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랑이 망한 이유 [영화]

김지운은 감독판을 공개하라!
글 입력 2018.08.23 16:0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jpg
 
 
<인랑>은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영화였다. 대문짝만하게 붙은 포스터 속 은혜로운 동원님의 얼굴은 영화관에서 알바를 하는 나의 눈을 시종일관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영화관 알바생들에게 좀 더 아름다운 일터를 만들어주었다는 예상치 못한 성과를 달성한 채 개봉 3주 만에 IP TV로 밀려나는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190억의 제작비, 얼굴대장 배우들의 비주얼 대잔치, 그리고 장르영화의 거장 김지운 감독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인랑>. 하지만 그 화려한 서막에 비해 끝은 너무나 초라했다. 손익분기점 관객수 600만. 하지만 실 관객수 89만. 그렇다, 쓰나미급 초대형 적자다. 대체 이 영화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뒤늦게 예매를 해보려 했으나, 충격적이게도 상영관이 서울에 단 한 곳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집에서 만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친구를 말이다. 보니까 알겠다. 인랑이 망한 이유.

 
 
01. 영화관에서 수능치기?

   

남북한 정부가 통일준비 5개년 계획을 선포한 후, 강대국의 경제 제재가 이어지고, 민생이 악화되는 등 지옥 같은 시간이 이어지고 있는 혼돈의 2029년.

통일에 반대하는 반정부 무장테러단체 ‘섹트’가 등장하자 ‘섹트’를 진압하기 위해 설립된 대통령 직속의 새로운 경찰조직 ‘특기대’가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이에 입지가 줄어든 정보기관 ‘공안부’는 ‘특기대’를 말살할 음모를 꾸민다. 절대 권력기관 간의 피비린내 나는 암투 사이, '특기대’ 내 비밀조직 ‘인랑’에 대한 소문이 떠도는데…

늑대로 불린 인간병기 '인랑'

 
크기변환_당황.jpg
 

.....? 뭐라고...?

개봉 전, 줄거리 소개 용 짧은 시놉시스로 이 영화를 처음 만났다. 첫 만남부터 이 친구는 나를 힘들게 했다. 섹트는 뭐고 공안부는 뭐고 특기대는 또 뭔지, 온갖 낯선 설정들 투성이었다. 그럼 영화를 본 후에는 이해가 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영화는 프롤로그에서 정우성의 내레이션으로 이 세 개 조직의 탄생 비화와 관계에 대해 설명해보려 하지만, 말로써 풀어내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길디 긴 내레이션 속 생소한 용어들 탓에 내 이해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지금까지도 대체 공안부가 뭘 하는 단체이며 왜 섹트와 특기대의 사이에 낀 건지 잘 모르겠다.
 
사실 이 영화는 태생부터 복잡한 친구다. 많은 대중영화가 취하는 2파전(보통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닌, 섹트vs공안부vs특기대의 3파전 구도를 띄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3파전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역시 선을 지향하는 베트맨과 악을 지향하는 조커, 그리고 선과 악의 조합인 하비덴트 사이의 3파전을 그린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는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각 캐릭터들 고유의 성향을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보여주기에 관객 역시 그 셋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구분하며 따라갈 수 있다.

<인랑>이 망한 이유 첫 번째가 여기서 등장한다. 각 조직의 역할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현실에 없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했다면 관객이 이입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알려주는 배려가 필요한데, 이 영화는 그것이 부족하다. '불친절한 지운씨'다. 하여 관객 입장에서는 수능 보는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는 이상 대체 쟤네가 뭐하는 애들이며 왜 싸우는지에 대한 의문을 당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복잡한 2018년을 살아가는 대중이 뭣 하러 12,000원이나 내고 영화관에서 수능을 치려고 하겠나.


 
02. 쟤가 왜 저럴까앙~?



집단에서 벗어난 개인의 자각,
시스템을 깨고 나가려는 한 인간의
고뇌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김지운 감독의 각종 인터뷰에 따르면 <인랑>은 집단 속의 개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집단이 요구하는 가치관과 개인의 것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감 때문에 고민하던 임중경(강동원 역)이 더 이상 ‘집단의 무엇’이 아닌, 그저 임중경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스토리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성장영화인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크기변환_movie_image (6).jpg
 

임중경은 당연히 고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자신 때문에 죄 없는 어린 소녀들이 죽었으며, 한 때 동고동락하던 친구까지 자기 손으로 쏴 죽였다. 그 와중 불현 듯 찾아온 사랑의 감정까지. 이런 상황이라면 그 누구라도 자신이 처한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집단에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거다. 이 영화에는, 사실만 있고 결과가 없다.

영화는 뉴스 기사가 아니다. 영화에는 ‘감정’이라는 것이 보여야 한다. 옆 동네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을 예로 들어보자. 어린 강림은 갑자기 어디선가 굴러들어온 양아들(하얀 사-앍)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자 분노한다. 여기서의 사실은, ‘어디선가 굴러들어온 양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분노한다.’이다. 하여 그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어린 강림이 숨어서 동생을 째려보고, 장기를 두다가 뒤엎고, 칼싸움을 벌이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등의 여러 작은 에피소드들을 등장시킨다. 즉 ‘사실’로 인한 ‘감정적 결과’가 시각적으로 표현된 셈이다. 물론 사실만 봐도 감정적인 결과가 추론되긴 하지만, 남녀노소의 최대한 많은 이해와 공감을 얻어내야 하는 대중영화가 되고자 한다면 사실만 던져주고 ‘감정은 알아서 추론하세요.’ 라는 식의 불친절한 태도는 명백한 감점요소이다.


크기변환_movie_image (3).jpg
 

<인랑>에는 ‘어린 소녀들을 죽였다’는 사실은 있지만, 그 결과 자책감에 시달리는 장면은 임중경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악몽에서 깨어나는 씬, 딱 하나밖에 없다. ‘친구를 쐈다’는 사실은 있지만, 그 결과 가슴아파하는 장면은 물에 떠가는 친구의 시체를 바라보는 임중경의 망연자실하는 표정, 딱 하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이윤희와 ‘사랑을 한다’는 사실은 있지만, 그 교제의 결과로서 임중경이 집단에 의문을 갖게 되는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

이 영화가 ‘뜬금 로맨스’라는 혹평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로맨스가 등장한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로맨스가 주제까지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감독을 포함한 <인랑>의 제작진들은 로맨스가 임중경을 자각시키는 중요한 열쇠라고 입을 모은다. ‘사랑을 했다. → 내 정체성에 의문이 든다. 특기대를 나가겠어!’ 식의 전개를 의도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로맨스가 임중경의 심경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묘사되지 않은 현재로서는, ‘사랑을 했다. 특기대를 나가겠어!’ 식의 급작스러운 점프가 발생해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관객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1411.jpg
 


03. 공감이 안간다.

 
인랑이 망한 이유, 세 번째는 공감이 안가기 때문이다. 섹트니, 공안부니, 특기대니 하는 설정 자체가 이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관객이 감정이입하는 대상인 캐릭터들까지도 이질적이다. 캐릭터가 관객의 호감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찌질美’를 발산하거나, ‘불쌍해’지거나. 전자는 주로 코미디와 같은 톤 밝은 영화의 캐릭터들이 많이 차용하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예가 tvN 드라마 <도깨비>의 공유다. 극 중 도깨비씨는 저승이와 말도 안 되는 걸로 싸우고 지은탁(김고은)한테 차이면 침대 구석에 짱 박혀 있는 등의 찌질함을 가감 없이 발산한다. 후자는 무거운 톤의 영화에서 많이 차용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주인공 커티스다. 열차의 꼬리칸에 힘겹게 탑승한 후 배를 곪다가 결국 아이까지 잡아먹게 된 사연을 고백하며 괴로워하는 커티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같이 가슴을 부여잡지 않을 수 없다. 연민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묻자. 찌질하다고 해서, 불쌍하다고 해서 도깨비씨와 커티스가 못나 보이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찌질함과 불쌍함은 관객이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일 뿐이다. 찌질해 보여서 무의식적으로 만만하다고 느낄 때, 혹은 동정이 갈 때에야 비로소 관객은 생판 처음 보는 캐릭터에게 경계를 풀고 그의 행보를 응원한다.


크기변환_movie_image (4).jpg
 

이 영화의 묵시록적인 분위기를 고려해봤을 때 후자의 방법을 취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에는 사실만 있고 감정적인 결과가 부족하기 때문에 임중경의 불쌍함을 어필할 괴로움도, 슬픔도 딱히 와닿지 않는다. 가뜩이나 잘난 비주얼의 배우들인데 찌질하지도 않고 불쌍하지도 않으니 딱히 정이 안가는 건 당연지사. 거기다가 불친절한 설명으로 배경까지 이해가 안 되니 관객들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아, 이건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제작진들끼리만 이해하고 공감하면 뭐하겠는가. 관객이 이해 못하고 공감 못하면 끝난 것이다. 관객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놓지 않은 영화를 위해 기꺼이 거금 12,000원을 지불할 관객은, 없다.
 
 
 
감독판을 공개하라!

 
사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개인을 그저 '한 명의 개인'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집단의 시스템에는 언제나 의문을 가져 마땅하다. 때문에 보다 명확한 설명과 보다 납득 가는 감정선이 갖춰졌다면 영화가 이 정도로 적자를 기록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인랑 >에 출연한 배우 유상재는 얼마 전 자신의 SNS에 영화의 실패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상영시간을 줄이기 위해 편집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되다 보니 인물들의 감정적 흐름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많은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랑>이 이뤄낸 영화적 성취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일단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인랑>의 영상미 하나는 욕할 수가 없다.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악마를 보았다>, <군함도>, <아수라>등 내로라하는 작품들의 촬영을 맡은 이모개 촬영감독의 능력은 이 작품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SF 기근인 대한민국에서 용감무쌍하게 2029년을 그려냄으로써 좀 더 넓은 영화적 가능성을 닦은 것 역시 사실이며 캐릭터들이 이해가 안되는 와중에도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나다. 하여 나는 <인랑>의 디렉터스 컷을 보고싶다. 배우 유상재의 SNS 언급에 따르면 감독판에는 임중경의 감정선과 친절한 설명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좀 더 대중적인 코드를 갖춘다면, 어쩌면 상당한 재평가가 이뤄질지도 모르겠다고 예상해본다. 하여 난 외친다. "김지운은 감독판을 공개하라!"




에디터 박민재.jpg


KakaoTalk_20180819_181739113.png
 



[박민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Copyright ⓒ 2013-2018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