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980년 5월의 광주, 소년이 온다 [도서]

그날 광주의 진실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18.08.2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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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도 5월 광주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많은 영화와 소설의 소재가 되었지만 이렇게 사실적인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거의 작품 속에 녹아들었고 잠시 그곳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책의 표지를 덮고 나서야 현재를 인식할 수 있었다. 잠이 들 때도 그날 광주의 꿈을 꾸었고 문장 하나하나를 읽으면서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한강 작가의 문체는 그만큼 강력했던 것이다.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과 희생자들, 5.18 민주화운동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1980년 5월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은 총 6개의 목차로 구성되어있다. 각 장마다 서술자가 달라진다. 첫 장에서 타자가 동호를 바라보는 내용을 시작으로 동호 집에 세 들어 사는 정대와 정대의 누나, 동호와 같은 회관에서 시체를 수습하는 일을 했던 선주와 은숙, 시민군을 이끌었던 진수, 동호의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타인의 관점에서 서술되기도 하고 본인의 시선으로 서술되기도 한다.



1. 검은 숨


6개의 목차 중에 2번째는 검은 숨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미 죽어버린 정대가 혼이 되어 누나를 찾는 내용이다. 계엄군에 의해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던 정대는 끝내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정대의 친구인 동호는 1장에서 그들을 계속해서 찾아다닌다. 살아있다면 분명히 남매 중 한 명이라도 연락이 왔을 터, 그렇지만 어떠한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이미 혼이 된 정대는 시체가 가득한 공터에 누워있다. 그들의 몸은 열십자로 포개져 있었다. 심하게 훼손된 시체, 썩어가는 몸들. 그것들을 보는 정대의 마음은 점차 분노로 변한다. 누나를 찾기 위해 죽은 혼으로 온 힘을 다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았다. 혼은 육체에 매여 있고 날마다 상해 가는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을 힘들어한다.

무언가를 죽은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산사람들은 애도 할 뿐,  검은 숨에서는 정대가 죽은 후의 감정이 묘사된다. 무섭기보다는 너무너무 속상했다.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대는 억울했다. 그저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방과 후에 동호와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것이 일상이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무엇보다 누나를 사랑하는 그런 학생이었다.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일상은 정대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어떠한 이유도 납득할 수 없었다.

정대는 혼이 되고 누나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생각하고 생각하면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정대는 계속해서 누나가 어디 있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알아낸다. 누나는 자신보다 먼저 죽었다는 것을.

‘계속해서 내 몸은 썩어갔어, 벌어진 상처 속에서 점점 더 많은 날파리들이 엉켰어, 누나가 어디 있는지 생각하는 데 지친 나는 이제 그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어. 나를 죽인 사람들과 누나를 죽인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아직 죽지 않았다고 해도 그들에겐 혼이 있을 테니, 생각하고 생각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내 몸을 버리고 싶었어. 죽은 그 몸뚱이로부터 얇고 팽팽한 거미줄같이 뻗어 나와 끌어당기는 힘을 잘라내고 싶었어. 그들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어.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2.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3장과 4장에서는 그날의 광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여준다. 5.18민주화운동의 이후를 묘사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우연히 살아남았지만 산 사람 같지 않은 그들, 끔찍했던 기억을 잊고 사는 사람들과는 달리 은숙은 그날의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무뎌질 줄 알았지만 상처는 계속해서 곪아간다. 무슨 축제라도 하는 것 처럼 물을 뿜어내는 분수대를 보며 매일 민원실에 전화해 분수대의 물을 멈춰달라고 전화한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그것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나는 짐작할 수 없었다.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책을 다 읽어 갈 때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에는 가해자가 있을 것이고 그도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계엄군 역시 그날 광주의 거리로 나왔던 사람들과 같은 인간인데 어떻게 그들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대단한 포상이 있다고 할지 언정 어떻게 사람들을 그리 무참하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정말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일까. 그 본성이 어딘가에 내재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 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3. 꽃이 핀 곳으로


마지막 6장은 동호의 어머니 시선에서 서술된다. 곧 계엄군이 찾아올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회관에 있는 동호를 찾아간다. 동호의 생김새와 차림을 새새하게 묘사하는 문장에서 또 울컥했다. 그만큼 동호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집에 가서 저녁을 먹게 얼른 오라고 동호에게 재촉하지만 동호는 가지 않는다. 어쩔 수없이 발길을 돌리면서 저녁을 같이 먹게 꼭 들어오라는 어머니의 외침에 또 속상했다. 어떻게든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리라는 확신을 받고 싶었던 어머니는 계속해서 동호에게 물음을 던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마지막으로 동호는 돌아오지 못한다.

나중에 느이 작은 형이 그러드마는, 총을 맞고 피를 너무 흘려서 네 얼굴이 그리 희었다고. 그래서 관이 가벼웠다고. 네가 아무리 덜컸다고 해도, 그렇게 관이 가벼울 수는 없었다고. 그람스로 두 눈에 핏발이 서드라이. 이 원수는 내가 갚을랍니다. 그것이 뭔 소리다냐, 깜짝 놀라서 내가 그랬다이. 나라에서 죽인 동생 원수를 무슨 수로 갚는다냐. 너까장 잘못되면 나도 따라 죽을 거이다.'

*

그날 광주의 기록이 이렇게 소설로 그려졌다. 독자들에게 광주를 잊지 말라고 작가가 말하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5월 광주 생각으로 며칠을 보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그날의 기억으로 인해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이 많은데, 결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기억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 작품으로 인해 나는 그곳에 잠시 동안이나마 살다가 왔고 고통스럽지만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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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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