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래된 미래, 레이지버스에 탑승하다

이번 역은, '현대' 입니다.
글 입력 2018.08.2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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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월드
전자상가


괜히 묘한 느낌이 드는 단어, 버스를 타고 탁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용산전자상가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전자'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의 나에겐 어떤 놀랍고 신선한 기술 따위보다는 먼지 쌓인 투박한 기계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전자월드라는 단어는 '월드'만으로도 투박한 이미지를 그 그대로 더 거대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월드니까. 눈앞에 펼쳐진 전자상가의 모습은 그 이미지를 괜히 확신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 이미지가 새겨진 순서는 그 반대일지도. 탁, 하고 - 시간 때문이었을까, 자신의 쨍한 목소리를 놓아버린 밝은 색상의 간판들이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나진전자월드상가 12-13동으로 향했다.



갤럭시오디세이展
: 마츠모토 레이지의 오래된 미래


{Review. 오래된 미래, 레이지버스에 탑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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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뭐랄까, 전시회의 겉모습은 '날것'이었다. 건물 사이에 진입하니 여러 게임기와 핸드폰이 즐비한 전자 상가 옆에 자리 잡은 모습이. 전시회라고 공간을 선명히 분리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입구를 두었을 뿐 정말 그 그대로 전자 상가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전시회 입구 밖이지만 그 안이 다 보인다. 그렇게 특별한 꾸밈없이 전자 상가 사이에 자리 잡은 모습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첫인상은 다른 전시회들과 달리 그만의 정체성을 이미지로 남기고 있었다. 어떤 전시회가 '공간'으로서 자신의 인상을 남길까. 그런 면에서 생각하니 첫인상이 상당히 매력적인 전시회였다.

입장 전에 내가 썼던 프리뷰 내용도 다시 복습했다. 궁금한 게 많았으니 이제 그 답을 내가 찾아낼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 리뷰는 내가 프리뷰에서 궁금했던 내용들에 대한 답변을 다는 방식을 많이 취할 것이다. 또한 프리뷰에 '전시회' 자체에 대한 질문도 있었기 때문에 감상뿐만 아니라 정보적인 부분도 꽤 포함 될 거라 예상된다. 그런 면에서는 혹시 이 전시회를 가길 망설이는 이들에게, 궁금해 하는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전시회에서 느낀 것을 바탕으로 작성한 본인만의 생각인 것을 미리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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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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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다시 짚어봐야 하는 나와 ‘은하철도 999’의 애매하기 짝이 없었던 관계.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의 아카이브 섹션은 내게 더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모든 관람객들에게 필요한 공간일 것이다. '은하철도 999'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복습할 수 있는, 모르는 사람이라면 알아갈 수 있는 파트이기 때문이다. 애매한 나는 이제야 작품 이름을 넘어선 그 안의 것들을 알아갈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시회의 첫 시작은 온전히 따로 마련된 아카이빙 섹션을 두어 우선 이 전시회의 주제가 무엇인지 관람객이 우선 인지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었다. 그 이후로도 곳곳의 공간에 아카이빙의 흔적이 남아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첫 아카이브 섹션에서 마음이 갔던 단어가 있어서 그에 대한 리뷰를 시작으로 이어가보려 한다.



레이지버스, 광활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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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지버스에서 이루어지는 스토리 속의 인물 관계도.
여러 작품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한눈에 보여줬던 부분.


"레이지버스"
: '마츠모토 레이지'의 '레이지'와 우주를 뜻하는 영단어 '유니버스'의 '버스'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 갤럭시 오디세이 전 中


이 한 단어로 마츠모토 레이지 작가가 펼쳐낸 세계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한 단어로 정의할 정도로 선명한 세계고, 세계의 요소를 갖출 만큼 단단한 세상이다. 내게도 내 이름에 유니버스를 붙일 만큼의 단단한 자신만의 세상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면, 나도 아무리 상상하기를 좋아한다지만 '예찬버스' 따위라고 부를 만큼의 단단한 세계는 아직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저번 프리뷰에서 만화가 가진 세계라는 것이 단순한 인상을 넘어 거대했던 것임을 언급했었는데 아카이브 공간에서 살펴본 그의 세계는 더 거대했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여러 작품들 중 '은하철도 999'가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이기 때문에 전시가 구성된 것일 테지만, 사실 그의 서너 작품들이 모두 한 세계, '레이지버스' 속에서 모두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번에 그의 다른 작품들도 처음 알았지만 그의 작품들이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건 더더욱 몰랐기 때문에 꽤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하면 여러 작품이 마츠모토 레이지의 세계관 속에서 모두 이어지고 있는 것이고, 그의 세계는 이 많은 스토리를 담을 수 있을 만큼의 세계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전시회의 첫 구간에 자리 잡은 아카이브 공간에서는 '은하철도 999'를 중심으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 확장시킬 수 있어서 흥미롭게 관람했던 것 같다.



작업실, 압축된 세계



"작가의 광활한 세계는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시작되었다"

- 갤럭시 오디세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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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창조한 세계의 광활함은 그가 거주하는 공간의 세계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업실 말이다. 같이 전시되어있는 실제 작업실 사진과 비교해보니 꽤 비슷하게 재현되어있었다. 첫인상은 솔직히 너무 정신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정신 없음은 무질서하게(?) 쌓여버린 그의 방대한 자료들 때문일 것이다. 자료가 아니고 미처 치우지 못한 다른 잡동사니들일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어찌 됐든 작가가 자신의 공간에 그것들을 마구 쌓아 놓음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나는 그렇게 믿어보려 한다). 어찌나 많은지, 오죽하면 바닥에 이만큼씩 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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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화 세계를 단순히 상상이라고 매듭지어버릴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로 그의 작업실은 그 증거였다. '레이지버스'라는 하나의 세계까지는 무너지지 않은 구성이 필요한 법, 그것을 위해선 아마 많은 사색이 필요했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마 개인의 상상을 많은 사람의 공감과 이해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코드를 면밀히 담기 위한 연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냥 뚝 하고 세계가 떨어지지는 않을 테니까. 아마 그 노력의 흔적으로 이 많은 것들이 쌓여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작가의 광활한 세계는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작은 공간 안에 담긴 무수한 것들은 거의 하나의 세계를 압축한 듯한 모습의 빽빽함이었다.



*
체험



전시회의 무게


프리뷰에서 언급했었다. 과연 이 많은 것들을 담은 전시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고. 균형이 무너졌을까, 혹은 정말 멋지게 균형 잡힌 전시가 되어있을까. 막연함뿐이었던 그 질문에 나름대로의 내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이 전시회의 소개를 읽으며 미리 이해할 수 있는 전시회의 키워드는 아카이브, 오마주/미디어아트, 체험 이 세 가지다. 결론을 말하자면 실제로 다녀온 내게 '전체적으로 바라볼 때' 이 세 가지 중 가장 큰 인상은 체험 전시였다.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전시회를 가기 전 마음을 비장하게(?) 준비하기 보다는 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함께 올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전시회를 다녀오고 나서 이 전시회는 체험할 것이 많았다고 기억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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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하철도 999가 국내에 상영되던 1980년 때의
모습을 재현한 아카이브 공간.
작은 TV에서는 은하철도 999가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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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인표, Galaxy X/Y’
우주를 내 손으로 굴리는 듯한 즐거움을 주었던 작품


'체험'이라는 것은 꽤나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직접 관람객이 나서서 작품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되기 때문에 능동적인 감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방식이 더 친근하게 전시회를 즐길 수 있도록 작동된 것 같았다. 실제로 내가 관람객으로서 그렇게 느꼈으니 말이다. 과거로 돌아간 듯한 1980년대의 공간과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재현한 공간들로서 아카이브 공간이 이루어져 있었고, 미디어 아트 작품들도 인터렉티브(interactive) 작품과 직접 들어가서 감상할 수 있는 공간 구성의 작품이 많았다. 아카이브와 미디어 아트 작품의 특성에 스며든 '체험'이라는 요소가 아카이브와 미디어아트 작품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즉, 가기 전 예상했던 것보다 즐길 요소가 많았다. 그러기에 감상보다는 체험, 그래서 이 전시회는 혼자보다는 친구 한 명을 데려가는 것이 더 즐기기 편한 전시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색 보다는 그 공간을 보고 느끼는 것을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전시회. 주제를 깊이 파고 들어가기 보다는 '은하철도 999'의 작품 세계와 마츠모토 레이지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전시회였다. 이러한 부분에서 나는 이 전시회는 좀 더 가벼운 전시회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가볍다는 것의 의미는 내용이 없다는 둥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관람객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가볍다는 의미다. 다르게 말하면 다가가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나 전시 내용을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기획자의 의도에 하나의 기둥이 되어준 것 같다.

'은하철도 999?' 다소 생소한 전시회 주인공에 물음표를 달았어도, 발걸음이 망설여졌어도 입장만 한다면 누구든 부담 없이 이 전시회를 즐기고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친구와 함께 가서 두 시간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전시를 보고 왔다. 첫인상에서 느낀 공간의 규모와는 달리 오랜 시간 머물고 있었다는 것에 다소 놀랐다. 그만큼 나도 모르게 즐겁게 전시를 즐겼다고도 할 수 있겠다.

말이 길었지만 간단히 하자면 누군가 내게 "갤럭시 오디세이 전시회 어때?"라고 묻는다면, 이 전시회는 소개를 읽어서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전시라고 말하고 싶다.



*
오마주 / 미디어아트


갤럭시 오디세이 전시회는 앞서 여러 작은 공간을 활용한 전시 공간이었기에 한 작품 당 하나의 공간을 가지는 특징이 있었다. 이 부분은 관람객이 그 공간에 있는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또한 공간 구성을 필요로 하는 작품에게도 장점으로 적용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관람하면서 들었다. 내가 갔을 때에는 평일 오픈 시간대여서 그런지 사람이 많이 없어서 한 작품의 공간 안에서 오롯이 그 공간을 채운 작품만을 만날 수 있어서 더 깊은 감상을 할 수 있었다.



기계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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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상화 RANDI, 기계백작


내게 첫인상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은 < 기계백작 >이다. 사실 미리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단순히 허공에 떠있는 스크린이라고 특별한 기대 없이 작품을 보러 갔는데 실제로 만나니 느껴지는 위압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더 강렬했던 < 기계백작 >의 눈빛이 (사실 '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연하다. 감히 상상해 보지도 못한, 인간 아닌 것에 감시당하는 것의 느낌. 사실 그 전에 기계 인간이 인간인가, 그저 기계일 뿐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겐 그 작품에서 쏟아지는 위압감이 너무 낯설어서 괜히 인간 쪽으로 의견을 기울이고 싶지 않아졌다.

기계 백작이 '은하철도 999'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만큼 그 스토리를 떠올리면 그 세계 속에서 인간 육체를 가진 인간이 기계를 향해 가진 두려움이 어떤 것인지를 새삼 상상해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의 오마주는 '인간을 내려보는 기계의 시선이 가지는 위압감'을 실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내겐 그런 작품으로 기억에 남는다.



Episode. 망자의 한 : MPC 134340



"죽음은 일생의 마지막으로 가장 빛나는 숭고한 순간이다. 1월부터 12월이 지나고 13월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기계인간으로서 영원한 시간을 얻게 된다."


작품과 함께 있던 문장. 문장의 첫 단어인 죽음에 대한 상상에 이어 영원한 삶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는 문장이었다. 1월부터 12월이라는 평범하게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의 시간 단위에서 벗어난 13월은 순식간에 유한을 넘어선 영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단순히 시간 단위라는 개념을 초월한 것뿐이지만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면 시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까, 라는 생각이 괜히 든다. 그들의 13월 이후에는 또다시 1월이 올까 아니면 14월이 올까. 반대로 같은 시간 단위를 반복하여 산다는 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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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남전기, MPC 134340 (pluto, 명왕성)


작품을 보면서 생각하길 좋아하는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신남전기의 < MPC 134340 (pluto, 명왕성) > 이었다. 사실 명왕성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명왕성이라는 행성은 모두 알고 있듯이 태양계에서 퇴출된 행성이다. MPC 134340은 더 이상 태양계로서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지만, 결국 퇴출당했다는 그것의 정체성은 많은 창작인들의 상상력을 여러 의미로 자극하는 존재가 돼버렸다. 당장 명왕성에 비유하여 불리는 노래들이 떠오른다. 퇴출당한 그 행성은 결국 제 이름을 잃어 버렸지만 오히려 인간의 마음속에 그 어떤 행성보다도 더 선명하게 이름이 기억된 행성이 돼버렸다. 이렇게 생각하니 참 묘한 관심이 가는 행성이다. 인간에 의해 의미를 더하다가 다시 버려졌으나 오히려 그렇게 우리 마음에 깊게 침투한 행성.

태양에서 제일 먼, 결국 퇴출당한, 외로운 행성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럴까 그 단어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차갑다. 생기 있기 보다는 냉랭하다. 전시회 공간을 가득 채운 차가운 푸른빛은 그 감각을 강조하는 것만 같았다.


"기계 몸을 얻은 이들이 인간의 육신을 묻는 거대한 얼음 무덤이 위치하는 명왕성(Pluto)의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 작품 설명 中


그리고 이 작품에서의 명왕성은 기계 몸을 얻은 이들이 인간의 육신을 묻는 거대한 얼음 무덤이 위치한 곳이다. 사실 나는 이 설명을 다시 읽어야 했다, 인간이 아닌 기계를 버려야 할 곳이 아닌가 라는 순간적인 인상이 퍼뜩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런 차갑고 외로운 곳에는 인간이 버려지면 안 될 것만 같다. 아니, 그러니까 인간의 육신이 버려지면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은하철도 999'의 세계관에서는 그렇게 버려지는 것이 인간의 육신일지도 모른다는 연결이 머릿속에서 이어졌다. 영원의 삶을 살기 위해 인간의 육신을 버리고 기계가 되고자 했던 그 세계가.

동시에 이 세계관에서의 죽음은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인간의 영혼이 육신을 잃을 때를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지금 이 세계 속에서의 상황은 인간의 영혼이 육신을 스스로 버리고 기계라는 영원에 진입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육신을 버림으로써 스스로 죽고 나서 영원의 삶이라는 기계가 된 것이 아닌가, 죽고 나서 영원의 삶을 가진다? 도대체 이곳에서는 죽음은 어떤 의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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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신의 기억'을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4면체의 얼음 수정 형상을 갖는 25개의 단면들은 인간의 영혼이 담겨있던 육신의 기억을 뜻하며, 공간을 감싸는 빛과 소리는 명왕성에 대한 감상을 풀어냅니다"

- 작품 설명 中


인간의 육신이 묻힌 명왕성의 공간의 중심에 있는 것은 기억이었다. 이 공간이 가진 스토리가 '망자의 한'이라는 것이 겹쳐진다. 그렇다면 이 기억이 망자의 한일지도 모르겠다. 차가운 파란 공간 안에 미묘하게 푸른색과 진한 붉은색을 오가는 이 '기억'. 버려진 한기와 여전히 남아있을지도 모를 인간 육신의 온기를 번갈아가는 듯하다. 그래서 '망자의 한'인가. 버려지고 차가워졌음에도 본연의 온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기억이니. 그렇다면 저 육신의 기억은 육신의 온기고 망자의 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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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 푸른빛을 받았을 때
(하) 붉은빛을 받았을 때


더 들어가면 보이는 추상적인 회화 작품으로 시선이 간다. 공간의 가장 뒤, 기억의 뒤에 멀찍이 위치한 사람만한 크기의 꽤 거대한 그림이었다. 공간 전체가 파란 조명으로 뒤덮여서 이 회화의 본래의 색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여러 색의 빛을 받으면서 색감이 변화하는 그림을 보다 보니 뭔가 떠오른다. 이곳이 그 무덤인가, 라고. '기억'에서 나온 붉은 빛을 회화 작품이 받았을 때 반사한 색감은 인간의 육체가 마구 뒤엉킨 듯한 인상을 주었다. 마구 뒤섞이고 휘갈겨진 그림이다 보니 너무 그로테스크한 상상으로까지 생각이 뻗어가기도 했다.

그렇다면 인체는 이곳에 버려졌고, 인간의 육신의 기억은 저만치 거리에서 얼음 수정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이 무덤에 쌓인 '육신'은 인간의 영혼이 빠진 것도 부족해 저만의 '온기'마저 사라져버린 그야말로 '생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기조차 어려운 형상이다. 무질서한 휘갈김이 더 그 참담함을 말하는 듯하다. 그 참담함은 공허함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껍질' 그 자체라는 허무한 생각마저 든다.

내가 인식하는 '인간의 육신'이라는 이미지와 정반대로 추락해버린 그림의 형상이 너무나 낯설었다. 이것이 죽음인가. 안 그래도 이상하게 낯선 '죽음'이라는 것이 이 세계관을 오마주한 작품으로서 바라보려니 더 낯설어진 기분이었다.


"죽음은 높지만 좁은 틈과 넓지만 낮은, 나의 공간 어느 곳에서나 같이 있다. 두려움과 절망을 숨겨두지만 가끔씩 새벽에 찾아오는 기억들의 끝과 같다. 그래서 죽음은 늘 가까워서 불편하다."


신남전기의 '은하철도 999'의 세계를 오마주한 작품으로 마주하는 '죽음'이라는 개념은 흔한 것이 아니었다. 리뷰를 쓰며 생각을 정리해보니 거의 마츠모토 레이지 작가의 세계관 속에 어느 순간 들어가서 그 세계에서의 죽음이 가진 의미에 생각해보려니 여러 질문들이 겹쳐진 것 같다. 다른 의미의 '낯선 죽음', 현실이 아닌 상상의 세계를 오마주한 공간에서 만나는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더 낯선 것이었기에 더 많은 질문과 함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죽음의 유무를 두고 갈라지는 유한의 삶과 영원의 삶, 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더 복잡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괜히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이가 이런 낯선 상황에 빠져버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계 몸을 찾아 떠났지만 그 실체를 보고 결국 뒤돌아섰던 주인공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오래된 미래와 현대의 신선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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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입장권 디테일에 감동했다.
매표소에서 받는 기차표라니!
은하철도 999답다.


사실 이렇게 긴 리뷰를 쓰는 것도 처음이고 너무 길어서 쓰면서 걱정했던(?) 리뷰도 처음인 것 같다. 처음 알게 된 것들, 즐겁게 체험한 것들, 깊이 감상한 것들. 가기 전부터 생각한 것들도 많았는데 전시회에서 경험한 것들도 다양해서 다 담으려 하다 보니 많이 길어진 것 같다.

다녀오고 나서 남은 여운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신선하다고나 할까. 전시회 첫인상부터 구성 방식, 오마주 작품들, 체험 공간들까지. 무엇보다 이 전시회의 주제였던 '은하철도 999'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예상치 못한 느낌이 뱅글뱅글 맴돌고 있다. 아마 그 티백을 이번 전시회에서 뜯었는데, 그냥 평범하게 우려내기 보다는 조금 더 나아가서 특별하게 요리한 기분이 든다. 오래된 미래를 최근의 현대기술로 만났으니, 다시 생각해 보니 이 만남의 정의부터 새삼 신선한 것 같기도 하다.

체험으로 즐길 것이 정말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시회에 담겨있는 오마주 작품들을 통해 느낀 것들을 글에서 더 언급하고 싶었다(본인이 이런 방향의 감상이 더 취향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은하철도 999'의 세계관과 연결하여 작품을 감상하는 코드를 미리 전시회에서 주었으니, 한 세계관과 작품을 연결 지어 감상하는 것이 또 다른 재미였다. 사진도 찍고 많은 체험 공간을 즐기는 것도 정말 좋지만 이 전시회의 주인공이 무엇인지 기억하며 전시회를 즐기면 더 풍부한 감상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팁을 주자면 은하철도 999의 스토리를 모른다면 슬쩍 검색해보고 전시회를 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오래된 미래'


'오래된 미래가 궁금하다고' 막연히 누워서 밤하늘을 보면서 우주에 가보고 싶다고 괜히 생각하듯이 전시회에 가기 전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다시 보니 프리뷰의 제목이 정말 막연하기만 했던 웅얼거림처럼 보인다. 처음으로 호기심뿐이었던 전시회와의 만남, 그에 대한 프리뷰 끝에서는 어떤 리뷰를 남기게 될지 궁금해 하기도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 글의 끝에서 다시 읽어보니 '막연한 호기심'이라는 것에 대한 신뢰가 더 생길 것만 같다. 오래된 미래, ' 단순한 기억'뿐인 것에서 '더 기억할 수 있는 것'으로 남게 된 전시회 갤럭시 오디세이 展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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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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