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 가족 : 남성의 환상, 여성의 현실 [도서]

글 입력 2018.08.2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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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트렌드’가 된 페미니즘 문학이 다양한 현실 폭로와 지향점을 가지고 부지런히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위치의 여성 역시 비춰지고 있다. 신중선 작가의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은 가족에서 위치하는 여성을 조명한다. 모두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공기처럼 당연하게 존재하는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과 상통하듯, 가족제도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집단이면서도 그 안에 고요히 존재하는 아이러니로 무수한 개인을 할퀸다.
 
유교적 가부장제와 집단주의로 점철된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 의미하는 바는 특히 거대하다. 유교적 가르침은 전통적으로 남녀의 역할을 따로 규정하며 서로가 유별함을 강조했다. 맡은 바를 해내지 못하면 가족을 구성하는 무언가의 결핍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의무의 굴레는 여성에게 더욱 강하게 옥죄어진다. 이 책은 한국의 가족극장에서 여성이 어떤 식으로 위치하는지, 어떤 의무를 요구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부조리로 작용하는지 낱낱이 들춰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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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 냄새


「정희의 시간」은 가족이 여성을 얽는 굴레가 얼마나 단단한지, 그리고 남성은 거기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버지는 평생 방랑하고 할머니는 그 탓에 집안의 모든 생계를 홀로 떠맡는다. 그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인을 맞아들였고 지친 부인은 달아난다. 오빠는 새엄마의 나쁜 점을 할머니께 모두 일러바치고 며느리가 괘씸한 할머니는 모든 지원을 끊는다. 흔들리는 가정에서 그 모든 피해는 딸, 정희가 떠안는다. 오빠는 정희가 역겨워하는 할머니의 냄새를 맡지도 못한 채 편히 삶을 영위한다. 마치 그의 아버지처럼. 그들은 가족과 세계의 균열이 만들어내는 악취를 맡을 수도, 맡을 생각도 없다. 정희를 강간한 자의 냄새를 맡은 것도 정희 자신뿐이었다.
 
정희가 강간을 당했지만, 아버지는 사건을 묵인한다. 병에 걸렸어도 걱정은커녕 정희 탓을 한다. 아이를 낳았어도 어머니인 정희만 비난받는다. 아버지에게, 가족에게, 사회에게 정희는 그저 무탈하게 자라 가족이라는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퍼즐 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동등한 조각이 아닌 그림의 소유자로서 군림하는 남자 구성원은 여자 구성원이 자신의 가족을 완성하기 위해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의무 : 허상


의무라는 허상은 「노래방 여자」의 미옥처럼 피해자를 만든다. 생계의 의무를 떠맡고 평생 일만 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생산적인 일을 할 줄 몰랐던 어머니. 미옥에게 부모님은 그렇게 기억되어 있다. 본래 남자에게 주어지는 의무는 숭고하게 기억되지만, 여자에게 주어지는 의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무게가 더한 짐짝과 같다. 이러한 모순은 미옥에게도 그대로 타격을 가한다. 노모의 부양은 남동생에게는 선의였고 미옥에게는 현실과 타협되지 않은 불공정한 의무였다.
 
유감스럽게도 미옥은 그 의무에 그대로 잠겨버린다. 미옥은 자신의 어머니가 마땅한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딸의 의무를 고단하게 이행해야 했고,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어머니의 의무를 환상 속의 아이에게 이행한다. 미옥은 온갖 의무로 잠식된 가족극장의 끔찍한 모순이 함축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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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 반칙


「반칙왕」과 「괜찮아」에서 의무의 압박은 현실적으로 나타난다. 「반칙왕」의 석영은 아버지의 반칙을 위해 희생하고, 가족 구성원들은 오빠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한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반칙하며 싸우고 악역을 자처한다. 반칙의 피해는 고스란히 석영에게 간다. 아버지는 ‘반칙왕’으로 규정되지만 반칙의 피해자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남성의 의무는 숭고하게 여겨지지만 여성의 의무는 당연히 짊어져야 할 잔업이기 때문이다.

「괜찮아」의 소정 역시 마찬가지로, 직장의 포기와 두 아들의 양육을 모두 감수해야 했다. 남편은 숭고한 의무를 담당하지만 아내인 소정에게는 권리를 포기하고 의무를 맡으라고 한다. 그 의무는 자발적인가? 여성에게 그것은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자 고민이다. 소정은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새 생명을 품었다는 기쁨이 아닌 직장 등의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먼저 느낀다. 아들의 자폐증을 진단한 의사는 부모의 부족한 애정을 탓한다. ‘포기해야 하는 의무’만이 주어지는 여성에게는 오늘도 모성애라는 모순적인 숙제가 주어진다.

   

의무 ≠ 꿈


이 책은 이러한 모순을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은 아내가 부재한 가정에서 하나뿐인 아들마저 보호소로 보낸 가난한 남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가족 해체의 과정을 표현한다. 남자의 상상 속에서 아내는 값비싼 모피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가난한 가정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외친다. 남자는 모피가 그녀를 망쳤다고 생각하고, 꿈속에서 그녀를 죽인다. 모피가 아닌 월남치마를 입어야 하는 가족의 퍼즐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그녀는 존재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퍼즐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여성은 삶 자체를 부정당한다. 여성은 가족완성의 의무를 짊어짐과 동시에 가족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게 된다. 남자가 그토록 불을 붙였던 꿈이라는 성냥갑은 결국 불을 피우지 못했다. 가족완성을 바랐던 남자의 꿈은 아내의 꿈과 결코 같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방」 또한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 아내와의 삶을 남편의 시각으로 서술한다. 여기에서의 남편 역시 가족완성이라는 꿈을 고대했던 인물이다. 고아로 자란 남자는 가족완성의 환상을 안고 결혼해 아이를 입양한다. 그러나 아내에게 양육은 현실이었다.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를 파양한 아내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가족의 대체물로 남편이 키웠던 시츄와 물고기를 죽인다. 아내는 세상과 격리되어 가족이라는 퍼즐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가족이 채워지는 과정은 남편에게는 꿈이었으나 아내에게는 삶을 지배하는 의무감과 죄책감의 원인일 뿐이었다. 그녀는 가족이라는 그림이 채워지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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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성은 도망간다. 「정희의 시간」의 정희가 그랬고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의 아내가 그랬고 「괜찮아」의 소정이 그랬다. 「아내의 방」의 아내도 자신의 방으로 달아났다. 퍼즐 조각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자신의 위치를 부정하며 가족이라는 그림에서 빠져나간다. 그러나, 그러한 도망 역시 금기시된다. 가족을 메워야 하는 의무를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윤김지영 교수의 해설을 인용하면, 남자의 야반도주는 흔히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의 시작으로 그려지지만 여자의 야반도주는 부정적인 금기로 다뤄진다. 가족을 지키는 것은 남성에게는 선택이나 여성에게는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이다.
   
흥미롭게도,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기득권의 위치에 올라선 여성을 그리기도 한다. 「묘화는 행복할까」의 묘화가 그렇다. 아버지의 폭력이 횡행하는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란 묘화는 인정받는 결혼에 성공하기 위해 원하는 남자를 이혼시키고 하나의 가족을 파괴한다. 완성되지 않은 퍼즐 속 하나의 조각이 되어 고통받았던 묘화는 종국엔 다른 그림을 해체하면서까지 자신의 그림을, 혹은 남편의 그림을 구성하는 조각이 되기로 한다. 그 그림에 어울릴 만한 퍼즐 조각으로 둔갑해서까지 말이다. 그림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묘화는 가부장제와 가족제도에 순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이용하여 부조리를 재생산하기로 한다. 전자의 여성들은 가족이라는 안정성의 허상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똑같이 허상이 되기로 한 묘화는 그저 편해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묻는다. 묘화는 정말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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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딸, 엄마, 아버지, 아기를 유기하여 엄마조차 될 수 없었던 이, 불임으로 인해 아버지가 될 수 없었던 이 등 다양한 인물에게 현실을 투영하여 한국 사회의 가족극장이 묵인하고 있는 불합리를 폭로한다. 소설들은 가족이 남성에게는 이루고자 하는 꿈이나 여성에게는 현실이자 의무로 머문다는 사실을 같은 맥으로써 폭로한다. 한국사회의 가족은 가부장제로 점철된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투영하는 작은 사회이다.
 
그래서, 이 책 및 페미니즘이 내리는 답은 가족해체인가? 가족의 결성이 가부장제를 전제한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먼저 요구되는 것은,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을 멈추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 여부와 관계없이 저 거짓말은 사회 차원에서 강요되기에 더욱 멈춰져야 한다. 한국사회의 가족에서는 여자가 훨씬 더 큰 권리를 포기하고 큰 의무를 부여받는데도 행복을 강요받는다. 그 행복이 허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가족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여성의 현실은 남성의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한 조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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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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