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의 우주, 나의 메텔 – ‘갤럭시 오디세이 展 : 마츠모토 레이지의 오래된 미래’ [전시]

글 입력 2018.08.27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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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하철도 999'의 스토리에 대한 정보가 다량 들어있습니다.)
 
단, 10분이었다. ‘은하철도 999’의 스토리 요약 영상은 10분 동안 나를 그 세계에 매료시켰다.(스토리 영상) 성공하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SF물에는 기술 발전의 양면성이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은하철도 999’는 인체를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2221년이 배경이다.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기계 몸을 구하지 못해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기계 인간들은 불사를 누리면서 살아있는 인간 사냥을 유희로 즐긴다. 주인공인 ‘철이’(원작 캐릭터 호시노 데쓰로)는 인간 사냥으로 엄마를 잃고, 마지막 정거장까지 가면 기계 몸을 준다는 은하철도 999호에 오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챙겨주는 것이 엄마와 꼭 닮은 소녀, ‘메텔’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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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우주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영생을 누리게 된 시대. 실제로 가능하다면, 좋을까? 확신할 수 없다. 단순히 생명의 기간만이 연장된다고 해서 어떤 것이 달라지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기간을 살아가는 모습이 아닌가?
 
‘은하철도 999’ 속의 부유층은 기계로 몸을 바꾸어 영생을 누린다. 바뀐 것은 그들의 몸이었으나, 그들은 정신마저 기계가 된 것처럼 자신들과 다른 인간들을 재미로 사냥한다. 스토리 요약 영상만으로는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연약한 육체를 사냥하며 자신들의 우월성을 확인하려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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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작품의 주인공은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의 어머니를 살해한 ‘기계백작’이다. 그는 철이의 어머니를 살해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녀를 집에 박제해 놓는다. 철이가 열차에 오르는 직접적 동기를 제공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영상에 등장한 대표적 악인이다. 하지만 ‘기계백작’만 악인인 것은 아니다. 육체를 기계로 개조해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부유층뿐이었기 때문에, 기계 인간이라는 존재 양식 자체가 계급과 차별의식을 부추겼을 것이고, 그 결과가 인간 사냥이라는 형태로 드러났을 것이다. 또한 부모의 허영심으로 인해 크리스탈 기계의 몸을 가지게 된 소녀, 자신의 몸을 그리워하지만 영생을 포기하지 못하는 여인 등 많은 사람들이 기술의 부작용을 겪으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은하철도 999’는 영생을 누리는 사회를 보여주면서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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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높지만 좁은 틈과 넓지만 낮은 나의 공간 어느 곳에서나 같이 있다. 두려움과 절망을 숨겨두지만 가끔씩 새벽에 찾아오는 기억들의 끝과 같다. 그래서 죽음은 늘 가까워서 불편하다."

- 전시장 벽면


기계인간들이 그토록 영생을 갈망했던 이유는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에서 벗어난 그들의 삶은 아름답지 않았다. 죽음의 불편함을 덜어낸 사람들은 추악하게 살아가기 시작했다. 사진에 보이는 작품은 기계인간들이 예전의 육체를 묻은 얼음 무덤, 명왕성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구조물의 뒤에는 망자의 목소리와 인간일 때의 기억이 뒤섞여있는 듯 한 그림이 놓여있었다. 구조물 앞에서 바라보면 그림이 구조물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얼음의 행성에 예전의 육체를 묻은 그들은 그곳에 자신의 인간성마저 버리고 온 것인지 모르겠다.



나의 메텔
 
‘은하철도 999’하면 떠오르는 캐릭터는 단연 ‘메텔’이다. ‘철이’가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열차에 오르고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기계사회의 이면을 목격하고 마지막 목표를 이룰 때까지 ‘메텔’은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조력자 캐릭터임에도 그녀가 인상적인 것은 비단 예쁘기 때문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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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는 자신을 돌봐주는 ‘메텔’을 어머니와 꼭 닮았다고 느낀다. 시간이 지나며 그 감정은 사랑으로 번지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메텔’이 어머니 같은 존재이기에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 없는 연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이’와 ‘메텔’의 길이 갈린 것은 둘의 근본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철이’는 기계 사회의 피해자로 어머니마저 잃는다. 기계 사회를 붕괴시키기 위한 그의 노력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그의 성장을 도운 ‘메텔’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기계 여왕의 딸이다. ‘철이’의 성장을 도우며 어머니의 과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속죄를 수행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람의 목숨은 숫자로 계산될 수 없는 것이고, 기계 사회라는 디스토피아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를 ‘메텔’ 개인이 속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근본적으로 함께할 수 없는 둘의 만남은 슬픈 결말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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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LED 글씨가 안보였다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래서 조력자로서의 ‘메텔’은 매력적인 캐릭터일 수밖에 없다. 기계 사회 지배자의 딸이면서 그 사회의 붕괴를 돕는 조력자, 인간성을 잃어가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기계 사회의 일원이면서도 인간성을 품고 있는 조력자, ‘철이’의 어머니로서 그의 감정적, 인간적인 성장을 돕는 조력자. 많은 예술가들이 ‘메텔’에 매료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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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말미, 작가의 그림을 따라 그릴 수 있는 부스가 있어 나만의 ‘메텔’을 그릴 수 있었다. 작가는 그의 우주와 그 속의 사람들을 어떤 마음으로 상상하고, 그렸을까. 30년 전에 나온 작품의 캐릭터를 따라 그리며 나는 전시에 참가한 예술가들처럼 나만의 ‘메텔’을 만들었다. 한 사람의 우주가 독자들에 의해 재창조되고 그 작품의 캐릭터, 공간, 설정들에 대한 다양한 재해석을 경험할 수 있었던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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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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