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빠, 오늘은 뭐 먹을까? [기타]

글 입력 2018.08.25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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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만남은 늘 오랜만이다. 최근의 한국사회에서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무의미하기는 하다만, 나의 아버지는 한 직장에서 2년을 채 넘기지 못하신다. 쉰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이 질리면 사표를 쓰고 살던 곳이 싫증나면 떠나 버린다. 아버지는 국내 방방곡곡을 넘어 일본과 중국까지 직장과 거처를 옮기셨다. 아버지의 삶은 흔히 말하는 역마살의 전형이다. 때문에 나는 아버지랑 떨어져 산 기간이 함께 산 기간보다 길었고, 내가 아버지와 함께한 유년시절의 기억은 희미하기만 하다. 내 고향 친구들, 동기들, 어쩌다 알게 된 사람들의 취향과 고민거리까지 아는 나지만 아버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다. 나는 아빠랑 친하지 않은 것이었다. 23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만큼 씁쓸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다른 아빠와 딸의 관계를 언제까지 부러워하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누구에게든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만남을 준비한다. 아버지라고 다를 것이 있을까? 친하지 않은데 친해지고 싶다면 데이트 신청을 하는 수밖에.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아버지와 친해지기’ 프로젝트를 실시했고, 작년 겨울부터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고하고자 한다.


거북시장.jpg
▲ 아버지와 인천 거북시장 가는 길
 
 
  
1. 닮은 그림 찾기

작년 겨울, 오랜만에 아버지와 만나 우리 학교 앞에서 밥을 먹었다. 아버지와의 식사는 메뉴를 선정하는 것부터 까다로웠다. 둘 다 서로에게 선택을 미루며 무심한 척 하지만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짜고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아버지는 시원하고 맑은 국물을 좋아하신다. 나는 약속 장소 주변의 맛집을 미리 검색해왔지만 아버지의 입맛에는 어림없었다. 심사숙고 끝에 합의된 메뉴는 뚝배기 불고기였다.

나는 밥을 무척 빨리 먹는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해준 밥을 동생보다 많이 먹기 위해 밥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고등학교 때는 점심, 저녁 시간에 밥을 빨리 먹으면 짬을 내어 잠을 자거나 친구들과 운동을 할 수 있으니 헐레벌떡 밥을 먹는 것은 꽤 유익한(?) 습관이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와서 낯선 사람과 식사를 함께할 일이 많아지면서 밥 먹는 속도가 예의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고 습관을 고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나보다 밥을 더 빨리 드셨다. 아버지는 뜨거운 불고기를 참고 삼키고 계셨다. 나는 "아빠 천천히 먹어도 돼."라고 하면서 우리의 닮은 점이 내심 반가웠다. '나는 아버지의 쌍꺼풀 없는 눈과 밥 먹는 속도를 닮았구나.' 생각하였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툭툭 질문을 건넸고, 아버지는 길지 않은 답과 같은 질문을 하셨다.


“아빠. 요즘 다니는 직장은 뭐하는 데야?”
“큰 딸은 어디 취직하려고?”
“아빠 회사에서 밥은 잘 나와?”
“자취한다고 대충 때우고 그러지 말거라.”


신기하게도 서로의 안부는 서로의 일과 밥에 대한 관심으로 대체되었다. 친구들과 만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던 나는 아버지에게는 무미건조한 질문들뿐이었다. 아버지와 헤어져서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한 질문 중 아버지‘에 대한’ 질문은 몇 개나 될까? 아버지의 감정, 관계, 동기,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를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허무한 되새김질을 하였다. 그리고는 소개팅을 앞두고 이야깃거리를 생각하고 할 말을 미리 준비하듯이, 아버지와의 다음 만남을 미리 그려보았다.


 
2. 리액션 좋은 관객

작년 1월의 만남이 그 다음 번의 만남이었다. 아버지와 전보다는 좀 더 편안한 식사를 마치고, 영화를 보러 갔다. 아버지와 나는 공통적인 취미가 거의 없었다. 하다 못해 TV 보는 취향도 달랐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와 TV 앞에 앉아서는 사소한 입씨름을 벌이곤 했다. 아버지는 뉴스나 역사, 과학 분야의 다큐멘터리를 좋아하셨고, 나는 음악 방송이나 만화가 좋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생각해낸 아버지와의 데이트 코스는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아버지와 영화관에 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코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와 본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마지막이었던 거 같다. 우리는 그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영화 <공조>를 보기로 하였다.

상영관에 입장하기에 앞서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어색하지 않을지 걱정했다. 그러나 팝콘을 사들고 아버지와 어두운 상영관으로 들어설 때의 느낌은 친구나 남자친구와 함께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되자 아버지의 표정은 들떴고, 나의 기분은 약간의 구름이 꼈다. 그동안 영화 한편 보자고 하지 않은 것이 미안할 만큼 아버지는  보여주셨다. 스크린이 잘 보이지 않으셨는지 이내 안경을 꺼내 쓰고 영화에 집중한 아버지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였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서며 아버지는 내게 ‘어디는 재밌었고, 어디는 아쉽더라.’는 식의 짧은 감상을 전하셨다.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나누는 것은 친구나 남자친구와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또 한 번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었다.

 
 
3. 나 남자친구 생겼어!

작년 5월 E채널에서 예능 <내 딸의 남자들> 시즌 1을 선보였고, 얼마 전 시즌 3가 종영했다.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인터넷 상에서 연예인의 딸과 그들의 남자친구의 연애사는 꽤 화제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아버지들은 패널로 등장하여 자신의 딸이 소개팅을 하거나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VCR 너머로 바라본다. 아버지는 딸의 연애를 초조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또는 자랑스럽고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마 그들은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잡고 걸어온 딸의 손을 영상 속 남자에게 넘겨줘도 괜찮을지 나름대로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니 나의 아버지의 반응도 궁금해졌다. 밥을 먹으며 여전히 쉽지 않은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나는 호기심이 가득 어린 눈빛으로 아버지에게 그 당시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에 대해 말했다. <내 딸의 남자들>에 출연한 아버지들의 표정 중에 어떤 표정에 가까울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담담한 목소리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마고 이론은 사람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심리학적 기제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지배적인 성격 특성을 지닌 상대에게 반응하게 된다고 한다. 특히 여러 연구에서 많은 여성들이 아버지의 긍정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특성 또한 지닌 배우자를 만난다는 것이 밝혀졌다. 악의 없는 순수한 축하의 표현에서 나를 향한 신뢰와 존중을 느꼈고, 애석하게도 호들갑 없이 그 침착한 표정에서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와 꽤나 비슷한 남자친구를 만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보다 내 선택을 믿고 지지해주지만, 어떤 일에도 약간은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참 닮아 있었다.
 


4. 아버지에게 가는 22752보의 걸음

가장 최근의 만남은 종로에서의 걷기 데이트였다. 교환학생을 다녀온 후 처음 뵙는 것이기도 하였다. 딸과의 점심 약속을 위해 아버지는 인천에서 지하철을 타고 약 2시간의 여정을 하셨다. 이 날은 동생도 함께 만났다. 우리는 숯불고기 쌈밥을 배를 채우고 청계천을 걸었다. 아버지는 큰 딸 덕분에 서울 구경을 해본다며 핸드폰 카메라에 정성스레 그 시간을 담으셨다. 청계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종로 5가에 위치한 광장시장으로 향했다. 가게의 불판과 찜솥, 상인들의 목소리가 정신없이 열기를 뿜어냈다. 아버지는 먹거리를 보며 감탄하는 나와 동생을 지긋이 바라보셨다. 우리는 목을 축이려 과일 주스를 한 잔씩 사마셨다. 즉석에서 착즙기와 믹서기로 만든 100% 과일주스를 파는 노점상이었다. 오렌지와 키위와 토마토는 우리 혀끝에 단맛으로 남았고, 우리의 시간은 투박한 설정샷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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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시장에서 사 먹은 과일주스
 

그 다음으로는 아버지가 가보고 싶어 하셨던 종묘로 향했다. 아버지는 교실 맨 앞자리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처럼 눈을 반짝이며 가이드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새로운 사실을 차곡차곡 정리하기 위해 열심히 굴러가는 아버지의 머릿속이 보이는 듯하였다. 나 또한 이제야 알게 된 아버지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을 열심히 담고 있었다. 우리 아빠는 날이 좋은 날 무작정 걷는 것을 좋아하고, 예쁜 것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을 좋아하고, 우리의 웃음소리를 좋아하시는 구나. 올여름 더위만큼이나 아버지에 대한 학구열이 더욱 타오르는 하루였다.
 


     

어렸을 때의 아버지와 요즘 내가 보는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세월이 변하면서 아버지 스스로 많은 변화를 겪었겠지만 본질적인 특성까지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하던 아버지와 친해지고 싶은 아버지에게서 보이는 차이는 단지 내 시선의 차이에서 기인했을 뿐이다. 나는 멀리 있는 대상을 투명하게 ‘쳐다보기’만 했던 것에서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것으로 초점을 달리하였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사실 아직도 아버지와 친하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하물며 생판 남이었던 사람과도 말 붙이고 살 부딪치며 친해지는데, 지금 내가 친해지려는 사람은 나를 낳아준 내 아버지이다. 친해지기 쉬우면 쉬웠지, 어렵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난 아버지와 친해지기 위해 맛있는 밥으로 환심을 살 것이다. “아빠, 오늘은 뭐 먹을까?”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아버지. “더 이상 쓸쓸해하지 마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 각각 인순이의 '아버지', 싸이의 '아버지' 중에서





[최희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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