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춘향에 대하여 [공연 춘향]

글 입력 2018.08.1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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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에게 연극을 보자고 하는 건 주로 나기에 연극을 보러 가기 전 연극에 대해 조잘조잘 설명을 해주는 건 내 몫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극은 설명이 필요 없었다. 연극을 보러 가면서 나는 남자친구에게 오늘 보러 가는 연극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고 그는 춘향이라고 답했다. 그 답보다 명료하게 연극 춘향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극을 보고 난 후 그와 나는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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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과 몽룡

 
우리가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춘향, 하지만 떼아뜨르 봄날의 춘향은 전형적인 춘향과는 너무 달랐다. 우선 춘향을 맡은 배우가 그렇다. 춘향의 극 중 나이는 10대인데 연륜 있는 배우가 춘향역을 맡아서 이몽룡과 변사또가 춘향을 처음 만났을 때 “너가 춘향이냐? “이라고 묻게 만든다. 처음엔 왜 춘향의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배우를 캐스팅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는데 춘향의 대사와 행동을 보면서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춘향은 그 나이 또래에 맞지 않게 성숙했다. 사실 소녀란 그렇지 않은가. 겉으론 어려 보이지만 속에는 자기만의 세계와 극에 나온 것처럼 19세 요소를 포함한 수많은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 존재다. 또한 이수인 연출가가 여성캐릭터의 멜랑콜리함을 표현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이춘희 배우가 그런 점을 잘 연기해 이 캐스팅을 이해하게 되었다.

춘향 캐릭터도 춘향 캐릭터지만 나에겐 이몽룡 캐릭터가 강렬하게 남아있다. 이몽룡 역시 우리가 생각하던 전형적인 이몽룡과는 달랐다. 그는 상당히 유약해 보였고, 서울로 떠날 때 계속 미안하다고, 기다려줄 거냐고 하는 모습이 찌질하게 느껴졌다. 어쩜 그렇게 여자의 마음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저런 몽룡이라면 춘향이 변사또로 갈아타는(?) 건 매우 타당하게 느껴졌다. 홍보 포스터에도 나와 있는 춘향을 처음 본 후 이몽룡이 한 대사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어쩜 이렇게 예쁠 수가
어쩜 저렇게 예쁠 수가.
아니 어쩜 저렇게 예쁘고
예쁘고 또 예쁠 수가.
끝났어. 내 인생은 이제 끝이야.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이 대사를 뱉을 때의 이몽룡은 영혼이 없어 보였다. 저 대사를 사랑에 불타는 어조로 얘기했다면 대사 자체가 부담스럽게 다가왔을 텐데, 담담하게 내뱉는 이몽룡의 모습은 베르테르 같기도 했다. 워낙 몽룡을 맡은 배우가 연기를 잘해주셔서 커튼콜 때 이몽룡 역을 맡은 배우를 다시 보니 약해 보이는 느낌은 들지 않고 오히려 훈훈해 보였다. 기존 포스터에 있는 분과 다른 분이 연기했는데 원래 배우의 공연을 보지 못했지만 내가 관람한 배우가 연극 <춘향>의 이몽룡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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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과 기존 몽룡 배우 사진



떼아뜨르 봄날만의 것


공연의 대사와 의상 역시 강렬하게 남았다. 대사는 하나하나 곱씹는 재미가 있었다. ‘모자른 모자(母子)’같이 비슷한 말로 언어유희를 하거나 춘향 배우의 대사를 변사또 배우가 톤을 다르게 해 표현하는 등 재미요소가 많았다. 또 춘향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자기가 숙종 시대에 태어났다고 얘기하면서 ‘숙종이 나와 무슨 관계?’라는 대사를 뱉는다. 공연을 볼 당시에는 대사를 뱉는 상황이 재밌어서 웃게 됐는데 이런 빠르게 지나가는 대사를 통해 춘향이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의상 또한 프리뷰 때 공개된 한복 위에 코트를 걸친 것 외에도 현대적인 의상과 전통이 결합한 것들이 많았다. 특히 몽룡 어머니를 맡은 고애리 배우의 초반 의상이 배우와 너무 잘 어울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진한 보라색 한복에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배우의 인상, 목소리 톤과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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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에 대하여


춘향 연극은 절대 상상하던 연극이 아니었다. 우선 남자친구와 보러 갔는데 19세적인 요소가 있어서 상당히 당황했다. 극을 보면서 춘향이 많은 수의 이본(異本)이 있는데 그 중에 야한 것도 있다고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이 떠올랐다. 극을 처음 보고 난 후에는 혼란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해가 되는 것들도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결말과 달라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몽룡의 행동을 되짚어보니 춘향의 선택이 이해가 갔다.

여전히 변사또의 캐릭터에 대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 극이 압축되어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실험적이고 재밌는 극이었다. 확실한 것은 이 연극이 ‘춘향의 수많은 이본 중 하나‘로서만 미래에 남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많은 춘향이야기 중 독보적인 떼아뜨르 봄날의 춘향이 되기를 바래본다. 극을 보러 갈 관객들에게 감히 한마디 해본다. 공연을 보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극이 가는 대로, 대사가 흘러가는 대로 몸과 마음을 맡겨 따라가길.  떼아뜨르 봄날만의 특색있고 재밌는 대사를 놓치는 건 너무 아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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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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