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비평가’, 연극과 삶의 진실을 묻다

연극 ‘비평가’, 두산아트센터(8.17~9.1)
글 입력 2018.08.2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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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할 줄 알면 나를 구원할 텐데”

극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연극이 끝난 뒤에도 계속 머리에 남았다. 나는 노래할 줄 아는 사람일까, 노래함으로서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 나아가 비평가와 예술가는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삶과 연극은 어떻게 다를까 하는 생각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 ‘비평가’를 만났다.



#여성 배우,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다


‘비평가’는 두산아트센터에서 2017년 초연을 올린 작품이다. 두 남성 캐릭터의 첨예한 대립을 통한 감정 고조, 그들이 마주하게 되는 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올해 두산아트센터에서는 이 작품을 여성 배우로 재해석했다. 남성 캐릭터는 유지하되 여성 배우가 역할을 연기하는 데에서 오는 낯섦, 독특함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김신록 배우와 백현주 배우가 각각 스카르파, 볼로디아 역할을 맡았다.

두 배우의 연기는 압도적이었다. 마당극처럼 무대를 중심으로 관객들이 마주보고 앉았는데 우려와 달리 어떤 쪽도 외면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두 배우는 좁고 긴 방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끊임없이 독백에 가까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엄청난 대사량, 땀과 눈물을 계속해서 흘리게 되는 커다란 감정폭을 온전히 전달받으며 극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다만 여성배우를 통해 해석된 부분이 얼마나 작년 초연과 다른지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웠다. 2018년의 ‘비평가’만 두고 보면 배우의 여성성이 강조된 부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질문도 가능하다. 배우에게 주어지는 ‘여성성’은 무엇인가. 두 배우가 수트를 입고 등장하는 것이 여성성의 감소 요소인가? 여성 배우가 해도 다를 게 없다면, 앞으로 캐릭터와 배우의 성별에 관계없이 그 배역의 메시지와 분위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어차피 배우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비평가의 오만함


극은 비평가 볼로디아와 극작가 스카르파의 대립으로 진행된다. 대립의 이유는 작품에 대한 이해,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의 차이다. 볼로디아는 스카르파의 첫 작품에 악평을 남겼고 그로 인해 스카르파는 한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했지만 10년 뒤, 멋지게 재기하여 15분간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는다. 하지만 볼로디아는 이 작품에 대해서도 혹평을 내놓는다. 가장 결정적인 혹평의 원인은 마지막의 여성 캐릭터가 실존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 여자는 볼로디아가 아는 사람이었고 사랑한 사람이었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스카르파의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연극이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거나 역으로 스카르파의 극본이 충분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은 여실히 볼로디아의 실수다. 이 장면에서 비평가의 권력은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권력’임이 와닿았다.

실수를 알기 전까지 볼로디아는 자신이 얼마나 스카르파를 아꼈는지, 스카르파를 통해 실현하려 했던 이상을 분노에 가까운 말투로 설명한다. 직접 전하는 말도 아니라 스카르파의 것을 포함한 각각의 연극 비평으로 스카르파에게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스카르파는 그 모든 맥락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려 노력한다. 그리하여 10년만에, 볼로디아의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볼로디아는 끝내 그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혹은 이해하지 않는다.

볼로디아는 비평가로서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권력’을 가졌다. 스카르파는 볼로디아의 혹평에 절망했고 그를 극복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볼로디아가 한 것은? 직접 전하지도 않는 말들로 스카르파를 혹독하게 대했던 것뿐이다. 이를 통해 스카르파를 성장시킬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이 믿음은 일면 성공했지만 그가 가진 비평가로서의 오만함은 도무지 인정할 수 없다. 예술가는 비평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다. 비평가 또한 혹평을 많이 남긴다고 해서 이를 통해 예술가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평의 올바른 태도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해본다. 정답은 없다. 비평가들은 좋은 작품에는 좋았다고, 나쁜 작품에는 나빴다고 말한다. 비평은 주관에 대한 논리적 포장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평에서 가장 주의할 점은 권력에 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비평가가 가진 권위와 권력으로 예술가의 삶을 이끌어보겠다는 오만함 혹은 예술가의 삶을 망쳐버리겠다는 악의 같은 것들이 나타나면 비평은 제기능을 상실한다. 볼로디아는 전자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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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지 못하는 사람


“내가 노래할 줄 알면 나를 구원할텐데”라는 말은 스카르파의 극 속 여자의 대사다. 동시에 이 대사는 스카르파와 볼로디아의 삶을 관통한다. 스카르파는 예술가이며 노래하는 사람이다. 작품으로서 볼로디아에게 인정받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려 한다. 볼로디아는 비평가다. 비평도 창작의 일부이지만 A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보니 본질적인 창작과는 다르다. 노래하는 사람을 보고 평하는 사람일 뿐, 노래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볼로디아의 혹독한 태도가 예술가들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비록 이제는 볼로디아가 연극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권위있는 평론가지만 그 시작에는 그런 감정이 있었으리라 추측했다. 볼로디아는 극장에서 표를 팔던 어머니와 극장 자리를 안내하던 아버지의 자식이다. 그는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수많은 극을 보았지만 그 중심에 선 적은 없었다. 노래를 갈망하지만 노래할 줄 몰랐던 사람. 그래서 스카르파에 더 집착하고 오만한 태도를 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노래할 줄 아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향에서는 먼 인물을 데리고 그의 노래를 만들어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서.



#“연극이 거짓이라 여기는 것, 경멸하는 것을 빼면 인생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비평가’는 연극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극, 메타연극이다. “이런 얘기는 연극하는 사람이나 좋아해요.”라며 셀프 디스(?)를 펼치기도 하지만 사실 그들은 연극과 삶에 대해 깊고 풍부한 이야기를 한다. 연극은 진실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삶을 연기하는 사람들이 그 속에는 연기가 아닌 진실이 있어야한다고 말하는 것.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가듯 뱀뱀 도는 이야기 같다.

볼로디아가 비난했던 극 속의 여인 캐릭터는 실재하는 인물이었다. 볼로디아는 권위있는, 저명한 평론가임에도 이 점을 놓쳤다. 우리는 연극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을까? 연극이 아닌 삶에서는 가능할까? ‘비평가’는 진실과 거짓의 구분, 진실성을 보는 눈을 갖는 것이 가장 어려움을 보여준다. 무언가는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고 우린 절대로 그 답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

“난 연극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한 순간이라도 관객들에게 마법 같은 순간을 줄 수 있어야 해요.
자신이 알던 방식, 살아온 방식에 대해 완전히 낯설어 질 수 있는 그 한 순간.
잠들어 있던 일상을 깨워낼 수 있는 그 한 순간."


2016년, ‘스카르파’역을 맡은 김신록 배우가 서울연극센터 연극人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살아온 방식에 대해 완전히 낯설어지는 그 한 순간. 내게는 볼로디아의 오만이 깨지던 순간이었다. 진실과 거짓에 대한 자의적 판단만이 전부가 아님을, 비평가가 가진 권위와 권력의 실체를 마주하던 순간. 연극을 보고 음악을 듣고 리뷰하며 나름의 (인상비평에 지날지 몰라도) 평론을 쓰는 나를 깨웠던 순간. 연극 ‘비평가’를 보고 나오며 그런 순간을 선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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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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