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작부터 끝까지 신선한 자극을 선사하는 - 연극 춘향

글 입력 2018.08.2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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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꾸며진 무대 위가 인물들이 교차하는 저잣거리 풍경이 되기도, 춘향의 내면을 묘사한 듯 한 폭 추상화같은 모호함이 되기도, 신명나는 노래와 함께 라이브 뮤직을 감상하는 바가 되기도 한다. 연극의 표현적 한계를 넘어 색다른 연출을 보여준 춘향은 말 그대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 버라이어티 쇼였다. 전통적으로 해석된 절개 높고 지고지순한 춘향이 아닌 지극히 시니컬하며 도발적인 춘향의 모습은 특유의 연출과 어우러져 개성적 면모를 극대화한다.

남원골에 사는 춘향은 월매의 딸로 예쁘다고 소문난 소녀. 극은 이 춘향과 월매 등 등장인물이 나타나 의뭉스러운 독백을 읊는 것으로 시작된다. 덤덤히 흐르는 춘향의 자조적 대사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부심, 삶에 대한 유유자적한 태도와 고고한 프라이드를 보여준다.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캐릭터 특성을 관객에게 설명하듯 담담하게 표현해, 마치 이 이야기가 연극임을 알고 있는 양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절묘하게 무너뜨려 독특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후 등장한 몽룡은 어딘지 맹하고 허술해 보이는 낯으로 춘향에게 성큼성큼 걸어온다. 전통 한복도 아니고 촌스러운 현대 의복을 갖춘 그는 어딘지 순수하게 보인다. 그와의 만남에 있어서도 냉소적인 태도로 해볼까 말까 웃던 그녀는 몽룡과 정을 나눈다. 이 과정에서 마치 뮤지컬을 보듯 극 중 인물 한 명 한 명이 악기를 담당한 양 독특한 코러스로 효과음을 내는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무척 감각적이면서 야릇하게 여겨지는 동작과 소리 하나 하나가 무대 위를 가득 채운다.

진실된 사랑이었을까 한 순간의 장난이었을까 몽룡과 춘향의 사랑은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하는 몽룡의 사정으로 인해 잠시 헤어짐을 맞는다. 그리고 그 직후 춘향의 아름다움을 듣고 찾아온 변학도. 박력있고 올곧은  눈빛의 그는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 하나 춘향은 말 그대로 잠만 같이 자겠다 한다. 그리고 이 당황스러운 제안을 변학도가 매일 밤 지켜나갈 무렵 춘향의 마음에는 믿음직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작은 사랑이 싹튼다. 반면 오히려 변학도는 춘향이 그럴수록 마음이 점점 식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춘향은 충격받고 자신에게 형벌을 내리라는 자학적인 요청을 한다. 그리고 때마침 돌아온 몽룡은 고된 학업으로 인해 정신을 놓은 상태로 춘향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녀는 결국 낯선 남자의 부름을 받고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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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이면서도 그리 무겁지 않다. 몽룡이 미쳐 돌아온 상태에서도 그의 부모님이 가벼운 목소리로 첨언하거나 장난치듯 설명하는 등 참 멜랑꼴리하게 희화화한다. 선과 악의 경계를 파괴하고 아슬아슬한 블랙 유머를 지켜내면서 이 독특한 감성을 깊이 있게 아로새긴다. 이야기의 각 흐름이 텀이 짧고 단편적으로 흘러가기에 부담 없이 마치 토크쇼를 보듯 지켜볼 수 있었다. 특히 의상도 기억에 참 많이 남는데, 혼히 상상하는 전통 한복이 아닌 현대 의상을 믹스매치함으로써 시각적으로 와닿는 임팩트가 굉장히 컸다. 춘향전을 여러모로 뒤틀어버리는 듯.

연출과 표현은 물론이고 캐릭터의 개성도 유머러스하고 뚜렷해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아울러 극 내용상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춘향의 사랑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에 있었다. 춘향은 지금껏 네가 이 남원의 제일 가는 미인이냐 하는 질문만을 들으며 수많은 남자들을 마주해왔다. 모든 것에서 초탈한 듯한 그녀의 표정과 말투는 그 수많은 경험에 의한 담담함에서 비롯됨이 아니었을까 싶다. 수많은 여인 사이에 섞여 있을 때 날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네가 남원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춘향이냐 하는 말로 시작되는 사랑이라니. 본질 없이 그녀를 묶을 뿐인 속박이나 다름 없다. 사랑이 대체 뭐냐 하는 허무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연극이 끝난 후 시청각이 모두 춘향의 잔상을 그릴 정도로 강렬한 깊이를 전한다. 전통 이야기 춘향을 톡톡 튀는 개성적인 상상과 섬세한 연출력으로 새로이 버무린 연극. 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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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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