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일은 그대들의 내일을 지켜주는 것 [기타]

글 입력 2018.08.17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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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웹툰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 웹툰을 접하게 된 것에는 웹툰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동생의 영향이 컸다.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자취방에 TV가 없으니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는 것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되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작년부터 매회 정성을 다해 읽고 있는 네이버 웹툰 <내일>을 소개하려 한다.

<내일>은 저승을 운영, 관리하는 ‘주마등’이라는 회사의 ‘위기관리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웹툰이다. 위기관리팀의 팀원들은 부정적인 기운이 높은, 즉 자살의 위험에 놓인 사람들을 찾아가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여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하는 저승사자들이다. 세상에. 저승사자가 죽은 이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니. 비현실적인 설정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읽어보면 매 에피소드가 우리사회의 문제를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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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2003년 이후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로, 한국의 자살률(2016년 기준 10만 명당 25.6명)은 OECD 평균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이다. 달리 말하면, 하루 평균 36명 정도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를 단순히 의지가 약한 몇몇 이들의 선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여전히 자살에 대한 국가적, 국민적 의식은 미비하기만 하다.

웹툰 <내일>에서는 저마다의 고통으로 자살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왕따’를 당하는 학생, 재수생이 겪는 좌절감과 무기력함, 아내를 잃은 남편의 슬픔, 혹독하게 체중을 관리하는 직장인, 6.25 참전용사 할아버지. 그리고 현재는 성폭행 피해자의 에피소드가 진행 중이다. 사고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낸 남편의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사회에서 구조적, 거시적 맥락과 충분히 연결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향한 차별과 혐오, 느린 속도를 죄악시하는 것, 개인의 신체를 바라보는 사회의 천박한 시선과 자기검열, 나라를 지킨 자와 남을 해친 자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 성범죄에 대한 이중 잣대까지. <내일>의 작가는 어느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고 우리사회의 문제를 구석구석 짚어낸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우울의 원인을 개인의 성향이 아닌 사회문제로 환원한다. 이 웹툰은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써 사회현실을 철저히 반영하고 부조리와 모순에 대항하며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개인적으로 더욱 와 닿았던 에피소드들이 있다. 나 또한 같은 여성으로서, 마른 몸에 대한 강박을 앓는 ‘예나’의 에피소드 ‘미스코리아’와 성범죄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죄책감과 공포에 내몰린 ‘윤희’의 에피소드 ‘숨’이다. 라마 작가도 이들 에피소드에서는 우리사회의 여성들이 길거리나 사이트의 댓글 등 일상에서 경험하는 차별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특히 ‘숨’ 에피소드에서는 인터넷 상에서 피해자의 옷차림, 화장 등을 지적하며 사건의 책임을 전가하는 2차 가해의 현장을 보여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소름이 끼쳤다. 이처럼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내몰린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과연 이들의 죽음은 자살일까? 사회에 의한 타살이 아닐까?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인 설정


우리가 상상하는 저승사자는 검은 갓을 쓰고 긴 두루마기를 걸친 남성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웹툰의 저승사자는 개성 있고 화려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힙한 여성 옥황상제의 모습이다. 그녀는 긴 머리와 구릿빛 피부를 가졌고, 볼드한 액세서리와 화려한 네일을 보여준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재치와 익살을 통해 독자들도 하여금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거두어지지 않은 위기관리팀 저승사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또 왜 저승사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떡밥도 기대하길 바란다.


 
날카롭지만 따뜻한 대사


매회 자꾸 눈물이 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자살을 결심하게 된 것은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저승사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척척 해결했다면 상당히 몰입도가 깨졌을 것이다. 어찌 됐든 저승자사는 삶의 영역에 개입할 수는 없기 때문. 위기관리팀은 자신의 경험으로 말미암은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를 통해, 혹은 주인공들 곁에서 살아갈 힘을 인물을 통해 자살을 막는다. 사실 죽지 못하게 한다기보다는 다시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도와준다.


“내가 언제 너 강제로 저승에 끌고 간댔니? 네 얘기 들으러 온 거라고 말했잖아.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에게


“너한테서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빠져 무기력해진 예전의 내 모습을 봐서 그랬나 봐. 많이 힘들었지. 혼자 낙오자가 된 것 같아서 무서웠을 거야.” - 좌절에 빠진 재수생에게


“그런 내게, 이 세상에는 내일이라는 날도 온다는 것을 알려준 너” -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 여자친구에게


“스스로를 구해낼 수 있는 건 결국 환자분 자신뿐입니다.” -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섭식장애를 앓는 여성에게


“젊은 날의 그대는, 그 무엇보다도 고귀한 선택을 하였다. 그 선택으로 인해 그대는 많은 것을 잃었으나,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내었고, 지금의 오늘을 있게 하였지. 이 땅을 보우하는 존재로서, 그대와 같은 고귀한 영혼을 마주할 때마다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구나. 그저 방관할 수밖에 없는 나를 대신하여 어제를,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켜주어서 고맙다.”

“모든 사자들은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명예로운 호국영령에게 묵념하라.” - 6.25 참전용사 할아버지에게


이러한 대사는 결국 우리가 가져야 할 애정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로써 자살에 대한 사회의 책임과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이해와 인정을 촉구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 스스로에게는 얼마나 엄격하고 관대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나에게 <내일>은 주말의 끝인 일요일이 아쉽지만 기다려지기도 하는 작은 이유가 되었다. 이 웹툰을 보는 시간만큼은 내 삶과 존재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회차가 업데이트되기를 기다리는 시간까지도 참 따뜻하다. 나에겐 비록 <내일>의 위기관리팀과 같은 저승자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험난한 세상을 같이 살아내주는 내 주변의 모든 이가 내가 살고 싶게 만든다. 그들 덕분에 나는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이 글과 웹툰을 보는 당신의 내일도 안녕하길 바란다.






[최희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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