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

글 입력 2018.08.2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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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


2018년 문학이 던지는 최고의 질문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적 감각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청하는가?’


라는 문구로 뒷면을 뽑아낸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은 첫인상이 ‘82년생 김지영’을 연상하듯 강렬했다. 사람이든 작품이든 강렬한 첫인상은 무서울 만큼 속도감을 자아낸다. 이 책을 펼치고 나서 48시간, 이틀동안 나는 그녀의 작품에 몰입하고 또 빠져 들고, 결국 끝장까지 읽고 말았다.

‘정희의 시간’,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노래방 여자’, ‘반칙왕’, ‘아내의 방’, ‘묘화는 행복할까’, ‘괜찮아’ 총 일곱 편의 단편을 실은 이번 책을 추려보면, 정작 단편 속 어느 제목도 이 책의 제목이 아니다. 아이러니했다. 보통은 단편 중 하나가 대표작처럼, 제목을 좌지우지하고 하는데 말이다. 이 아이러니는 편집후기에서 자세히 알 수 있다. 책임편집자 정윤희 씨는 아래와 같이 문장을 적어가며 제목을 선정한 이유는 얘기해 주었다.

문학브랜드 ‘내일의문학’을 론칭하는 동안 신중선 작가님께서 조심스럽게 원고를 부탁드렸고, 올해 초에 작가님께서는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된 원고를 보내 주셨습니다. 친밀한 불행, 정희, 여자 정희, 정희의 시간,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

반어적 표현의 ‘행복하다는 거짓말’…. 아마 여자의 일생을 돌이켜보면. ‘애증’이란 단어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여자라서 좋았지만, 또 여자라서 좋지 않았던 점도 마주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여자라서 가지는 행복의 충만감은 모성애와 비슷하다. 그리고 여자 아이에서 숙녀로 또 성인으로 성장하는 기쁨 또한 여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하지만 이를 역으로 돌려놓고 보면, ‘여자는 말이야.’ 라는 첫머리가 나를 붙잡았다. 특히 군인이셨던 아버지의 영향 탓이었을까? 나는 ‘여자라서’라는 말을 고개를 미친 척 흔들 정도로 싫어했다. 아니, 지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매달 찾아오는 극심한 생리통은 또 어쩌라는 말인가? 이제 막 회사를 퇴사하고 여행작가로 전업했는데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면 내 인생 계획은 또 뒤틀리고 말 것인가? 그래서 일까?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을 부정하지 못하였다. 책을 읽는 내내 지난 기억들이 스쳐 갔다. 지나간 사랑의 뒷걸음 같기도 했고, 씁쓸하고 차디찬 몹쓸 상처의 후유증 같기도, 장마 호우로 구멍 뚫린 하늘 비린내 같기도 했다.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에서 가장 강렬했던 자국을 남긴 건 ‘정희의 시간’이었다. 이리도 차디찬 아니 뜨거운 복수가 있을 수 있을까? 장미꽃잎처럼 붉디붉은 정희의 순결이, 청춘이, 상처가 가슴팍에 오래도록 남아 흥건한 선혈을 남겼을까….

조금은 몽환적이고 입체적인 소설을 읽고 싶다면 ‘꿈이라고 생각하기엔’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여자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상실감과 정체감을 혼돈된 꿈과 현실 경계에서 모호하지만, 그 모호함 속으로 빠져드는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 기쁜 소식은 아니지만, ‘노래방 여자’ 때문에 말다툼이 일어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최근 뉴스를 보면서 이 작품이 떠올랐다. 작품 이름처럼 사회 모순적인 현실을 정면으로 부딪힌 작품이다.

네번째 단편 ‘반칙왕’은 참으로 해학적인 작품이다. ‘반칙’이라는 이름으로 눈을 아웅하며 감아야 하는 걸까? 어디까지 눈을 감고 아웅할 것인가? 프로레슬러였던 아버지를 보며 자라온 어린 딸의 눈에는 세상 어디 까지가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아내의 방’은 자식이 없는 두 부부간의 침묵의 대화를 자녀 입양, 애완동물에 빗대어 찬찬히 풀어간다. 가축이던 동물이 어느 순간 애완, 반려라는 이름으로 사랑받는 요즘, 아내가 겪는 공허함, 그 공허함으로 가득 채운 방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묘화는 행복할까’를 읽으면서 대학생 시절 누군가가 떠올랐다. 실명을 거론할 수 없지만, 꽤나 비슷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심리학 수업에서는 자기애성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라 배웠다. 묘화도 그 성격장애를 가진 마음 아픈 한 아이였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 일곱 번째 ‘괜찮아’를 읽으면서 산후우울증을 떠올렸다. 오늘도 올케와 산후우울증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오던 참이었다. 육아를 오로지 아내의 몫이라 생각하는, 육아고충을, 한 여성으로, 한 엄마로서 감정이 묵살되는, 특히 아픈 아이로 인해 온 가족이 흔들리고 해체되는 가운데 나는 몇 번이고 ‘괜찮아’를 되뇌었다. 정말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라며…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은 페미니즘이란 화두에서 질문을 던졌지만, 이 책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두루 편견 없이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남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도 듣고 싶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좀 더 배려하고, 평등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면 조금씩 양보한다면, 조금씩 이해한다면, 행복하다는 거짓말이 어느새 행복하다는 참말, 정말이 되지 않을까? 그런 세상이 되길 가슴 깊이 목소리를 내어 본다.


[오윤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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