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동양의 눈으로 본 '판소리 오셀로' [공연]

글 입력 2018.08.2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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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_정동극장_창작ing 시리즈_판소리 오셀로_포스터.jpg
 

서울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역신의 꼬임에 처용의 아내는 역신과 동침한다. 그 광경을 본 처용은 화내기는커녕, 달빛을 보며 노래를 부른다. 그러자 역신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처용이 있는 곳에는 얼씬거리지도 않는다는 설화이다. 이 설화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서양의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이다.

이야고의 꾀임에 넘어가서 부하인 카시오와 아내 데스데모나를 잃게 된다는 비극이다. 질투라는 감정에 눈이 멀어 진실을 보지 못한다. 상황이 너무 절묘하게 맞아서 의심이 의심을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소중한 모든 것을 잃는다. 이방인, 특이한 외모, 그리고 최고의 지위를 얻은 처용과 오셀로이지만, 두 사람의 결말은 전혀 달랐다. 왜 그들은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를 ‘판소리 오셀로’를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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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가만히 서서 부채를 들고 창을 부르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판소리와 연극이 합쳐진 공연이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면서, 그 이야기를 연극으로 표현했다. 도입부에서는 처용가를 부르면서 시작된다. 처용의 생김새를 묘사하고, 처용의 일화를 소개한다. 그러고는 처용의 이야기와 비슷한 베네치아의 오셀로의 이야기를 한다. 한 명의 소리꾼이 오셀로의 여러 인물을 연기한다. 오셀로가 되었다가, 데스데모나가 되었다가, 자유자재로 성별을 넘나들면서 판소리는 진행된다. 판소리와 연극의 만남이었다. 판소리를 하면서 연극을 하는 새로운 형태의 판소리였다. 소리꾼의 표정연기로 극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2018_정동극장_창작ing 시리즈_판소리 오셀로_01.jpg
ⓒ나승열 / 사진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판소리를 보기 전에는 여성, 동양의 시선에서 오셀로를 재해석한다는 말에 기대를 했었지만, 여성의 시선에서 봤다기보다는 동양의 시선으로 오셀로를 재해석했다는 표현이 더 옳았을 것이다. 연출가 임영욱·배우 박인혜 씨의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듯이 희생된 여성의 시선에서 본 것은 맞지만, 현대적인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해석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동양적인 세계관에서 불교적인 수용성, 포용성 같은 넓은 의미의 여성성”으로 원작을 해석했다는 인터뷰가 있었다.

그런 뜻으로 여성의 눈으로 재해석 되었다고 하지만, 여성의 시각에서 어떻게 해석을 했을까 기대했던 나는 이 점이 조금 아쉬웠다. 기녀 단의 입장이나, 데스데모나의 입장에서 오셀로를 재해석했더라면 아쉬움이 남았다. ‘판소리 오셀로’는 동양적인 시점에서 바라본 오셀로였다. 그럼에도 오셀로를 동양적으로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용기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생각이지만, 처용이 설명해 주는 오셀로도 재미있겠다싶다. 처용이 오셀로를 관객에게 들려주듯 했다면 주제가 더 와닿았지 않았을까.

마지막 부분에서 인상깊었다. 오셀로가 질투에 눈이 멀어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후회하는 장면에서 또다시 처용가가 등장한다. 달빛을 보며 춤추면서 이렇게 말한다. “감정이라는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서양과 동양의 차이점이라고 할까. 서양의 ‘오셀로’는 한 인간의 고뇌에 집중을 했다면 동양의 ‘처용가’는 여유를 가지고 감정을 다스리자는 동양의 세계관을 나타낸다.

90분 동안의 공연이었지만, 끝까지 집중해서 봤던 공연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직접 본 판소리라서도 의미가 있었던 작품이었다. 동양의 눈으로 서양을 바라보는 주제의 판소리가 앞으로 더 많이 있었으면 한다.



                
오지영.jpg
 

[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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