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03. 그들의 '숨'에 귀를 기울이려면

글 입력 2018.08.17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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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는 청각장애인 작가의 일상과 더불어 장애인으로서 우리나라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는 이 웹툰을 퍽 사랑하는데, 간결하지만 힘이 있는 스토리텔링 방식이 너무도 좋고, 작가의 일상 자체에서 여러모로 배워갈 점이 많기 때문이다. 모든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강의(45화)'라는 제목의 에피소드인데 그중 교수님께서 언급한 '눈칫병'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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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 언급한 '눈칫병'은 곧 남들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시선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와 다른 것을 비정상적이라 규정하고, 나 또는 사회가 정한 기준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눈치'를 준다. 다름에 대한 배척의 시선이 아닐 경우에는 상대방을 동정하는 시선을 통해 '나는 그렇지 않다'는 안도감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한다.

이는 분명 우리가 바꿔나가야 할 태도지만 사실 나는 이에 대해서 비난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 역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조금이라도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선을 긋고 옳지 않은 시선을 던지곤 했고 그런 시선을 받기도 했다. 아마 당신도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다름'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정상'의 기준과 '다름'에 대해


'다름'에 대한 시선을 조금 더 연장해보자.

'프릭쇼(freak show)'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외국 영화를 종종 보다 보면 'Freak(괴물)'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가 있는데, 프릭쇼는 이러한 단어와 연결된다. 프릭쇼(freak show). 말 그대로 기형아 또는 괴물 같은 사람을 일반인에게 전시하는 쇼를 뜻한다. 프릭쇼는 약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을 비롯한 여러 서양 국가에서 유행했다.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모아놓고 전시하며 그 밖에 있는 나 자신은 정상적임을 위로하는 용도였던 것이다. 지금은 프릭쇼가 없어졌지만 미디어는 이를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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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릭쇼'라고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작년 12월에 개봉한 영화 <위대한 쇼맨>이다. 이 영화를 관람한 독자가 있다면 프릭쇼에 대해 상상하기 쉬울 것이다. <위대한 쇼맨>에서 소위 괴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영화가 끝날 때쯤 남들과 달라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하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며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이 영화는 다름을 개성으로 치환하며 차별을 없애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괴물로 불리는 이들은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고 천막에 격리된 채 공연을 지속한다는 점에서 기존 상황을 전복시키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또한 영화의 주인공인 '바넘'은 실제로 비정상적인 쇼를 비인간적으로 진행한 진정한 괴물(freak)이었기 때문에 영화가 그를 미화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다름에 대한 시선'은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오마이뉴스를 통해 '장애인 비하'와 관련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중증 발달장애인을 연기한 배우 신현준과 배우 조승우의 태도 차이에 대한 글이었는데,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에 출연한 신현준 씨가 자신이 연기했던 지적장애인 '기봉이'를 흉내 낸 것이 발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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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연기를 통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부분까지 끌어내며 관객이 특정 배역을 더욱 쉽게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경솔한 행동은 장애인 비하를 떠나 '다름'이 곧 '비정상'이라는 고정관념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 글을 작성한 기자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신현준 씨가 악의를 가지고 장애인을 희화화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우리 사회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부합하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장애인 친구가 없는 이유


우리는 왜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사회가 정한 '정상'이라는 기준으로 인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방적으로 격리돼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글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하던 중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버 활동을 하는 장혜영 씨를 알게 됐다. '장애인 동생과 나, 시설 밖으로 나오기로 결심했다.'라는 유튜브 영상을 시작으로 그분이 나온 영상을 몇 개 더 보게 됐는데 생각해볼 점이 많아 소개하려고 한다.

'생각많은 둘째언니'의 동생 장혜정 씨는 중증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 장혜정 씨는 무려 18년 동안 장애인 시설에서 살았는데 현재는 시설을 벗어나 언니 장혜영 씨와 함께 지내고 있다. 혜영 씨가 동생의 '탈시설'을 결심한 이유는 보호라는 명목하에 장애인들이 격리되고 차별을 겪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891회, '당신에게 장애인 친구가 없는 이유'에서 이에 대해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시설에서 지내는 장애인들은 격리되는 것과 동시에 '나 자신'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닌 수동적인 객체로 인식된다. 이는 2011년에 개봉한 영화 <숨>을 통해서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영화 <숨>은 전북 김제에 있는 '기독교 영광의 집'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장애인 성폭력에 중점을 두지 않고 주인공 '수희' 그 자체를 담아내는 데 주력한다. 영화는 관객을 수희 바로 옆에 세워두면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친절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그를 대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장애와 관련된 많은 영화가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을 양지로 세우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면, 영화 <숨>은 관객이 직접 사각지대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숨>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관객이 사실을 직면할 수 있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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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록 감독은 시사회 인터뷰를 통해 "수희를 둘러싸고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정작 수희는 자신의 일임에도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상황이 폭력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장애인을 약자나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보고, 자기결정권이 없는 것에 대해 관객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처럼 영화는 장애인들이 시설 속에서 하나의 인격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옳지 않음을 전달한다.

이는 수희의 '숨'을 통해서 더욱 자세히 드러난다. 수희는 원활한 호흡이 어렵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하지만 영화 끝에 수희는 온 힘을 다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수희'라는 하나의 인격체를 빼앗긴 것에 대해서 강력히 저항하고 표현한다. 하지만 사회는 수희의 '숨'에 대해서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러한 장면은 사회가 장애라는 단어를 통해 장애인을 쉽게 규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행동인지 보여준다.

그들의 '숨'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사회가 오히려 보호라는 울타리 속에 장애인을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장애인을 더욱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법


장애인들은 격리하거나 제거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장애인을 치료와 격리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 그대로 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사회적 약자의 격리가 익숙한 사회에 살고 있기에 인식의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당장 어느 기준에서는 나도 약자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에 그저 사회의 '정상적인' 기준에 맞춰 격리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시작이 될 수 있다.'생각많은 둘째언니'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을 통해 전했던 말이 기억난다. 단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사회의 견고한 구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개인의 인식 변화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시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각지대]의 목표도 이와 같다. 이 글 한 편이 당신의 가치관과 행동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 글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닐까. 나의 한없이 부족한 이 글도 당신에게 하나의 영향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조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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