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순간의 영원함 [공연]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글 입력 2018.08.2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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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원을 믿지 않지만 순간의 영원함을 믿는다. 순간은 매번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에 고정되어 있기에 가장 현재에 가깝지만 결국 과거의 동어와 다름없으며 고로 내가 흘려 보낸 그 순간은 액자처럼 박제된다는 논리이다. 짧디 짧은 인생의 다양한 순간 속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전부를 100으로 환산했을 때 그 중 나를 지나쳐 가기만 해 이젠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인물들은 40을 차지할 것이다. 강한 인상을 남겼기에 기억에는 남으나 내게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이들은 20, 아직까지도 나와 인연을 이어 가고 있는 친밀한 이들이 30 정도 된다. 그리고 남은 10은 사라진 자들이다. 내가 정말 사랑했지만 이제는 옆에 있지 않은 이들. 헨젤(*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맏이로 엄마가 그들을 버릴 것을 알고 돌아갈 길을 잊지 않으려 점심이었던 빵을 조각내 길에 뿌린다)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빵 부스러기가 예상과 다르게 사라져버린 것처럼 소중하다고 해서 언제나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만났던 그 순간만큼은 그들이 내 인생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은 내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었고 하찮은 내 자존심과 이기심보다 대단한 이들이었다. 나는 그 찰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앞서 말한 그 진리처럼 결국 그들은 추억 속에 이름만 남기고 사라졌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그 추억 속만큼은 그들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순간의 내가 주체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그 때의 우리는 수정될 수 없는 과거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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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개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그들의 부재 속에서 확인한다. 유명한 어구 중에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생각이 나서’ 발췌, 황경신)”이라는 말이 있다. 당연히 존재하는 것만 같고 늘 그 자리에 있었기에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오만이다. 음식에만 유통 기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도 기한이 있다. 언제든 누구나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그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일수록 그의 부재가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있을 때 잘하지”라는 말이 흔하게 들리는 이유는 있을 때 잘하는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누군가 오래 머물다 떠난 자리는 먼지조차 쌓여 있지 않다. 우리는 소중한 누군가를 만나고 떠나 보내고 후회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며 성장하고 깨닫는다. 이는 다음의 누군가를 더 충실히 대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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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 굳이 과거 형으로 표기한 이유는 그들이 ‘사라진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나의 영원했던 어느 찰나를 함께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살아가면서 아직도 그들이 종종 생각난다. 그들의 부재는 그들의 존재를 더 공고히 하고, 내 인생에 그들이 있었음을 계속 환기시키며 결국 이 글을 쓰도록 만들었다.

A는 우정보다는 애정에 가까웠다. 나는 그를 떠올릴 때마다 주체인 나의 사유의 관점이 스스로 본인의 전 남자친구를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와 함께했을 때 그에게 성적인 관심을 둔 적이 없음에도 그랬다. 그만큼 그와의 관계를 우선해 그에게 목을 매고 안달했던 나 자신을 애인에게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투영해서 생각한 탓일까? 내 인생 가장 암울했던 시절인 고등학생 때 그녀를 만났다. 그 때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 중에서 그녀는 내게 첫 번째인 사람이었다. 몇 가지 오해가 있었고 나는 그녀 앞에서 다른 거 없어도 되고 너만 내 진심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엉엉 울면서 떼를 썼다. 돌이켜 보면 부담스러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졸업 이후 그녀를 본 적이 없다. 동창들을 통해 소식을 듣지만 그걸로 끝일 뿐이다. 첫 만남이 너무 운명적이어서 그 때의 나는 내가 그토록 꿈꾸던 영원한 친구를 만났음을 예감했다. 하지만 모두가 우울했던 그 시절 내 감정을 너무 쏟아낸 탓에 그녀를 잃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B는 나의 첫 친구였다. 초등학교 6학년, 여자 아이들은 모두 베프 한 명쯤은 있었다. B와 나는 모든 것을 공유했다. ‘모든 것’의 범위는 한계가 없었다. 이야기, 물건, 집.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독식했다. 처음으로 친구에게 독점욕을 느낀 시기이기도 했다. 누군가 B와 자신이 제일 친하다고 말하면 나는 크게 반발했다. 누군가의 생일 파티에서 조금 다투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재미있게도 그 때 다투었던 친구와는 아직도 연락하는 친한 사이이지만 B와는 소식이 끊어졌다.) 나는 B에게 너무 많은 걸 받았다. 그것은 물질이기도 정신적인 무언가이기도 했다. 정신적인 것이야 그렇다 치고 물질적인 것은 가는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인데, 아직도 후회되는 점이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전학을 갔고 전학을 가기 전에는 내 생일이 있었으며 나를 언제나 챙겨 주던 그녀답게 전학 선물까지 내게 한 보따리 싸 주었다. 그걸 받은 나는 B의 생일 때도 뭔가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원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우선순위에 밀려 그것은 계획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것만으로 내가 그녀와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약일 테지만,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일말의 죄책감을 동반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

친구라는 단어의 경계는 모호하다. 잠깐 만나 이름만 알았던 사이도 그 순간만큼은 내게 친구라고 불렸고, 지금은 사라진 A, B도 만약 누군가 내게 무슨 사이냐 물어보면 그들과 나는 친구라 답할 것이다. 그 수많은 친구 중에서도 지금 사라지고도 내게 애상을 불러오는 이들은 영원처럼 느껴졌던 순간을 함께 보냈던 이들일 것이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상황이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려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별’은 그 순간을 담아 낸 이야기이다. 순간의 확장을 통해 우리는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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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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