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끝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8.1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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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사이 쌀쌀해진 날씨로 인해 2년 전 겨울에 봤던 한 작품이 떠올랐다. 빗속에서 떠오르는 해처럼 6월이 배경이지만 겨울과 잘 어울리는 미묘한 공연이었다. 매서운 추위를 메꿀 만큼 따뜻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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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줄거리>

머지않은 미래, 낡은 로봇 전용 아파트에는 버려진 오래된 ‘헬퍼봇’들이 살고 있다.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었지만 주인이 없는 헬퍼봇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그 아파트에 사는 ‘올리버’는 주인이자 친구 ‘제임스’가 오기까지 기다린다. 어느 날 그는 이웃집에 사는 헬퍼봇 ‘클레어’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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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아련한 아날로그 감성


공연장 위 무대는 1980-90년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아날로그 소품들이 가득하다. 올리버의 일상을 설명해주는 장면에서 그는 인간처럼 매우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레코드 음반을 듣고 친구 화분과 대화를 하며 정기적으로 잡지를 구독한다. 기술이 더욱더 발전해있을 미래에 음악 어플리케이션과 전자책 등의 편리한 물건을 로봇이 사용하지 않으니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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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감성으로 가득한 무대 덕분인지 등장 로봇들은 기계가 아닌 순수한 아이처럼 보인다. 이것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장면은 올리버와 클레어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종이컵 전화를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누구나 해봤을 놀이. 그러나 자라고 어른이 되면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아련한 옛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미래가 상기시키는 과거는 문맥으로만 읽으면 의아할 수 있지만, 직접 보고 들으면 그 느낌이 무엇인지 한순간에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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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왜 사랑했을까


작사·작곡을 담당한 박천휴와 윌 애런슨(Will Aronson)은 이 극의 주제를 ”끝이 있는 사랑, 우린 왜 사랑했을까?“라고 말했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낡은 로봇들에게 사랑은 무의미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다른 이를 만나고 사랑하다가 헤어지는 것은 고통스럽다. 게다가 언젠가 끝을 맺으니 헤어짐의 상처는 필수불가결하다.
  

너와 나 잡은 손 자꾸만 낡아가고
시간과 함께 모두 저물어 간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해 사랑하려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을 거야
-<어쩌면 해피엔딩>, 그럼에도 불구하고 中

 
그럼에도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나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끝이 두려워 시작하지 않는다면 사는 데 어떤 즐거움과 깨달음이 있을 수 있는가. 로봇들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벗어나 지금껏 본 적 없는 곳에 가게 된다. 클레어의 노크로 시작된 그들의 만남은 삶의 의미를 찾는 여행으로 이어진다.

올리버와 클레어는 사랑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그들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필자도 사랑과 인연의 의미를 고민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시작하는 11월, 그들을 다시 만나러 가야겠다.

 
-사진 출처: Will Aronson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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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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