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과 함께 1·2, 왜 살아야하는지 모른다고 외칠 때 [영화]

환생하기 싫다고, 살고싶지 않다고 외치는 그들을 보면서 삶의 이유를 깨닫다
글 입력 2018.08.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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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 편이다. 감독이, 연출가가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 같은 그 메시지가 거부감이 들었다. 공포영화를 보면, 밤새도록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할 정도로 오래 생생하게 기억에 남고, 슬픈 영화를 보면 누구보다 슬프게 울면서 혼자서 영화를 보는 일은 잘 없다. 누군가와 같이 볼때는 그 자리에 앉아서 끝까지 볼 수 있는데 혼자서 보면 10분, 20분도 보지 못하고 꺼버리거나 많이 봐봤자 한시간? 집중이 잘 되지 않고 더이상 뒷이야기도 궁금하지 않다.

딱 한번 혼자 영화관에 간 적이 있다. 너무 우울하고 지치고 더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 가장 빠른 시간대의 영화표를 달라, 고 해서 울적한 마음을 달랬었다. 그때 봤던 영화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1편에 이어서 나온 2편 영화였는데 1편을 보지 않은 나는 주인공에 대한 설명도 없이 진행되는 2편의 영화에 집중하기 힘들었지만 정말 아무 생각없이 1시간 반동안 영화를 보고 나왔다. 아마 이번에 본 신과 함께 1편을 보지 않고 2편을 본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 영화는 평소엔 정말 보지 않던 액션, 판타지류의 영화였는데 사람을 육류가공기에 넣고 분쇄하는 장면도 나오고, 기억을 잃어버린 주인공의 기억을 되찾기도 하고 그런 내용이었다. 뭔가 사진도 첨부하고 싶고, 이런 영화였다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기는 한데, 전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오는 길에 그 영화를 봤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우울함도 조금은 덜어졌다. 나에게 영화는 그저 그 정도의 역할이었다.

좋아하는 영화는 있다. 이미테이션 게임이나, 킬 유어 달링처럼 굉장히 잔혹하면서도 매력적인 것. 복잡하면서도 사실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다룬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영화를 찾지 못하고 찾을 노력도 하지 않아 영화라는 장르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올해 들어선 남자친구와 몇 번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봤다. 그래봤자 10편도 되지 않지만. 가만히 앉아 영화를 보다, 끝나자 남자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영화나, 예능같은 거 보는 거 좋아하는 것 같다."고.

내가? 우리집엔 tv도 없고, 예능은 사실 더더욱 관심도 없다. 그냥 틀어져있기에 봤을 뿐. 남자친구가 보면서 웃길래 호기심에 봤을 뿐. 고향에 내려가 엄마가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따라서 본다. 아빠가 복면가왕을 보고 있으면 옆에서 그냥 본다. 보는 도중에 다른 곳에 가더라도 더이상 생각도 나지 않고 후속작도 잘 찾아보지 않는다. 남자친구나, 친구들이나 드라마를 잘 안 보는 이유가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봐야해서'라고 하던데 나는 그런 게 전혀 없다. 동생이나 언니는 일본 만화를 정말 좋아하는데 흔히 말하는 덕후라고도 할 수 있다. 만화책을 기다렸다가 사고, 만화책 속에 나오는 인물을 좋아해서 피규어를 모으거나 애정을 갖고있다. 나는 만화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런 게 전혀 없다. 다시 말하면, 내가 아닌 다른 사물에 집착이나 관심이 없다.

그냥 멍하니 볼 뿐이다.
왜? 다른 건 딱히 할 게 없거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내가 갖고 있는 문제라거나, 내가 이 순간 지금 바로 해야하는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 아니면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머릿속에 기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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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죄와 벌


신과 함께, 도 남자친구가 보자고 해서 네이버 영화 2500원 하는 것을 다운로드 받아서 봤다. 웹툰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본 적은 없어서 정말 영화만 본 것이다. 웹툰을 한번 보고 싶기는 한데 그것에 에너지를 쓰는 것도 귀찮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 하루에 운동은 2-3시간씩 하는 걸 보면 나의 귀찮음 체계란 진짜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고 나조차 이해할 수 없다. 내 id는 강남미인도 예전에 웹툰으로 좀 보다가 어느 순간 보는 걸 잊어버렸는데 어느새 완결이 나고 드라마로 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생각이 나서 다시 들어가보니 유료화가 되어있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다. 새카맣게 잊어버리다니. 일주일에 한번 챙겨보는 그런 걸 잘 못하는 것 같다. 출근길에 어떤 여자가 목요일 웹툰을 하나하나 챙겨보던데,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신과 함께 1부를 되게 재밌게 봤다. 죽으면서 시작되는 영화라는 컨셉도 괜찮은데, 2부에서 나오는 대사인 '거꾸로 보면 돼'라는 거랑 연관성도 있는 듯하다. 예전에 읽은 책 중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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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벤자민 버튼이 태어날 때 할아버지였는데, 그가 살면서 점점 어려지고 마지막에는 태아처럼 웅크린 자세로 죽는다. 인간의 생을 거꾸로 사는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거꾸로'의 의미와 신과 함께 1에서의 '거꾸로'의 의미는 다르다. 벤자민 버튼의 삶은 그저 인간의 삶 속에서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반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원래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노화가 되어야 하지만, 그의 시간은 우리와 반대로, 거꾸로 흘러서 어려진다. 본래의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뒤집어 놓는 역행 행위다. 신과 함께1에서의 '거꾸로'는 이야기의 전개가 김자홍이 죽고 나서부터가 시작이라는 의미다. 보통 시작이라고 하면, 태어나면서부터 환생하면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 이라는 전제가 암시되어 있는데 신과 함께는 주인공이 죽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저승에서의 7가지 재판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추가로, 신과 함께2에서도 거꾸로 라는 의미가 다뤄지는데 그건 정말 물리적인 '거꾸로' 뒤집으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해석에 따라서, 마동석의 거꾸로 라는 말을 듣고 주지훈은 자기의 기억을 거꾸로 뒤집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직접적으로 과거회상이 가능해졌다는 점도 들 수 있다.

신과 함께에서는 지옥에서 불의, 배신, 폭력, 나태, 살인, 거짓, 천륜이라는 7가지 죄를 묻고, 49일 동안에 그 모든 재판을 성공적으로 지나가야만 환생을 할 수 있다. 주인공 김자홍이 처음부터 죽었기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는 우리들은 재판 과정을 보면서 김자홍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비로소 알 수 있다. 확실히 1편은 굉장한 액자식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병을 앓는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과 동생도 동반자살을 할 결심을 했다는 죄책감에 집을 뛰쳐나와 15년간 어머니에게 거짓편지와 돈을 부치며 집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다 결국은 소방관 일을 하다 죽고 말게 되는 그의 삶을 정의롭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천륜을 어겼지만, 어머니가 그 죄를 용서함으로써 저승의 염라대왕은 이승의 사람이 용서한 죄를 저승에서는 더이상 심판할 수 없다며 김자홍을 풀어준다. 눈물을 쏟아내게 하는 '부모자식'의 소재를 사용한 의도가 돋보인다. 스토리상으로는 울음을 반드시 주는 주제를 사용해서 '감동'을 주려는 것은 확실했고 딱히 이상한 부분도 없었다. 물론 이렇게 담담하게 서술하지만 나도 울긴 울었다. 오열하는 남자친구들 달래주면서. 그러나 개인적으로, 정말 슬픔을 노리고 주려고 하는 감동보다는, 일상에서 내가 깨우치지 못하는 감동을 주는 예술작품을 더 선호하기에 신과 함께1보다는 신과 함께2가 더 인상에 깊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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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저 신과 함께 1을 좀 더 살펴보자면, CG가 조금 충격적이긴 했지만 7개의 지옥의 그림이 너무나 아름다워 모니터에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 CG는 옛날에 삼촌이 하던 오래된 게임같은 느낌이라 초반엔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지옥이 진행될수록 점점 달라지는 장면들에 신선함을 느꼈고, 각 지옥마다 앉아있는 대왕들의 신선한 컨셉도 마음에 들었다. 탐관 두 명은 너무 촐싹대서 보기 싫을 정도라, 대왕들이 탐관을 탓하는 말을 할 때 뭔가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가장 좋았던 지옥은 사탕을 빨던 어린아이가 있던 지옥과 감동을 원하는 할머니가 있던 지옥. 그리고, 나태지옥에서였던가 아름다운 여자대왕이 있었는데 그곳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아쉬웠다. 주로 남자대왕들이 다스리는 지옥은 어둡고 무섭고 강렬하기만 해서 신선한 점이 없었던 것 같다. 여자대왕들은 나이대를 다양하게 하면서 남자대왕들은 그러지 않고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만 앉혀놓았다는 것이 기성의 고정관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풍경도 그렇고 하는 말도 그렇고 조금 더 신선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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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에서는 연기가 많이 늘었지만 초반의 김향기의 연기는 정말 모든 집중력을 깨트렸다. 안그래도 너무 눈에 띄는 CG때문에 쉽게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김향기의 어색한 연기가 더해지니 귀를 막고 싶었다. 특히 저 스틸컷 장면에서 김향기가 김자홍의 죄를 대변할 때의 연기가 가장 어색했다. 왜 저렇게 말하는거지? 일부러 그러는건가? 아니면 정말 연기를 못하는 건가 생각했는데 남자친구도 나와 비슷하게 느낀 것 같다. 2부에서도 그건 비슷했다. 과거를 깨달을 때 표정을 얼굴에 다 담아내고, 눈물연기를 할때 코끝부터 부르르 떨던 주지훈과는 달리, 김향기는 눈을 내리깔고만 있으며 눈물만 흘렸다. 아직 어려서 그런거라 생각은 들지만 여주인공이 그렇게 몰입도를 깨트렸다는 점이 너무나 아쉽다.

1부가 그저 감동만을 위한 전개였고, 평점도 낮아서 2부는 그냥 스토리만을 궁금해했었지만, 막상 2부를 보며 순간적으로 깨달은 게 있어 좋은 영화로 기억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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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김자홍의 동생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해 귀인이 된 김수홍의 삶을 심판하고 환생시키기 위해 진행이 된다. 강림차사는 자신의 천 년 전 과거에서 아버지의 죽지 않음을 못 본 체하고 죽게 한 죄책감을 이 사건에 덧비쳐보고, 김수홍의 억울한 죽음을 덜기 위해 자신의 차사직과 환생을 걸고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김수홍의 대사처럼 정말 김수홍의 재판이 아니라 강림의 재판이었던 것이다. 같이 있던 혜원맥과 덕춘이 사실은 자기가 살해한 자들이었고, 염라대왕이 자신의 아버지였던 그런 인연이 여기서 다 밝혀진다. 스토리만 보면 억지스럽게 끼워넣은 부분도 많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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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동생, 아버지라는 점은 연관성도 있고 감동스럽기도 한데 덕춘의 역할이 너무 애매하다. 그냥 뜬금없이 나타난 오랑캐 소녀. 덕춘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설정마저 뜬금없다고 느낀걸까? 같은 오랑캐족으로서 불쌍함을 느꼈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뭔가 셋을 동시대의 사람으로 설정하기 위해 조금 끼워맞춘 느낌이 조금은 있었다.

2부는 눈물을 흘릴만한 요소는 딱히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배신을 했었다는 사실과 그를 용서하는 과정이 그들사이의 인연을 강조했을 뿐.

내가 문득 느꼈던 깨달음은, 김수홍이 살기 싫다고 외칠 때다. 강림이 자꾸 그를 환생시키려고 하는데, 그때마다 살기싫다고 환생하기 싫다고 할 때. 그래, 살아봤자 뭐하겠어. 끝없는 고통과 고통의 연속일텐데. 먹고싶은 것도 참아야 하고, 내 끝없이 이어지는 욕망도 참아야 하고. 그러면서 주어지는 과제들도 해야 하고.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내가 요즘 살아가는 이유를 알았다. 욕구를 줄여나가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삶이란 게 생각해보면 그렇다. 끝없이 들끓어오르는 식욕, 수면욕, 성욕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있을 동물적인 본능적인 감각들을 지녀가면서 또 돈을 벌고 일상생활을 하고 살아가는 것. 하루하루 반복되는 그런 감정들을 억누른채 또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 조금씩 절약하고 절제하고 사는 것. 내일 조금 더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해서 오늘 쉬고싶은데도 그 나태함을 참고 돈을 벌어나가는 것. 몸이 아프고 근육통이 있고 피곤해도 조금 더 좋은 몸매를 갖기 위해 오늘도 2시간씩 달리고 걷는 것. 더이상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먹지 않기 위해 탄수화물을 먹지 않고 끝없이 식이장애라는 질병과 싸워나가는 것.

정말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그런 욕망들과 싸우는 것. 그렇게 나를 하루하루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게 삶이라는 것. 그 끝에는 뭐가 있냐고? 어쩌면 신과 함께에 나오는 그런 지옥들이 나올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냥 '무'만 존재할지도 몰라. 하지만 이왕 부모님이 낳아주셨다면 조금이라도 고통스럽지 않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내가 해야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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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은 죽으면서, 나쁜 사람은 없다. 나쁜 상황만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 좋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나도 누군가에겐 한때 나쁜 사람이었다. 잠수를 타기도 하고 매정하게 대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 뒤에는 정말 그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우울증이라거나 마음 속의 병이 있었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이해하고 탓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바꿔도 되는 거니까.

그 말을 들으며 울었다. 다른 사람들은 마동석이 죽어서 울었다. 아니 어쩌면 그 사람들도 다른 포인트에서 울었던 건지도 몰라. 같은 걸 봐도 사람들은 같은 것을 듣지는 않으니까.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해서 나와 싸워야한다. 하지만 나는 또 나의 적은 아니다. 나를 사랑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모든 욕구를 받아줘서는 안된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처럼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 않으면서도, 일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게 나의 삶.

만약, 저승에서 누가 나를 환생시키려고 한다면 나 역시 김수홍이나 김자홍처럼 차사를 말릴 것 같다. 인생은 보람도 있고 사랑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사실은 그 바탕에 있는 것은 지독한 우울감과 괴로움과 외로움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끝없는 우울에도 여전히 내가 살아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이유는 나와 마찬가지로 그 우울감과 외로움에서 시달리고 있는 게 모든 사람들의 삶이고, 우리들의 숙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기나긴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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