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꽁의 소견] 참을 수 없는 정의의 더러움 _ 영화 '킬링디어'를 보고

나라는 여과지를 빠져나간 작품들 01
글 입력 2018.08.2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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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은 심장을 수술하는 것이다. 사슴을 죽인다는, 라는 영화 제목 만치나, 자극적이고, 잔인하다. 일단 피가 나오는 영화는 거르고 본다는 신념이 있는 필자의 기준에서 그러했다. 물론, 영화의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이럴 수가 있다고'의 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들의 관계가 믿기지 않았고, 또 선택이 믿기지 않고, 상황이 믿기지 않는 것들의 연속이었다. 윤리와 도덕을 배우며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려온 우리네에게 그랬다.

꽤 많은 순간에서 인생은 그래왔던 것 같다. 분명하지 않은 것들의 연속이었고, 점철이었고, 또 그것들은 '얼룩진' 것이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그 중에서 '정의'로운 것은 있었을텐데, 하는 믿음까지 모조리 파괴시켜버리는 영화와 끝마침이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꽤 많은 순간에서 ‘정의’는 질문을 받아왔다. 일단 정의라는 것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자면, 사전의 말을 빌려 ‘진리에 알맞는 도리’, 즉 ‘옳은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옳은 것이 무엇인지, 존재하기는 하는 지, 그렇다면 어떤 모양인지 묻고 답하고 또 물어왔다. 그 대표가 몇 년 전 한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이렇게나 사람들이 철학에 관심이 많았는지 의아해 할 정도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사람들은 손을 뻗었다.

꽤나 오랫동안 필자는 진리와 정의와 그런 것들에 대해서 고민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것은 정의의 불분명하고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모든 것이 '불-(아닌)’인 것들뿐이었다. 이번 <킬링 디어>라는 영화도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 오늘은, <킬링 디어>의 이야기에 기인하여, ‘정의의 가변성’에 대해 논해보려고 한다. 그 ‘저스티스’라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나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내게 되어 미안하기도 하거니와, 또 <킬링 디어>에 대한 줄거리가 조금씩 글에 포함될 것임을 미리 일러두며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정의와 진리에 관한 필자의 생각이, 예전 누군가의 생각과 겹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알아볼 힘은 없으므로 서둘러 글을 시작하기로 하자.


※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킬링디어 >

외과의사 스티븐의 음주 수술로
아버지를 잃은 마틴은,
그의 가족에게 접근하여
아내, 아들, 딸 중 한명을 죽일 것이라며
희생양 한명을 선택하라고 경고한다.

이 사실을 알게된 그의 가족들은,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한 행동을 하나씩 시작한다.




불확실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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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하나 더 낳으면 돼"
- 애니 머피


정의는 정해져있지 않다.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이곳에서, '진리에 알맞는 도리'라는 정의가 확실히 존재하고 정해져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븐 이프, 그것이 누군가를 죽이고 살리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영화 <라이프오브파이>의 모티브가 된, 미뇨네트호 사건만 보아도 그렇다. 3명의 선원이,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가장 어리고 약한 선원을 죽여 그의 시체로 생명을 연장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유명성만큼이나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에 관하여 그들에게 처벌을 구할 수 있을 사람이, 그들이 행한 행동에 대하여 분명한 책임을 구할 수 있을 누군가가 있을까. 세상은, 정의는 그리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영화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애니 머피는,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위협에 놓이자 '아이는 하나 더 낳으면 돼, 우리는 젊으니까'하는 말과 함께 유혹의 몸짓을 전한다. 그녀의 행동이 옳지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래도 되나' 싶지만 그녀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정의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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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빠가 하라는대로 머리 잘랐어.
이렇게 편한걸 왜 안했었는지 몰라"


머리 길이에 관한 한, 자신의 기호를 따르던 밥은 결국 자신의 목숨을 손에 쥔 아버지의 기호를 따른다. 이렇게 정의는 누군가의 기호를 무시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킴의 경우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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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맨날 엠피쓰리를 잃어버렸었어.
밥, 너가 죽으면 내가 너 엠피쓰리 가져도 돼?"
 - 킴 머피


누군가 한 명은 죽어야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킴이 목전까지 들이닥친 죽음의 순간에서 택한 것은, 자신의 남동생이 죽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자신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온 사람이든, 자신이 지금까지 배워야하는 것이 '생명'을 존중해야한다는 이야기이든, 또, 자신이 엠피쓰리를 갖게 될 순간이 자신의 동생이 죽는 순간이든 아니든 말이다. 이렇게 정의가 가변적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정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가변적인 것


<킬링디어>에는 확실히 옳다고 할 만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그 무언가가 '옳고 그르다'고 선언하는 행위의 거만함을 내려놓자면, 도덕률과 윤리 법칙들을 통과하였을때, 걸리지 않을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틴은 자신의 아버지의 복수를 위하여 무고한 세 명에게 사지 마비의 벌을 내리고 죽음에 이르도록 목을 조여갔다. 스티븐은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는, 음주를 한 채 수술을 집도하여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간 비윤리적인 의사일 뿐이다. 이 영화의 제일 밑바닥에 있는 애니와 킴과 밥은, 가장 죄가 없지만 그래서 하나씩의 비윤리적인 행위를 행한다. 윤리와 비윤리가 무엇인지 이제는 분명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이게 가장 정의에 가까워요"
- 마틴


정의는 변하는 것이다. 이해관계에 맞게, 또 권력의 움직임에 의해. 그 절대적인 정의라는 것이 있는지는 몰라도, 일단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의란 언제나 가변적이고 쉽게 달라지는 것이곤 했다. 마틴의 말처럼, 가장 정의에 가까운 것은 선언하는 자의 힘에 의해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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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영화 속 엄마)는 마틴의 발에 입을 맞췄다. 그가, 자신의 목숨을 쥔 것 만으로 그녀에게 마틴은 절대자가 된 것이다. 정의로운 것이 무엇이든, 옳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곧 권력을 쥔 자의 것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으로부터 먼 옛날에 노예제는, 천동설은, 평평한 지구의 모양은 진리이자 정의이곤 했다. 아무리 정의롭다고 여겨지고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라도, 언젠가는 변할 수 있으며 그 변화에 많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직 권력자의 입김과 위협 조금이면 완벽할 뿐이다.



정의란, 모든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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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죽임을 당하는 밥


글의 처음과 끝에서, 수미상관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의가 무엇인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처음보다 한발짝 나아간 것은, 분명히 우리는 계속 그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그 불분명한 것의 윤곽을 잡기 위해 노력하며, 가장 ‘진리에 닿아있음'직한 생각을 행해야 바람직할 것이라는 것을 정의의 무서움 아래 알게되었다. 안그러면 '이래도 돼?'의 상황의 반복에 반복일테니까.

결국에 우리는 이 글을 읽어도, 미뇨네트호 사건의 선원들이, 스티븐 혹은 마틴이 옳았나 옳지 못했나 하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생각해야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 정의란 무엇인지. 킴의, 밥의, 애니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

정의가 뭔지 몰라도 계속 물음을 던지는 것은, 정의로운 것이 그 근처의 것들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마틴의 발에 입을 맞추는 일보다, 그 이상의 정의를 따를 방법이 있을테다. 아직도 무엇이 무언지 모르겠는 필자는 이렇게, 불분명의 세상에서 오늘도 불분명히 글을 마칠 뿐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오늘 그리고 내일 행하는 일들이, 그리고 당신들이 행동하는 것들이 괜찮고, 또 나름 맞는 것들이었으면 좋겠다.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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