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생쥐와 인간. 붙잡고 싶은 이상에 대하여 [공연]

글 입력 2018.08.2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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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지켜주고, 너는 나를 지켜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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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장애를 가진 레니는 마치 자연재해 같은 인물로 나타난다. 나쁜 의도가 없음에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레니는 그의 친구 조지를 계속 불안하게 만든다. 조지는 그런 레니에게 너만 없었으면 자신의 삶이 훨씬 수월했을 거라며 모진 말을 하기도 하지만, 어려서부터 늘 함께였던 그들은 떨어질 수 없는 단짝이다. 조지는 이전에 있던 곳에서 사고를 친 레니를 데리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시골 농장으로 도망쳐왔다.
 
조지는 레니를 지켜주고 돌보고 교육한다. 전에 있던 일을 계속 잊어버리는 레니는 조지에게 혼나기도 하지만, 끝내 레니에게 언제나 져주는 조지는 결국 돌봄으로써 돌봐지는 존재다. 이렇게 서로를 돌보는 둘은 새 농장에 와서도 매일 밤 둘만의 꿈을 되뇐다.



붙잡고 싶은 이상과 레니의 토끼

둘이 합쳐 수중에 10달러밖에 없는 그들은 돈을 번대로 부질없이 흥청망청 써버리는 다른 노동자들과는 다른 이상을 품고 있다고 자부한다. 조지는 돈을 모아 작은 땅을 사서 레니와 함께 오두막집을 짓고 텃밭, 목장 등을 가꾸며 살고자 한다. 그들이 그리는 꿈에서 언제나 토끼 기르기는 레니의 몫이다. 부드러운 걸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레니는 만지는 동물마다 힘 조절을 못해 죽이고 말지만 항상 새로운 동물을 기르고 싶어한다. 레니의 부드러움에 대한 집착은 죽은 생쥐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했고, 이불을 어루만지게 했으며, 농장에서 만난 슬림에게서 받은 강아지를 희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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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농장에서 만난 늙은 일꾼인 캔디는 한 때 잘나가는 양치기견이었으나 이제는 늙어 악취만 풍기는 늙은 개를 늘 안고 다닌다. 농장 사람들은 주변에 피해만 주는 그 개를 죽이라고 하지만, 캔디는 개에게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삶을 지탱해주는 것이 레니에게는 부드러운 토끼라면, 조지에게는 그런 레니를 데리고 그들만의 낙원을 꾸리는 일이었을 것이며, 캔디에게는 자신의 늙은 개와 그 개를 통해 회고하는 자신의 소싯적이었을 것이다.
 
이미 힘이 다한 개에게 더 좋은 일이었을까,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추억에 잠기는 비생산적인 일에서 캔디를 벗어나게 해주는 일이었을까, 둘 다 아니라면 개와 캔디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었을까. 셋 중 어떤 의미가 가장 컸을지는 몰라도 농장 사람들은 캔디의 늙은 개를 총으로 쏴 죽이고, 캔디는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슬픔에 빠진 캔디는 곧 조지와 레니의 터무니없는 계획을 듣고 자신의 전 재산을 걸며 자신을 그 계획에 껴달라고 부탁한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캔디는 자신의 삶을 견뎌낼 원동력이랄까, 목적의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상실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은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조지, 자신의 손으로 꿈을 죽이다
 
불안은 언제나 일을 터뜨리고 만다. 레니는 컬리 부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만지다 그녀를 살해해버리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생쥐로부터 강아지, 그리고 컬리 부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은 그 어떤 악의도 없는,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인간의 삶을 휩쓸어버리는 자연재해처럼 일어났다. 생쥐와 강아지의 죽음처럼 컬리 부인도 자연재해 앞의 무기력함을 표현하듯 조용하게 바스러졌다. 죽음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에도 이 장면이 잔혹하다기보다는 아름답게까지 느껴졌던 건 바로 그래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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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레니의 파괴적인 순수함은 컬리 부인의 죽음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더이상 묵인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고 말았다. 여기에서 조지는 레니와 함께 그렸던 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시해버리게 된다. 꿈은 그가 고된 삶을 버티게 해주었지만, 조지의 이상은 레니가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으며 오히려 그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레니를 최대한 행복하게 보내주는 것이었다. 농장 주인에게 잡혀 죽느니, 차라리 그들 꿈 속 오두막집으로, 토끼를 죽이지 않고도 기를 수 있는 저 멀리 그들의 땅으로 레니를 보내주는 것. 조지는 자신을 돌보던 꿈에게 매일 밤 해주던 이야기를 언제나처럼 들려주며, 상상 속 오두막집을 바라보고 있는 꿈의 뒤통수에 권총을 겨눈다.

*

레니와의 행복한 삶은 그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을 지도 모른다. 손에 쥐는 대로 숨을 거두어가는 레니가 살아있는 토끼를 기르는 것, 아니, 그 이전에 한 치 앞의 사고도 예견할 수 없는 불안한 레니를 데리고 땅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은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꿈이 불가능했음을 의미했는지도 모른다. 레니는 그 자체가 불안한 이상이자 꿈인 것이다. 조지가 자신의 전부였던 레니를 직접 죽인 것은 그를 덧없는 이상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통과의례였을까. 혹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목적도 의미도 박탈해버려 그 자신도 죽이는 일이었을까. 어쨌든 조지는 그 육체가 죽지 않는 이상 그가 경멸했던 평범한 일꾼의 삶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의지할 곳 없는 농장 사람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에게는 미래도 계획도 있을 수 없다. 그저 정처 없이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꿈이나 희망 같은 것이야말로 헛되다고 생각하며 돈이 남으면 술집에 가서 유흥을 즐기는 모습은 조지가 싫어했던 모습 그대로다. 굳이 상투적으로 극의 배경을 오늘날의 현실과 비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전체적인 극은 꿈에 집착하는 조지와 레니도, 애써 꿈을 잊고자 하며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고자 하는 노동자의 마음도 헤아리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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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전개가 조지와 레니 둘을 위주로 전개되지만 관객들은 조지와 레니를 비롯하여 그나마 악역스러웠던 농장주 아들 컬리까지 마냥 미워할 수 없다. 누군가는 매일 밤의 유희에, 누군가는 이상에, 누군가는 추억에, 누군가는 자신의 상처에 집착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감안하면 그 누구도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다면 어떻게든 그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간 아니겠나. 레니를 죽인 조지는 평범한 농장 사람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마치 꿈을 가졌을 때처럼, 새로운 무언가에 집착하며 그런대로의 삶을 이어나갈 것이다.



<생쥐와 인간>과 빅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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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지 않고 친절한 번역.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게 모든 것을 표현해내는 무대조명과 무대장치. 특히나 바닥재로 커피 원두를 사용했다는 게 새로웠다. 저런 바닥재 위에서 연기를 하려면 힘들겠다 싶었지만 연기부터 장면전환까지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이 그런 걱정을 터무니없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 극에서 가장 감동한 지점은 바로 자연스러운 번역이었다. 보통 이러한 번역극은 그 대사부터가 난해하거나 내용이 어렵지 않더라도 어색하게 느껴져서 매 장면마다 한 번씩 곱씹어야 머리에 들어오는데, 이번 빅브라더스의 < 생쥐와 인간 >의 경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배우들이 극 중에서 욕설을 해도 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애드리브를 해도 어색하지 않았으며 극 또한 전반적으로 너무 코믹하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조화로웠다. 이번 극이 어떤 성적으로 막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땐 근래 본 극 중 손가락 안에 꼽을만한 퀄리티의 극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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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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