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간질에 넘어갈 사랑을 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판소리 오셀로 [공연]

역신보다 더욱 강한 인간의 이간질
글 입력 2018.08.2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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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가를 부르면서 관객석의 맨 뒤에서부터 등장하는 여인이 있다. 붉은 대추같은 피부색깔에 털이 숭숭나서 괴물같은 형상을 한 처용과 비슷한 인물이 있다며, 마치 거울에 비춘 것처럼 비슷한 오셀로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거울에 비치는 것은 서로 반대의 형상을 가진다며, 꼭 반대의 결말을 갖게 되는 이야기라고 하며 인상깊은 비유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야기 - 노래 - 이야기를 번갈아가면서 서사가 진행이 되고, 뒤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분이 추임새를 넣어주셔서 매우 흥미롭게 들었다. 또한 악기 연주가 아주 기가 막히게 노래와 떨어지면서, 감정이 극해지면 연주도 극도로 다다르고 충격에 빠지면 시들시들 들어가는 듯한 악기 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떻게 그런 효과음마저도 악기로 다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맨 처음에 접했던 판소리랑은 다르게 마이크를 써서 분명한 말소리로 들려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은 괜찮았지만, 주인공의 감정이 가장 격해지는 부분에서는 가창가의 성량이 폭발하는 것과 동시에 나의 귀도 폭발할 뻔했다. 너무 소리가 격앙이 되어서 아무것도 잘 들리지 않고 그냥 고함으로만 들렸다. 매우 피곤한 상태로 연판소리를 들으러가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나올 때는 귀도 먹먹하고 잠도 다 깨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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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은 악신의 계략으로 그의 아내가 악신과 함께 동침하는 모습을 보고, 좌절하기는 했지만 그게 신의 뜻이려니 생각하며 춤으로 승화해냈다.

그러나, 오셀로는 이아고의 계략으로 아내 데스데모나를 끝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증거도 없는데도 이아고의 말만을 믿고 아내를 더럽다고 생각하게 된다. 만약 그가 아내를 정말로 사랑하고, 아내의 정조를 믿었다면 지나가는 부하의 말 한마디의 아내를 의심했을까?

하지만, 그도 그럴만한게, 이아고가 한마디 던진 것, "자기의 부모도 속이고 결혼한 여자입니다."라는 것. 부모마저 속이는데 남편은 못 속이겠냐는 그런 한 마디가 굉장히 설득력있게 들리긴 했다. 하지만, 부모님을 속인 게 사랑하는 오셀로와 결혼하기 위해서였다면 본질적으로는 오셀로를 절대 배신할 일은 없다고 생각해야겠지만 부모님도 속일 수 있는데 누군들 속이지 못할까라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을 한다면 데스데모나는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여자가 되어버린다. 물론 데스데모나가 부모를 속이고 이방인과 결혼을 하는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목적과 결과를 헷갈려서는 안된다. 그 하나만을 믿고 결혼을 해버린 데스데모나를 결국은 믿지 못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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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정말 기가 막혔다. 데스데모나의 연기를 할 때는, 면사포를 둘러쓰고 "여보, 사랑하는 나의 남편"으로 단아하고 고운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고, 오셀로의 연기를 할 때는 묵직한 목소리로, "이아고,"로 시작을 하면서 의심을 이어나갔다.

이아고의 연기에서는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측면을 보면서 간사한 자세를 취하고는 데스데모나와 오셀로의 사이를 이간질을 계속 했다. 그 세가지 연기가 주로 이루어졌는데 얼마나 뛰어났는지 모른다. 오셀로의 감정이 극화될 때 가장 절정을 이루었다. 손수건을 가져오라는 말에서 얼마나 집중을 했던지. 신들린 듯한 재능의 세계를 맛보았다.

그 순간, 판소리 극장에서 나는 나왔다. 단순히 '보던' 것에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순간이다. 나는 전혀 다가서지 못할 '재능'의 세계. 천재성을 타고나는 사람들이 있다. 노래에서든, 연기에서든, 때로는 공부에서든. 나는 노력으로 최대한 재능을 따라하는 범인으로 그들의 천재성을 접하면 엄청난 감격을 느낀다. 내가 아무리 따라해도 절대 갖지 못할,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타고난 능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본인의 노력에 달렸지만 그마저도 태어날 때부터 달라지는 조건이라고 생각하면 재능이라는 것은 경악을 느끼게도 하며, 감탄을 느끼게도 한다.

감히 내가 말도 걸지 못할, 공연을 잘 보았다고 감탄하지도 못할 재능이었다. 단순히 소리지르는 것이 아니며, 마이크로도 다 담아내지 못할 그 감정의 흔들림이며, 억센 표정이며 부르짖는 그 감정의 세기가 너무나 생생해서 관람객들을 넘어 닿지 못할 어딘가까지 넘쳐흐를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감정에 호소하는 극은 아니었다. 데스데모나가 죽기 직전에 무조건 우는 진부한 연기를 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이 저버렸음을 꺠닫고 슬퍼서 빨간 나뭇가지를 들고 땅을 쓸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연기가 오묘하게 소름이 돋게 해서 감성어린 눈물이 한줄기 흐르기도 했다.

한 사람이 담을 수 있는 감정의 폭은 얼마나 깊고 다양한지, 그걸 짧은 시간 안에 번갈아가면서 여러 사람들의 감정의 흔들림을 표출할 수 있는 그 재능을 얼마나 뛰어난 지 나는 감히 평가할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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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는 끝없이 속삭이는 이아고의 이간질에 모든 사랑의 믿음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가장 사랑했던 여자를 죽인다. 평생을 함께 해 온 사랑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만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처용과 오셀로의 이야기가 거울처럼 닮았지만 거울에 비치는 반대되는 상처럼 반대의 결말로 갔다고 말한다. 하지만, 처용의 아내를 훔친 이는 이아고처럼 능글맞게, 한차례씩 그의 의심을 증폭시키지 않았다. 역신과 바로 함께 누워있는 자신의 아내를 보고, 처용은 해탈해버렸으나 오셀로는 옆에서 자꾸 이간질을 하는 이아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부정적으로 키워간다. 실제로 바람을 피는 것 자체보다는 증거는 없는데 상상만으로 의심을 하게 하는 게 더욱 부정적인 결말을 낳는 듯하다. 만약 처용의 옆에서도 자기랑 가장 친한 하인이나 노예가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면 처용도 그냥 넘어갈 수는 있었을까? 귀신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계략이다.

그런 이간질에 넘어갔다면, 과연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진정으로 사랑을 했던 걸까? 사랑은 했던 걸수도 있다. 그러나 데스데모나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믿음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사랑을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고, 믿음없는 사랑을 하는 이들도 많기때문에 어쩌면 그것도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랑을 한다면 누군가의 계략에 당신의 사랑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믿음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판소리 오셀로
- 2018 정동극장 창작ing 첫 번째 -


일자 : 2018.08.25(토) ~ 09.22(토)
 
*
09.07(금) ~ 09.09(일)
공연없음

시간
화-토 8시
일 3시
월 쉼

장소 : 정동극장

티켓가격
R석 40,000원
S석 30,000원

주최/제작
(재)정동극장

주관
(재)정동극장, 희비쌍곡선

관람연령
8세이상 관람가능

공연시간 : 80분




문의
(재)정동극장
02-75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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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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