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의 결혼식, 사랑은 타이밍일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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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입력 2018.08.2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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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커버스커 - 사랑은 타이밍


너의 결혼식. 우리의 결혼식과 나의 결혼식이 아닌 너의 결혼식. 제목에서부터 느낄 수 있던 짐작은 결국 현실이 되었고 10대의 청춘은 시간이 흘러 30대가 되어 결혼을 마주하게 된다. 황우연(김영광 분)과 환승희(박보영 분)의 이름은 그들의 이름처럼 운명과 역할을 나타주고 풋풋한 첫사랑은 애절하게 그리고 시큰하게 지나가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여기까지가 표면상의 아름다움과 로맨스/코미디 장르가 가질 일반적 성향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이고 그 이면을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여러 영화의 성공방식을 따라해 클리셰들을 가져왔음과 더불어 미진한 각본, 박보영이라는 인물의 활용, 다른 예술 장르에서 사용된 어휘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우리 관객 일반의 투영. 감독이 모를리가 없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이 영화는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는 ‘그래도 사랑’이라는 태도가 아니라면 좋은 평을 줄 수 없다. 개봉 시기와 로코물이 없다는 타이밍 하나는 잘 잡았다는 점에서 사랑은 타이밍이 아닐지라도 개봉의 타이밍은 잘 잡은 영화. 너의 결혼식이다.

영화는 2012년 대만에서 개봉한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와 흡사한 점이 아주 많다. 감독이 각본을 가져와 한국인 배우를 쓰고 동일한 구조를 다른 사례를 통해 풀어냈다는 점만 제외하면 영화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박보영’이라 이름을 바꿔도 될 정도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는 결말의 해석을 놓고 평행 세계라는 논의가 여지가 있기라도 했지만 이 영화는 “마 이게 상업 사랑 영화다!”식의 배짱을 부린다. 물론 재미야 있었지만 오열을 하게 하는 짙은 감성이나 눈물 찔끔 포인트도 없고 유머 코드만이 살아남았다. 오히려 김영광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훈훈한 어깨와 수트빨 떄문이었고 “굳이 이 영화를 봤어야했나”라는 생각은 김영광의 매력을 조명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여담으로 187cm라는 김영광의 키는 영화 중간 중간 박보영과 전신샷을 잡아줄 때 박보영이 너무 작게 나와서 조금 더 키가 큰 여배우를 썼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마저 들게했다. 캐스팅에 힘입었다면 카메라의 구도나 미술에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 아쉬움이 남는데 그것마저 박보영의 매력이라고 보거나 고목나무 매미 같은 매력이라 말한다면 더할 말은 없다.

유머의 소재로 이용되는 친구들과 힘든 가정 배경을 가진 여자 주인공, 경쟁 상대의 등장 그리고 그 여자 주인공을 위해 고난을 극복하는 남자 주인공. 감독이 남자인 것과 동시에 내가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 이런 남성 발화가 주된 영화에 공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첫사랑의 감정의 소용돌이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영화에 살을 붙이고 주체의 역할을 의심 당해본 적이 없으니 황우연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숱하게 들어오고 겪어본 남성의 발화는 이제는 제발 여성의 발화를 듣고 싶게 하고 들어야 한다는 필요성까지 내포하게 된다. 열망으로 가득찬 나의 마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존재하기에 그리고 사회적 필요성과 함께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기사에 결은 좀 다르나 설명과 함께 나와있다. 화분시점의 즐거움, 정말인가요? 영화에서 황우연의 감정선은 독백을 통해서든 대화를 통해서든 그 중심으로 진행되기에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환승희의 감정선을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황우연의 눈을 통해 진행되는 사례 중심, 사건 중심으로 그녀의 감정을 추측해 볼 수 있는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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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좌), 김영광(우)


환승희의 감정과 진심을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사건이 있음을 통해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상황을 통해 상상만 할 수 있을 뿐 설명을 들은 적도 물은 적도 없다. 이런 방식이 남성의 사랑을 북돋거나 그의 일상 속 미지근한 감정을 키워갈 순 있으나 그녀가 진정 어땠는지 이해한 적이 있음을 보여주진 않는다. 남성의 입장을 대변하고 공감을 하게 하는 감독의 연출일 수 있으나 그녀의 마음을 담아낼 수 없는 역량이라면 영화 밖에서도 고민을 해봐야 하는 지점이다. 순정이 첫사랑으로, 영원할 것 같은 사랑으로 미화되는 것은 달갑지만 기존의 코드를 답습하는 것은 달갑지 않다. 그녀의 직접적인 발화로 심정을 이해하는 장면을 삽입하지 않더라도 흩뿌려놓는 단서라든지 계속해서 응시했던 그녀의 눈길이라든지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은 많다. 또한 영화의 캐릭터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박보영에 관한 것이다. 귀여운 이미지로 소비되는 그녀의 역할은 사실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보며 이 영화의 감정이 여실히 깊어지는 지점은 그녀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위적인 사고로 황우연이 다치는 것부터 시작된다. 영화와 연출의 한계도 분명하지만 이제는 박보영 스스로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였으면 좋겠고 이는 더불어 그녀에게 비슷한 류의 작품만 원고가 들어오는 것인가 의문을 품게하는 한국 영화/드라마 시장의 문제를 삼을 수도 있는 지점이다.

“첫사랑은 잊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두는 거야” 스무 살 힘들어하는 나에게 우리 과 교수님이 전해준 말이다. 철학은 사랑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듯, 이 말을 인용하여 학교 대나무숲에 댓글을 달았더니 좋아요를 수백 개는 받았다. 애절하고 아련한 첫사랑은 분명 시큰하게도 작용하여 미움을 낳기도 한다. 영화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환승희라는 이름은 황우연에게 일상 속에서 그녀를 상기시키게 만드는 “환승입니다”라는 소리뿐 아니라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 아쉬움을 내포하는, 환승을 자주한다는 푸념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찌질한 복수심 혹은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는 이야기. 헤어지고 나서 혹은 그리운 마음에 타인을 욕해본 기억은 다들 분명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나왔듯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미움을 키우고 일부러 삐뚤어지기도 했으며 받아주지 않음에 술자리에서 한탄들을 쏟아낸다. 그 이면에는 자신은 무고하고 나의 사랑은 순수하며 이를 미화하려는 아름다움도 존재했다. 방향을 잃은 사랑 속에서 방황하며 먼저 사랑해본 사람들의 문화를 답습하고 어느새 그들과 똑같이 된 나를 보며 결국 나도 그런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 이토록 열심히 타인을 욕할 때 우리는 부끄러움 없이 타인을 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걔는 이래서 나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등등. 그러나 이것은 사실 타인을 욕하는 것이 아니다. 잊을 수 없는 상대를, 상실을 인정할 수 없는 상대를 불멸의 영역으로 옮겨 잊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셈이다. 옮겨진 그곳은 바로 자신이며 이미 상실의 대상인 상대를 나의 일부로 만들어 상대를 욕한다 생각하지만 그것은 실상 부끄러움 없는 자기비난인 셈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당시 그대의 눈에 비친 나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는 프로이트의 깊이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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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헤어짐을 앞둔 장면


우연과 타이밍에 관하여 “결국 사랑은 타이밍이다 내가 승희를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는지 보단 얼마나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느냐가 더 중요하고 그게 운명이고 인연인거다.” 황우연이란 이름에 맞게 우연을 중요시하지만 그는 그 우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감정을 보았다. 우연이라 불리는 것을 위해 언제나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를 그렇게 만드는 것마저 우연이라고 말한다면 가슴 속에서 쉬이 덜어낼 수 없는 열망은 감히 무어라 말하기 어렵게 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운명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운명이 필연임을 알 수 있는가. 그 대상을 위해 과연 운명대로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은 타이밍이란 말은 인연이 잘 되었을 때 나오는 발화로 쓰이지 않는 만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한단 말로는 사랑할 수 없군요.” 장범준이 전하는 사랑 가사처럼 사랑과 현실이 대립하는 순간 속에서 사랑 한단 말로는 상황을 바꿀 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커져가는 이 마음을 아닌 척하며 가리려 하지만 커질 대로 커진 마음은 새어나갈 수 밖에 없고 나이를 먹으며 느는 것은 사실 사랑을 잘하는 법이 아니라 감정을 숨기는 법인 것만 같다.

승희에게 우연이 그리고 그들의 인연이 우연의 연속처럼 보이는 것은 우연과 승희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연과 승희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이다 싶은 순간이 3초래”. 우연은 그 3초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마음과 시간을 쏟았을지 나의 역사를 비롯하여 감응해 보았고 이는 누구나 겪었을 격동의 시간이었다. “어떤 사람이 그랬다 첫사랑은 사랑의 걸음마라고 넘어지는 것을 먼저 배워야 나중에 제대로 걸을 수 있다고, 또 어떤 이는 그랬다 첫사랑이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다 개소리다”. 이와 같이 트리거가 넘어가는 것 같은 시점은 감정을 터트리는 촉매제를 연상케 한다. 이 촉발된 트리거가 그대에게 달려가는 결심을 만들고 이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그 3초를 기억하며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감내해 간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 우연은 이별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나 예상보다 일찍 다가온다.

승희의 결혼식이 되었고 둘은 그간의 감정을 털어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많은 이들이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채로 남는다. 첫사랑의 정의를 처음 사랑을 알게 해준 이로 말한다면 더더욱 짙게 남아있는 사람일 수 밖에 없다. 그를 좋아하고 모든 것을 기억했지만 상실의 대상이 되어버린 그의 어떤 점을 사랑했는지 쉬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것은 그 때 행복했던 우리의 모습이 있던 것이고 마음 아파했던 시절들이 있었으며 너 아니면 나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만큼의 시간들이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현실과 사랑은 함께 갈 수 없다는 슬픈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다. 그저 그 시간에 충실했고 타이밍이 좋았으면 하는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며 마무리 지을 뿐이다. 우연이라 불려지지만 그것을 비집고 나가려 한 것처럼 사랑은 과정이고, 도달해야 하는 점은 아니다. 그렇기에 결혼 또한 사랑의 결실이 될 수 없으며 승희는 우연에게 또 하나의 환승점이 된 것이다.

지금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면 우리들은 어떤 말을 전할 수 있을까. 여전히 사랑이란 이름으로 붙들기에는 이전 같지 않음에 편안함 속 불안이지 않을까. 아니면 순진한 착각이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사랑은 신념으로 하는 것이 아니지만서도 원태연의 시집처럼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언제나 그랬듯 속시원히 털어내지지 않는다.




[김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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