나의 관계가 의심스럽다고 넌지시 말한다. 이아고의 말을 믿은 캐시오는 데스데모나에게 자주 찾아가 오셀로에게 잘 말해줄 것을 부탁하고 이를 오셀로가 몇 번 목격한다. 이아고는 자신의 아내이자 데스데모나의 하녀인 에밀리아에게 데스데모나가 오셀로로부터 선물받은 손수건을 훔쳐오도록 하고, 그 손수건을 캐시오의 방에 떨어뜨려 가짜 증거를 만든다. 각종 정황과 캐시오의 방에서 나온 손수건을 보고 질투에 휩싸인 경솔한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침대 위에서 눌러 죽인다. 그런데 결국 에밀리아가 모든 것을 폭로하여 오셀로는 슬픔과 회한으로 자살하고 이아고는 가장 잔혹한 처형을 받는다>



“아주 먼 데서 온 이야기.
그대 슬프고 잔인한 이야기 속 불쌍한 사람들아...”


오셀로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줄 여성은 19세기 조선의 기녀 ‘단’이다. 동양 여성이 오셀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뜬금없을 수 있지만 기방의 이야기꾼으로서 단이가 먼 곳에서 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충분히 개연적이다. 또한 판소리와 비극, 동 떨어져 보이는 이 두 장르는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판소리는 노래뿐 아니라 이야기가 중요한 서사적인 장르기에 오셀로의 긴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적절하고, 판소리 특유의 해학적인 성격이 비극적인 사건들과 위트있는 조화를 이룰 것 같다. 단이도 비극적인 이들에 대해 얘기할 때 딱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조소와 해학적인 느낌을 섞을 것이라고 한다.


사진2.jpg
ⓒ나승열 / 사진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서양에 오셀로가 있다면, 동양에는 처용이 있다. 이번 공연에서 처용 이야기를 통해 오셀로를 바라본다고 한다. 처용 이야기는 이러하다.

<처용이 집에 없는 틈을 타 역병귀신은 아름다운 처용의 아내를 보고 사람으로 변해 몰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 돌아온 처용은 이부자리 아래로 아내의 두 발 옆에 있는 큼지막한 두 발을 보았지만 화를 내긴 커녕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너무나 관대한 처용의 행동에 역병 귀신은 깜짝 놀라 뛰어나와 처용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오셀로와 처용이 완벽하게 비슷한 캐릭터였으면 꽤 재밌었을 텐데, 위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그렇지는 않다. 상황은 비슷하나 그 상황에 대응하는 모습이 다르다. 단이가 처용 이야기를 꺼내며 은근히 처용과 오셀로를 비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1.jpg
ⓒ나승열 / 사진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오셀로는 정동 극장의 “창작 ing 시리즈” 중 하나인 창작 공연이다. 지난 2월 공개적으로 열린 공모전에서 선발된 다섯 작품 중 하나라고 한다. 특히나 판소리는 전통 음악이기에 한국적이지 않은 것들을 접목시키기까지의 고민과 결심이 상당했을 것이다. 판소리 오셀로는 제목부터 남다르다. 서양의 고전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고 문화적, 장르적 괴리감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의미에서 판소리 오셀로는 창작, 그리고 창작극의 범위를 몇 걸음 더 넓혀 새로운 국면에 이르게 해준 것 같다. 얼른 공연을 보며 이 많은 궁금증들을 해소하고 싶다.





판소리 오셀로
- 2018 정동극장 창작ing 첫 번째 -


일자 : 2018.08.25(토) ~ 09.22(토)
 
*
09.07(금) ~ 09.09(일)
공연없음

시간
화-토 8시
일 3시
월 쉼

장소 : 정동극장

티켓가격
R석 40,000원
S석 30,000원

주최/제작
(재)정동극장

주관
(재)정동극장, 희비쌍곡선

관람연령
8세이상 관람가능

공연시간 : 80분




문의
(재)정동극장
02-751-1500





[강혜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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