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우림과 뷰렛, 자색 빛의 멜랑콜리 [음악]

보라색은 고고히 그러나 묘하게 빛납니다.
글 입력 2018.08.17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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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보!”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 서울에서 전학 온 여자애가 하이얀 조약돌을 남자 주인공에게 던지며 하는 말이다. 소나기를 맞은 소녀의 입술은 보라색으로 물들어 갔고 우리는 그것이 죽음의 암시임을 배웠다. 아련한 감정은 아직까지 오묘하게 남아있으나 보라와 그 비슷한 계열의 색은 기억 속에서 우울, 고통, 비극, 분노 등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남았다. 자우림과 뷰렛. 두 그룹의 이름 모두에는 자색이 들어간다. 자우림(紫雨林)은 자색 비가 내리는 숲, 뷰렛(Beautiful Violet)은 아름다운 자색이란 뜻으로 둘 모두 여성 보컬의 목소리로 자색의 감성을 노래한다. 보컬 김윤아를 필두로 최근 정규 10집을 발매한 밴드 자우림과 2018년 솔로 앨범을 발매한 뷰렛의 보컬 문혜원(예명 문정후)과 밴드를 하는 모두의 기억에 남아있는 뷰렛의 명곡 ‘거짓말’. 이 둘에 대한 설명은 더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유명하고 아름다운 밴드이기에 여기서는 그들이 노래하고 싶었던 자색, 바이올렛의 감성에 집중하려 한다.

며칠전 진행된 2018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자우림을 만나볼 수 있었다. 첫째날인 금요일의 헤드라이너로 참여한 자우림은 데뷔 후 20년이라는 시간의 내공을 보여주었다. 자우림이 출연한지 벌써 오년이나 지난 티비 프로그램 SNL에서는 유머러스하게 이선규(기타), 김진만(베이스)은 자우림에 김윤아를 빼면 아무도 몰라보는 아저씨 조합이라 했는데 이런 발화가 역시나 유머로 느껴질만큼 그들의 라이브는 대단했으며 연주 실력 또한 빼어났다. 마흔 다섯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김윤아의 방부제 미모는 뱀파이어를 연상케했으며 앵콜곡인 스물 다섯, 스물 하나가 나올 때까지 곡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맥주 많이 드셨냐는 여유가 넘치는 김윤아의 인사부터 락페에는 흔히 볼 수 있는 관객들의 깃발에 “우리 자우림 깃발 어딨어 없네 시발”같은 이선규의 재치있는 입담 그리고 이십년 넘게 선규와 친구라는 김진만의 진언까지 어른들의 오래된 감정의 폭을 볼 수 있었다. 김윤아는 8집 이후부터는 자우림이 이제 방방 뛰는 노래나 신나는 노래를 마냥 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그녀와 그대들의 나이가 마흔에 접어들면서 쉬이 평가할 수 없는 감정이 영역일테고 데뷔 이십년이 지났지만 조용필의 오십년을 보며 나대지 말자는 그들의 마음가짐처럼 역시 다양한 감정들을 포함하고 있을 보라색이 보였다.


자우림 - 샤이닝


네이버에서 자우림을 검색하면 나오는 곡은 291개이다. 그대들이 직접 만든 앨범뿐 아니라 나는 가수다 같은 경연에 참여한 곡들까지 포함된 것이고 온라인으로 발매되지 않은 것들도 있을 것이라 어림 잡아 삼백 개의 곡이 발매된 것이다. 삼백 개의 곡은 삼백 개의 이야기를 필히 담고 있을 테고 자우림의 노래는 그들이 스스로 작사, 작곡한 작품들이다. 힙합 아티스트의 자존심은 자기네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아이덴티티, 고유성에 있는 것이기에 타인의 랩을 따라하는 것을 일반적이지 않은 것으로 본다면 밴드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과 더불어 다른 이의 곡도 자신들의 스타일로 만들어내는 커버에 의미를 둔다. 김윤아는 그의 목소리와 그녀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언어들로 하여금 그녀가 다른 노래에 어떻게 녹여내 지는지 보고 싶게 했고 빨강과 파랑이라는 정반대의 색의 조합이 보라색인 것처럼 자우림은 정반대의 감정과 감성을 풀어냈다. 이후에 비교가 이어질 것이지만 자우림의 자색과 뷰렛의 자색은 그 정념의 결이 다르다. 색의 농도로만 보자면 뷰렛의 자색이 더 깊은 자색을 띤다. 자우림의 자색은 보라색이지만 뷰렛에 비해 더 대중성을 띠고 그들의 보라색은 충격과 공포라기보다 새로움과 파격이다. 앨범에 수록된 다양한 곡들은 그 곡의 진행과 가사에 새로움을 보고 파격적임을 볼 수 있으나 자우림은 어딘가 존재하는 선을 넘지는 않는 기분이다. 그들은 보라색이라는 감정을 성숙함으로써 유연하게 다루는 것이라는 것이 적확한 표현일테고 그들이 보라색이라는 감정에 휘감겨 사로잡히지는 않는 것이 자우림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감히 표현하자면 자우림은 고전주의고 뷰렛은 낭만주의랄까. 자우림은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가상을 아직 설명 가능한 이성의 영역으로 남겨두었고 그 감정을 잘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뷰렛은 그들의 곡 제목처럼 ‘낭만적 편집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자우림 또한 자색이자 보라색이기에 검질긴 표현들을 곡에 담아내고 거리를 두고 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그러나 자우림은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증상을 설명해낸다. 그리고 때로는 역설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노래를 하자는 여분을 만들어내면서 다양하며 정반대의 모습들을 빚어낸다. 앨범을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자면 각각의 개성이 넘치지만 그들이 공연을 구성해내는 모습들을 보며 자우림의 역사를 감히 무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으나,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으로 눈물닦기’ 같은 해학을 말하여 냄을 읽어낸다.


뷰렛 - 거짓말


뷰렛은 자우림과 비교했을 때 얼마만큼 진하고 농염한 자색이길래 이런 비교를 하는 것일까. 이해하기 위해 믿는 것인가 믿기 위해 이해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쉽사리 놓을 수 없다. 하지만 자우림의 자색이 파격이라면 뷰렛의 자색은 격파였다고 감히 말을 전한다. 이것은 철학자들의 철학자인 박동환의 개념을 빌려오는 것이며 그의 저서 ‘X의 존재론’ 내용에 기원을 둔다. 그의 제자이자 멜랑콜리를 풀어내는 철학자 김동규는 다음과 같이 미지의 존재 X를 해석했다. 파격은 일반자 X에 포박되지 않고 조롱하듯 탈주해가며 기존 체제, 현행 질서를 부정하고 유전자와 개체에 담겨있는 영원의 기억에 의존하여 스스로를 철저히 내려놓는 것이다. 그러나 격파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파국과 대격변이자 개체가 세계를 대하는 것이 아닌 세계가 개체에 엄습하는 불시의 만남이라고 설명한다. 이 난해한 철학적 개념의 적용은 사실 자우림과 뷰렛에게 적용하기에 적확한 설명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뷰렛의 ‘웃지 않는 공주’는 그들의 핵심을 관통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뷰렛은 이 곡으로 2009년에 아시아 14개국 37개 팀이 참여한 경연대회 '수타시'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곡의 라이브 영상은 뷰렛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 노래가 노래를 부르게 함을 연상시키고 그녀마저 어떤 기운에 사로잡힘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자우림과 달리 뷰렛은 조금 더 세간의 고정적인 보편자로부터 멀어져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지 않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거짓말’의 가사는 순수하고 초연한 아름다움을 나타내지만 다른 뷰렛의 다른 노래를 듣고 이 노래를 본다면 뷰렛을 순전히 마냥 아련한 마음으로 들을 수 만은 없다. 뷰렛의 보라색은 더 색 자체에 집중한 것이고 선명한만큼 명확하게 더욱 느껴지는 순수함이다. 우는 기타와 함께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뷰렛의 모습에 사로잡힌 것이라 밖에 더할 것이 없다. 예술은 기술적 의미의 테크네와 더불어 초자연적 영역의 포이에시스도 포함하는 것이니 말이다.


뷰렛 - 웃지 않는 공주


뷰렛의 보컬 문혜원은 중성적 느낌이라는 문정후라는 예명으로 이번 해 초에 솔로 앨범을 냈다. 그녀 스스로 뷰렛의 앨범과는 결이 다른 음악이라 하였고 김윤아의 솔로 앨범도 자우림의 색과는 다른 그녀 고유의 목소리를 담아냄을 느낄 수 있다. 자우림의 멤버 김진만이 말하였듯 “자우림의 화자는 무언가를 갈구하지만 그걸 이룰 수 없는 성별, 나이, 국적이 불분명한 청년이다”. 문혜원의 솔로 앨범은 또한 서슬퍼런 감성 혹은 정념으로부터 벗어나 조금 더 자신의 소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여기서도 김윤아와 문헤원은 대비가 된다는 것이다. 둥지를 벗어나 스스로의 이야기를 한다하더라도 그녀들의 역사는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 의지와 성향 차이를 보인다. 날 것 그대로의 표현에 따라 관조와 관망 그리고 서술에 뛰어남을 보이는 김윤아와 ‘대항해시대’처럼 방향을 제시하고 나아가려하는 문정후. 어느 쪽이 되었든 서로의 모습은 그리고 우리들의 모습은 이동진의 ‘라라랜드’ 해석처럼 미아 - 이름을 불러주는 자와 셉 - 방향을 제시하는 자 같이 보인다. 보라색의 본질은 사실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머릿속에만 보라색이라 불리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농도와 채도가 다른 각각의 보라색이 김윤아와 문혜원을 채색한다. 둘이 담아내는 자색 빛깔의 멜랑콜리는 분명 그 성질이 다르고 다른 만큼 다채롭게 펼쳐낸다. 자색 빛의 비가 내리는 숲은 가랑비이기도 장대비이기도 했으며 아름다운 바이올렛은 빛나는 보석처럼 그러나 격변을 가져오는 보석처럼 아름답게 혼자 빛나기도 한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김윤아, 봄날의 기억

-화려하게 황홀하게 섹시하게 천박하게 빛나는 가짜 보석 새빨갛게 새빨갛게 새빨갛게 언제나 새빨간 가짜 꽃 깊은 잠을 깨어야 해 이젠 진실을 봐야 해 날 깨워야 해. 뷰렛, Violet

타성에 젖는다라는 말은 감정에 무뎌지거나 반복되는 일에 더 이상 감흥이 없어짐을 뜻한다. 매너리즘을 뜻하는 말이기도 한 이말은 다시금 해석하면 구조와 세계 속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자 어느샌가 던져져 있는 것이 된다. 타성(惰性)을 타자성(他者性)으로도 만드는 이 두 예술가의 신비한 순간 속에서 이 성질이 어떻게 해결되든, 아니면 해결하려는 것이 있든 없든 자색의 감정은 김윤아의 모습으로, 문혜원의 발화로 우리에게 전달되어 왔다. 종국에는 사랑을 말하는 음악에서 둘은 다른 자색을 보고 다른 그림을 그려낸다.


[김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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