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dreamer] 환상소녀 이야기 후기

당신은 어떤 환상을 보고 계시나요?
글 입력 2018.08.2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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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dreamer]
환상을 보는 소녀 이야기 (후기)

환상소우녀 후우기.jpg
 
부족한 실력이지만..  illust by 나영


첫 연재였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대강 구상하고 첫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를 처음 해 보는 나의 어설픈 실수였다. 거창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정확한 지향점 하나 제대로 두지 못했고, 하루하루 다르게 내 머릿속으로 유입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은 이야기를 산으로 가게 만들었다. 1, 2화 때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느낌으로 차분히 진행하다, 3~5회에는 갑자기 감정선이 격정적으로 변화하는 엄청난 실수 말이다…. 환상 소녀는 나의 학창시절을 투영한 캐릭터였고 그렇기에 갈수록 감정을 배제하지 못한 글쓰기로 변화한 것 같다. 5회라는 짧은 횟수로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던 내 욕심이 컸다. 이런 어설픈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 이 후기로나마 꼬여버렸던 '환상 소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눠 보고자 한다.



나를 가로막는 환경에 대하여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소녀’이다. 소녀는 아주 잘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상상’이다. 그것은 소녀를 즐겁게 만들었고 주변 사람들도 즐겁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소녀는 그것을 할 때 제일 행복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지도자(선생님)들은, 심지어 제일 가까운 부모님도, 소녀의 행복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소녀의 모습을 보기보단 미래의 소녀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한창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시기에, 어린 소녀는 그런 환경 속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놓쳐버렸다.
“사람들은 소녀의 행복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너무도 슬픈 이야기다. 아니,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교육환경이, 꿈이 있는 아이를 향한 초점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대학교는 좋은 교육 기관이다. 심화되고 전문적인 지적활동으로 사회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인재들을 배출해낸다. 그러나 우리는 대학을 순위로 보고, 필수라 칭하며, 강요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나는 이런 환경 안에서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시기에 자신의 모습을 무시해 버리는 경우를 보았다. 내 경험담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는 시간이 흐른 후 자기 자신에게 큰 타격을 주게 된다. 내가 `우리나라의 각박한 입시환경’에 대해서만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저 한 예시이고 사회가 나에게 알게 모르게 강요하는 억압은 수도 없이 많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진짜 나 자신을 억압하는 부조리한 환경에 처할 수 있다.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소녀는 ‘대학을 잘 가면 다 잘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 환경에 떠밀려 열심히 수능 공부를 했다. 그저 주위 사람들의 강요 때문이었다. 강요는 무조건 직접적인 것뿐만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러했기 때문에 소녀도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간접적으로 다가오는 강요는 작고 여린 소녀에게 더 큰 압박감을 주었다. 이 압박감 속에서 소녀가 이루어낸 ‘수능’의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리고 소녀는 환상을 꿈꿔 온 것 같다고 말한다.



환상

후반부에는 환상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소녀가 수능을 보고 난 후 느끼는 허탈함에 대한 ‘환상’
사람들이 소녀에게 벗어나라고 말하는 ‘환상’
그리고 소녀 자신이 꿈꾸고 있다는 ‘환상’.

우리는 모두 어떠한 목표를 좇아가고 있다. 입시라는 목표, 취업이라는 목표,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 각자의 인생 목표, 더 크게는 꿈. 비전. 이 목표는 내가 세운 것일 수도 있고 남들에 의해 세우게 된 것도 있을 것이다. 내가 꼭 이루고 싶은 것도 있고, 못 이뤄도 괜찮아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있고 귀찮아 게을러지는 것도 있다. ‘목표’라는 것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세운 것이지만, 우리는 목표 아래 너무도 다양한 태도를 보인다. 나는 이것을 ‘환상 (Fantasy)’으로 비유한다.
‘환상 (Fantasy)’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몽상.
(네이버 국어사전)
사람들은 목표를 세울 때부터 이루기까지 환상을 좇아간다. 시작도 하지 않거나 중간에 멈추게 된다면 그대로 환상으로 남게 되며, 그 목표를 이룬다 하더라도 내가 세운 환상과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만약 일치한다면, 그는 환상을 현실로 이루는 마법사이다.
​​

나는 지금까지 당신들이 기대하는
환상 속에서 자라왔어요.
당신들 덕분에 내가 꿈꾸던 환상은
이 기록장에서 멈춰 버렸지만요.
그런데 다행히도 저는 또다시
환상을 꿈꾸게 되었어요.
그대들이 나에게 강요하는 것이,
환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라 해도
나는 이제 내 환상을 따라가겠어요.
당신들은 내가 신기루를 본다고 말하죠.
헛된 몽상을 꿈꾼다고도 말해요.
아니요, 그건 신기루가 아니에요.
제 눈에는 보여요. 느낄 수 있어요.
지금까지 그대들이 만든
`진짜 신기루`를 따라갔기 때문에
이제는 신기루가 아님을 알 수 있어요.
아마 나만 느낄 수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내 환상이니까요.
당신이 저지할 여지가 없어요.
-환상 소녀 이야기 5화 中-


환상은 나만 볼 수 있다. 남에게 내 환상을 설명해 준다 하여도 남들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남이 환상을 심어 준다 한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기에 이루지 못한다면 배신감과 허탈함만을 느낀다. 소녀도 그랬다. 소녀는 결국 자신의 환상을 찾게 되었고 그걸 따라가기로 했다. 우리는 소녀의 환상을 보진 못했지만, 응원해 줄 수는 있다. 소녀는 그것으로 목을 축여가며 환상을, 오아시스를 찾아갈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환상을 보고 계시나요?



소녀의 P.S

나는 소녀의 p.s.가 정말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 소녀는 주변환경에 의해 자신의 환상에서 멀어지는 삶을 살아왔지만, 결국 그들에게 마저도 고마워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환상에 다다르게 되는 것도 결국엔 그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환상을 보고 좇아가게 된다면, 이제는 자신 앞을 턱하니 가로막던 커다란 돌까지도, 자신의 환상을 구성하는 풍경으로 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P.S.

있잖아요,
나만의 오아시스에 도착한다면
제일 먼저 당신들에게 깨끗한
오아시스의 물을 마시게 할 거예요.
결국, 그 오아시스에 도달하게 된 것은
당신들의 응원, 침묵, 또는 비판 덕분일 테니까요.
그리고 당신들에게 가서 환상을 보라고,
환상은 헛된 망상이 아니라고 당당히 말하겠어요.​





[정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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