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는 은유를 쓰지 않는다, 황인찬 「구관조 씻기기」 [도서]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은유를 쓰지 않는다.”
글 입력 2018.08.1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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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서 있는데
나무의 그림자가 떨고 있었다
예감과 혼란 속에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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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시인은 1988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다. 또한 <구관조 씻기기>라는 시집으로 제31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시인이다.

황인찬 시인은 현재 ‘는’이라는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발표한 시집은 첫 번째 시집인 <구관조 씻기기>와 <희지의 세계>가 있다. 황인찬 시인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간다. 우리가 익숙하다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자신만의 비현실적인 세계로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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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시인은 <구관조 씻기기>와 <희지의 세계>와 최근에는 <놀 것 다 놀고먹을 것 다 먹고 그다음에 사랑하는 시>라는 소 시집을 발표했다. 시집의 제목들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제목들이다. 그중에 <희지의 세계>라는 시집의 제목은 시인이 이자혜 작가의 『미지의 세계』라는 제목이 좋아서 가져다 쓴 건데 스스로 착각을 해서 미지를 희지로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려서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황인찬 시인은 시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시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럽 보인다
너는 은유를 쓰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시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한다면, 대부분 은유법을 사용한 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황인찬 시인의 시에서는 은유를 찾아볼 수 없다. 은유는 없지만 우리에게 익숙하고 당연하게 느껴진 것들을 자신만의 눈으로 바라보고 표현해낸다. 우리가 당연하게 시라고 생각했던 것들과 당연하게 시가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일을 시 속에서 한다. 황인찬 시인은 창작이란 깎아나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메시지를 깎지 말고 구조를 깎아야 한다며 구조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황인찬 시인이 시를 쓸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읽었을 때 바로 읽혀야 하지만 그것이 뭔지는 들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

황인찬 시인의 시를 읽으면 어떠한 고요함이 느껴진다. 시적 주체는 시안에 담긴 어떤 사건이나 관계 속에서 대상을 단지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접했던 시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묘사하기 위해 대상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했던 주체의 작용과는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거리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거리라고 할 수 있다. 황인찬 시인의 시를 읽으면 간결하고, 그 사이에 어떠한 공백이 존재한다. 그 공백들이 우리에게 당연하고 익숙한 모습들을 신비로운 비현실적인 세계로 만들어낸다. 황인찬 시인의 시에서 시적 화자는 시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읽으면서 독자들이 이래도 되는 걸까?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하는 시들이 많았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건조한 언어들로 그려낸다는 장점이 뚜렷한 시인이다. 그게 바로 황인찬 시인의 장점이자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사한 프레임의 반복’이나 ‘점착성 없는 건조한 언어’라는 스타일 상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비판도 들려오고 있다. 그런 이야기가 나온 이후로 황인찬 시인은 이제 관조는 여러 의미에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첫 번째로는 관조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사실 예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뭔가를 얻어내는 것이 시의 마술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뭐가 폭력이고 뭐가 폭력이 아닌지에 대해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누가 적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은 한참 전부터 나왔다는 의미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굳이 관조를 그만두고 싶은 이유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차유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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