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편지가 너에게 닿기를, 낭독 뮤지컬 파리넬리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8.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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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제작사 HJ culture는 낭독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극을 선보인다. 이번에 새로 선보인 낭독 뮤지컬 시리즈는 < 마리아 마리아 >, < 파리넬리 >, < 살리에르 >, < 어린 왕자 >의 총 4편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공연은 해당 제작사가 기존에 선보였던 극의 외전 격 공연으로, 소극장에서 올리는 극이니만큼 그 규모를 줄이고 각 인물의 관계성의 초점을 맞추었다. 필자가 관람한 공연 < 파리넬리 >는 본 공연에서 헤어진 브로스키 형제의 이후 이야기를 간략하게 다루었는데, 앙상블 배우들과 수많은 조연 배우들, 오케스트라를 생략하고 대신 주연 배우 두 명과 피아노 단 한 대만이 무대를 채운다. 매 시리즈의 공연은 각각의 스토리라인에 따라 다른 컨셉의 낭독을 보여주는데, 낭독뮤지컬 < 파리넬리 >는 결별한 형제가 편지로 그간 나누지 못했던 속마음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주인공 파리넬리와 그의 형 리카르도가 서로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낭독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무대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는 반원형의 소규모 무대로, 양 극단에 서로의 공간이 아담하게 마련되어 있다. 리카르도의 공간은 관객을 기준으로 무대 왼편, 그의 악보와 노트, 여행가방, 보면대 등이 놓여있고, 카를로 파리넬리의 공간은 무대 오른편, 꽃으로 장식된 화병과 화려한 촛대, 보면대, 꽃다발, 여행가방, 무대용 보관 등으로 꾸며져 있다. 개인의 공간은 개인의 특성을 반영한다.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의 공간은 한 눈에 보아도 리카르도의 공간보다 훨씬 화려하다.

극의 전개는 액자 식으로 이루어진다. 리카르도가 동생 파리넬리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는 커다란 프레임 속에, 본 공연을 보지 못한 관객들을 위해 그들 형제에게 있었던 큼직한 사건들을 추억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본 공연을 보지 않아도 대부분의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편지를 낭독하며 펼쳐지는 추억의 회상은 그들의 공간 사이에 위치한 무대 중앙에서 이루어진다. 나폴리와 스페인에 각각 떨어져있는 두 인물의 물리적 거리를 넘어, 그들이 만나는 무대의 중앙은 추억 속에서나 존재하는 환상의 공간인 셈이다. 그리고 커튼으로 가려진 반원형 무대의 뒤편은 두 형제가 서로 공유하지 못했던, 혼자만이 감내한 기억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카를로가 악몽으로 홀로 괴로워하거나 리카르도가 헨델의 악보를 훔치는 등, 소통의 단절이 빚어낸 비극이 벌어지는 곳이다.


 
파리넬리와 리카르도

노래하는 파리넬리.jpg
 
 
화려하게 꾸며진 자신의 공간이 보여주듯 일생을 주목받으며 살아온 파리넬리지만, 그는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서 늘 외롭고 공허한 인물이다. 여성이 감히 신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를 수 없던 중세 유럽에서는 소년의 아름다운 고음을 유지하기 위해 변성기를 거치지 않도록 거세하는 과정을 통해 소프라노까지 음역대를 넓혔다. 파리넬리 역시 유년시절, 자신의 목소리와 재능을 탐했던 주교에 의해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카스트라토로 거듭난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에 반해 결정된 일은 단지 신체 일부를 잃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남근은 신체 부위 중에서도 남성성이 집약되어 있는, 1등 시민의 표식이다. 거세를 통해 그는 무대 위의 카스트라토로서는 환영받을지 모르나, 남성 권력이 지배하는 일상의 세계에서는 남근이 없는, 2등 시민의 배척당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물리적 폭력의 개입으로 파리넬리는 스스로 원하지 않았던 카스트라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다. 즉 거세라는 비윤리적 의식을 통해 그는 엄청난 신체적 고통 뿐 만 아니라 자아 주체성과 남성으로서의 사회적 지위까지 상실하게 되며, 이러한 육체적 결핍은 정신적 결핍으로 이어져 평생을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결과를 낳는다.

파리넬리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에 결핍을 안고 있었다면, 리카르도는 예술가로서 결핍을 가진다. 그는 동생 카를로를 카스트라토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일조를 한 인물로, 그런 만큼 카를로의 고통에 가장 맞닿아 있으며, 그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감으로 동생에 대한 책임의식을 강하게 느낀다. 그의 부채감은 자신의 음악으로 동생의 목소리를 빛내리라는 결심으로 굳어지나, 세상은 그의 음악이 아닌 오직 카를로 브로스키 파리넬리의 목소리만을 원한다. 새로운 음악을 원하는 카를로와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하는 기교만이 가득한 음악을 원하는 세간의 요구에 몰려, 리카르도는 결국 작곡을 하는 본연의 목적마저 잃은 채 비슷한 음악만을 복제하기에 이르고, 카를로와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리카르도.jpg
 

스스로도 작곡을 하는 예술가로서 어찌 빛나 보이고 싶지 않았을까? 예술이란 그 어떤 행위보다도 가장 극명하게 자아를 표출하는 작업이고, 따라서 예술가는 그 재능의 유무 여부에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세상의 관심을 구하는 사람이다. 평생을 작곡에만 매달려온 리카르도가 자신의 음악이 주목받지 못하는 고통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개인적인 욕망을 뒤로 하고 동생을 위해 일생을 바쳤지만, 그로 인해 결국 자신의 음악마저 색을 잃었을 때, 작곡가로서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던 그 순간을 그는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자신의 음악 속에 동생을 가두고, 파리넬리의 삶을 송두리째 갖고야 말겠다는 리카르도의 넘버 < 내가 갖겠어. >는 그래서 더 아프고 쓰리다. 겉으로 보기에는 극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으며 리카르도의 삐뚤어진 야망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필자에게는 이미 작곡 능력을 잃었기 때문에 파리넬리의 삶을 빼앗지 않고서는 음악가로서 살아갈 수 없는 리카르도의 절규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결핍을 앓는 두 인물의 갈등은 극에 달하고, 결국 끝까지 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채 브로스키 형제는 이별은 맞는다. 서로 떨어져 살면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던 형제는 이번 낭독 뮤지컬 버전에서 새로 공개된 넘버, < 아버지의 유언 >을 부르며 다시 하나가 된다. 어찌 보면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는 말 한 마디로 파탄 난 관계를 되돌린다는 것이 조금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쉬운 결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애초에 그들의 갈등은 함께 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서로가 안고 있는 결핍은 서로에 의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리카르도가 있어 파리넬리는 거세당하던 순간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고, 파리넬리를 통해 리카르도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끝없이 시험당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 둘의 갈등은 본질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동시에,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음악적 환희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자 뮤즈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이별 이후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삶의 주체성은 획득했을지 모르나 여전한 상실감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리카르도와 브로스키는 서로를 불완전하게 만들지만, 오히려 서로의 존재 속에서 하나의 완전함을 이루게 되는 존재인 것이다.


마지막씬 파넬.jpg
  

“너도, 이제 네 음악을 찾아.”
“형, 난 형의 노래를 부를 때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나도. 나도 네 목소리를 들을 때가 제일 행복해.”
 

갈등을 해소한 두 형제는 다시 한 번 음악적 합일을 이루며, 서로를 완전하게 만드는 음악 속에서 자유로워진다. 이때 카를로는 무대 중앙에서, 리카르도는 관객을 등지고 무대 뒤편에 서서 연기하는데, 직선거리에 나란히 서 있어 중앙 블록 관객의 시야에서는 두 사람이 마치 한 몸으로 노래하고 지휘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된다. 과연 이별한 이후, 브로스키 형제는 다시 만나게 되었을까? 두 배우가 연기하는 무대 중앙이 실제가 아닌, 추억과 환상이 펼쳐지는 공간이었음을 떠올려 본다면, 헤어진 두 형제가 다시는 만나지 못했으리라고 추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하다. 결국 서로가 함께하는 결말은 파멸에 이르게 되므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만의 음악을 발견하는 새로운 도약이 그들에게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기억은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이번 낭독 뮤지컬 시리즈의 ‘기억, 그리고 그리움을 노래하다’라는 테마는 브로스키 형제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
 
나날이 고공 행진하는 공연 티켓 가격에 부담스러워하는 관객들에게, 낭독 극은 무대 설치나 의상, 분장 등 공연에 들어가는 제작비를 대거 줄여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또한 소규모의 공연장에서 오직 배우의 목소리만으로 섬세하게 표현하고 호흡하며 관객의 상상력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다른 장르의 공연과는 달리 소박하고 잔잔한 매력을 가진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희곡, 시, 소설, 노래 가사 낭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낭독 극이 시도되고 있다. 더불어 음악과 극의 결합이라는 뮤지컬의 특성 상, 낭독 극만이 가지는 특유의 잔잔한 매력을 어떻게 살릴지에 대해 이번 낭독 뮤지컬 시리즈를 향한 뮤지컬 팬들의 기대가 컸다. 그러나 < 파리넬리 >라는 극 자체에 대한 감상을 떼어놓고, 낭독 뮤지컬로서의 < 파리넬리 > 공연에 대한 감상은 전반적으로 크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낭독 뮤지컬 < 파리넬리 >에서는 배우들이 의상과 분장을 모두 갖추고, 직접 연기와 넘버를 모두 소화한다. 그러다보니 낭독이라는 컨셉은 그저 컨셉으로만 남고, 낭독 극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본 공연의 간단한 장면 시연에 더 가깝지 않았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더군다나 본 공연에서의 줄거리를 설명하기 위해 전체적인 스토리 속에서 인물과 서사를 대거 지운 채 몇 개의 중요한 장면만을 따오다 보니, 낭독의 개념은 흐려지고 소규모의 뮤지컬에 가까웠던 정체성마저 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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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상블의 힘이 컸던 본 공연의 모습


최대수용인원이 325명인 매우 작은 규모의 극장에서 ‘울게 하소서’를 들었다는 것은 감동적이기까지 했고, 본 공연의 길고 복잡한 서사에서 필요한 핵심만 짚어 깔끔하게 보여주긴 했지만, 애초에 소극장에서 보여줄 만한 스케일의 공연이 아니다 보니 그 규모를 줄이는 시도 자체가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 파리넬리 >는 음악극이니만큼,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이 보여주는 힘이 유달리 큰 공연이다. 피아노 한 대만으로 끌어가기에는 힘이 다소 약해 보였던 점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더해서, 아이러니하게도 낭독극이라 배우의 독백이 주를 이루다 보니 그렇잖아도 잔잔한 스토리가 더욱 늘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낭독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기 위해 기존 공연의 외전 격 공연을 준비한 것은 본 공연의 기존 팬 층을 다수 확보할 수 있는 영리한 시도였지만, 외려 본 공연에서의 관객 개개인의 자유로운 극 해석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낭독 뮤지컬 < 파리넬리 >는 브로스키 형제의 관계성에 집중했기 때문에, 주변 인물에 대한 서사는 대부분 생략을 거치게 되었다. 파리넬리의 정신적 동반자이자 유일한 위로가 되어준 연인, 안젤로 역시 형제의 편지 속에서 텍스트로만 존재하는데, 외려 그와 파리넬리의 이야기를 다루었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으로서 재능을 펼치지 못하던 시대에 남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면서 헨델의 밑에 들어가기까지의 복잡한 사연, 카를로와의 인연, 그와의 이별 이후의 삶 등, 본 공연에 대한 관객의 해석을 해치지 않고도 다룰 수 있는 내용의 폭이 훨씬 넓어지지 않았을까? 그동안의 예술가의 삶을 담은 작품들은 대부분 남성 예술가 위주였던 것이 사실이다. 프리다 칼로, 버지니아 울프, 까미유 끌로델, 허난설헌 등, 여성 예술인의 삶을 조망하는 극 역시 많아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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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낭독 뮤지컬 < 파리넬리 >는 극 자체에 대한 퀄리티를 떠나, 새로운 장르의 공연을 감상하면서 기대했던 신선함이나 기존 공연과 다른, 낭독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의 작품적 가치를 보여주기에는 아쉬운 극이었다. 그러나 이렇듯 전반적으로 실망스러운 지점들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둘이서 무대를 가득 채우고도 넘쳤던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아름다운 음악, 짜임새 있는 스토리 등을 통해 외려 본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뮤지컬 < 파리넬리 >의 귀환을 바라는 마음 반과, 이번 낭독 극의 아쉬움 반을 담아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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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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