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서리를 맞대고, 등을 기대며_연극 '집에 사는 몬스터'

연극 '집에 사는 몬스터' 리뷰
글 입력 2018.08.2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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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읽었던 많은 이야기들은 세상이 아름답다고 가르친다. 수많은 어른들의 손을 거쳐 검증된 그 세상에서 악한 자는 벌을 받고 주인공은 언젠가 행복해진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랄수록 진짜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불확실한 세상과 마주하며,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쪽보다는 '실망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더 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위 '중2병'이라 불리는 청소년 시절 특유의 염세적인 성격이 이런 심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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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사는 몬스터>의 주인공, '덕 매카타스니'도 그런 아이다. 덕의 세계는 작고 폐쇄적이다. 잠에서 깨어나면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는 아빠와의 무의미한 대화가 반복되고, 덕이 세 살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난 엄마의 바이크 '몬스터'는 거실 한복판에서 매번 덕의 발을 다치게 한다. 물론 덕의 마음 한구석에는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싶은 바람이 있다. 덕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바깥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가능성은 곧 불확실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살면서 이미 많은 실망을 맛본 덕은 자신의 세계로 새롭게 들어오려는 것들을 '악'으로 규정해 버린다. 아무런 나아질 게 없다 해도 불확실한 바깥세상을 믿느니 차라리 확실한 아빠와의 세계를 지키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덕의 굳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바깥세상은 덕의 작은 집에 난 문을 두드린다. 찾아오는 불청객들은 늘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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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각자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있다. 사각형과 삼각형이 만나 오각형이 되고 삼각형 두 개가 모여 별 모양이 되듯 타인을 자신의 세계로 초대할 때 서로 다른 두 공간은 제3의 모양을 만들어내곤 한다. 덕도 마찬가지다. 아빠와 덕 둘 뿐이던 집은 덕이 짝사랑하는 '로렌스'와 아빠의 온라인 게임 친구인 '아그네사'가 찾아오며 크기와 모양을 달리한다. 여기에 덕이 쓰는 글의 내용까지 더해져 덕의 집은 시공간까지 넘나든다. <집에 사는 몬스터>는 명확한 경계 없이 배우의 움직임을 따라 자유롭게 만들어지는 무대 구성과 회전의자로 채워진 무대 중앙의 관객석을 통해 덕의 공간이 변하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한다.

유동적인 무대 구성이 보여주는 건 덕의 입장에서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인 집이 그 집을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바깥'이라는 것이다. 특히 아그네사가 아빠 '휴'와 가까워지는 걸 막기 위해 아빠의 험담을 할 때 덕은 아그네사에게 완전한 타인이며 낯선 세계이다. 극의 주인공은 덕이지만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덕을 찾아온 로렌스나 게임 친구인  휴를 만나기 위해 노르웨이에서부터 먼 길을 온 아그네사 역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독립된 개인이다. 자유롭게 움직이며 관객이 보는 각도에 따라 안팎의 경계를 달리하는 문과 창문은 고정된 안과 밖은 없음을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는 그저 서로의 독립된 세계가 충돌할 뿐이고, 그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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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사는 몬스터>는 덕이 점차 자신의 세상을 타인과 공유해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서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장면이나 사건을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남미정 배우가 괴짜인 '아그네사'와 교양 있고 침착한 사회복지사 '언더힐'을 동시에 연기하는 부분은 이 극의 큰 웃음 포인트다. 그러나 대놓고 개그 캐릭터인 아그네사가 페미니스트라는 설정으로 등장해 꼬인 혀로 '가부장제를 철폐하겠다'라고 말하는 장면과, 그 장면을 보며 웃는 관객들을 보는 게 개인적으로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 '희화화된 페미니스트'가 아그네사라는 캐릭터를 위해 꼭 필요한 설정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던 데다가 시의적절한 유머가 아니었던 것 같아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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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절정 부분, 사회복지사 언더힐이 자신을 보호소로 보낼 거라고 오해한 덕은 언더힐의 바이크를 훔쳐 타고 도주하기에 이른다. 덕을 걱정하며 쫓아오는 아빠와 로렌스, 아그네사, 언더힐의 만류를 뿌리치고 덕은 '홀로! 혼자다!' 라고 외치며 질주한다. 불길하게도 비는 덕의 엄마가 사고를 당하던 날처럼 세차게 내린다. 그러나 다행히 이 극은 앞에서 예고한 대로 따뜻한 극이다. 덕은 죽지 않는다. 그저 넘어질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빠 외의 타인이 자신의 삶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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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다 보고 난 다음에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삶을 사는 일은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를 걸어가는 것과 같아. 많은 사람들은 얼어붙은 호수 아래에 끝도 없는 어둠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지. 하지만 아주 약간의 균열만으로 그 얼음은 금이 가고, 사람들은 어둠으로 떨어져."


기억에 의존해 써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확실히 세상은 어릴 적 보던 이야기와는 다르다. 예기치 못한 일들은 종종 우리를 어둠에 빠뜨린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실망할 준비가 되어 있다. 누군가가 내민 손을 잡아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의심 끝에 잡은 손이 따뜻하다면 연극 속 덕의 말처럼 조금 창피하겠지만, 우리는 저마다 그런 창피함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법이다. 한 공간에 들어찬 여러 가지 도형처럼 서로의 모서리를 맞대고 등을 기대며.

극의 제목이기도 한 '집에 사는 몬스터'가 다름 아닌 돌아가신 엄마의 바이크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아무리 애틋한 추억이라도 거기에만 매몰되어 있다면 사람을 고립시키고 다치게 하는 '몬스터' 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비해 과거에 속해 있는 추억은 '확실한 것'이지만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래는 불확실함 속에서 시작된다. 덕도 이제 알았을 것이다. 방에서 혼자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이야기를 펼치기에 부족하다는 사실과, 추억이 때론 우리를 다치게 하는 '몬스터'가 될 수 있음을. 덕은 바깥으로 나왔다. 자신이 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덕의 마지막 모습은 그가 이 불확실한 세상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극장을 나오면서는 그가 잘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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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사는 몬스터
- The Monster in the Hall -


일자 : 2018.08.20(월) ~ 09.02(일)

시간
평일 20시
토요일 15시, 19시
일요일 15시

08.21 화요일
08.27 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 CJ아지트 대학로

티켓가격
몬스터석 35,000원
1층석 30,000원
2층석 15,000원

제작
라마플레이(LAMA PLAY)

주관
CJ문화재단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95분




문의
라마플레이(LAMA PLAY)
070-7705-3590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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