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족의 늪,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

글 입력 2018.08.28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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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feminism]

: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살펴보고, 여성이 사회 제도 및 관념에 의해 억압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여러 가지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역사적으로 남성이 사회활동과 정치 참여를 주도해왔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고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이야기,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꽤 민감한 단어다.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반응은 그것이 진중하게 다뤄야 할 요소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남성 중심적 사회를 비집고 들어오는 여성의 외침이 늘어난 것 같다. 누군가 세상에 외쳤을 때, 그제서야 이런저런 생각에 복잡해진다. 나 역시 부조리함에 물든 이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다 보면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고 뜨끔 쑤시는 순간이 있다.『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은 일곱 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는데  단순히 일곱 명의 이야기가 아닌 일곱 가정의 가정사를 살짝 엿들은 기분이었다. 모든 사건은 가장 친밀한 관계인 부모, 형제, 자식, 부부간의 갈등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정희의 시간」에서는 후각적 예민함을 가진 딸 정희에게 청각적 예민함을 소유한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지 주목해야 한다. 아동 성폭행을 당한 정희를 차갑게 외면한 사람은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이다. 성인이 된 정희가 선택한 성폭행범에 대한 복수는 섬뜩하고도 통쾌했다.

그리고 조금 혼란스러웠던 두 번째 이야기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에는 사십 평 아파트를 소유한 카센터 사장이 꿈인 남자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없다.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공연장에 이끌리듯 들어간 남자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꾼다. 그 꿈에서 보호소에 보내야만 했던 남자의 아들과 괘씸하게 떠나버린 남자의 아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꿈꾸던 카센터 사장도 된다. 하지만 극장주가 계단 앞에 웅크리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을 때, 책을 읽던 나도 꿈에서 깬 듯 허무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세 번째 「노래방 여자」는 20대부터 50대까지 성 판매와 노래방 도우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미옥의 이야기다. 작품 해설을 참고하면 남성들에게는 욕정의 쓰레기통이었고 엄마에게는 감정의 쓰레기통이었던 미옥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기 인형에서 20대 때 버린 아기를 보게 되는 내용이다. 쓰레기통에서 발견해 소중히 보듬고 온 것이 생명체가 아닌 인형임을 알았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다. 미옥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미련한 미옥의 엄마인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

석영의 아버지는 말 그대로 반칙을 많이 해서「반칙왕」이다. 그는 프로레슬러였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노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반칙을 하며 살아간다. 석영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왜 반칙을 하느냐고 묻는다. 그는 "나는 착한 선수가 될 수 없단다. 착한 선수는 영화로 말하자면 주인공인데, 나를 주인공으로 쓰면 누가 레슬링을 보러 오겠니. 주인공은 유명 스타가 맡아야 하는 거다. 난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악역을 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내가 링에서 악당이라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다."라고 답한다. 그래서 나름 이유 있는 반칙왕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석영은 아버지의 일과 오빠의 일, 집안의 문제를 감당해야 하는 '딸'이었다. 왜 가족의 일을 '딸'인 석영에게 떠미는 것일까. 진정한 반칙왕이다.

「아내의 방」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불임 탓을 하지 않고 아이를 간절히 원하지 않는 쿨한 남자인 척 연기하며 아내의 부담감과 의무감마저 대신 덜어주는 자로 자처하지만 아내의 눈에 그는 위선자이자 애착의 대상을 강아지나 물고기 같은 다른 생물체에 전이시켜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작은방에서 지내는 아내가 잠시 외출했을 때, 그가 아내의 방을 뒤적이다가 깨달은 애착물의 행방에 소름 끼쳤다. 결국은 남편과 아내 서로의 소통이 부족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묘화는 행복할까」에 등장하는 묘화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지, 과거의 자신에게 떳떳한지, 그래서 행복한지. “결혼은 쇼핑과 다르지 않아. 불량품을 사게 되면 반품 처리를 하거나 교환해야 하잖아. 그러니 애초에 쇼핑을 잘 해야 하는 거야.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드는데, 단지 단추 모양에만 하자가 있다면 눈 딱 감고 소유하는 지혜도 필요하지. 세상에 완벽한 게 어디 있니. 그런 거 찾아 헤매다가는 단추 정도가 아니라 사이즈까지 맞지 않는 제품을 갖게 되기 십상이야. 어리석은 일이지.”라고 말하는 묘화가 무섭다. 하지만 묘화는 자기 나름대로 만족하며 사는 것 같다. 진정한 행복이 아닌, 남에게 보이는 행복 속에서 말이다. 내 주변에 눈치가 빨라 소문을 잘 내고 이간질에 기술이 있는 묘화 같은 인물이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다.

「괜찮아」에서 소영은 도벽을 가진 첫째 아들 승우와 발달 장애를 가진 둘째 아들 현우의 엄마이다. 그리고 마지못해 함께 사는 남편의 아내였다. 엄마라는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소영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소영의 마음을 다독여 주는 사람은 소영의 다른 자아뿐이다. 엄마라서 모든 걸 이겨내야 했고 감당해야 했던 소영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을 때 왠지 비참했다.

결국 모두 '가족의 늪'에 깊이 빠져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여성의 삶을 드러내는 글을 읽을 때마다 도대체 우리 사회는 왜 이럴까 싶다. '여자라서 행복하다'라는 말 또한 사회가 만들어낸 것 아닌가. 책에 나오는 일곱 가정도 사실은 사회의 문제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으로 사회가 만든 안타까운 모습이다. 과연 이들의 상처는 누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치유될 수 있기는 할까. 책을 읽는 내내 불안하고 불편했다. '설마?'라고 생각했던 것은 책장을 넘기는 동시에 '역시나'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곱 편의 소설에서 내가 느낀 감정을 안타깝거나 불행하고, 끔찍했다고 감히 단정 지을 수 없다. 내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아무도 모르는 시간 속에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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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노트>

가족극장의 부조리성을 최대치로 폭로한 신중선 소설!
평온해 보이는 가족극장에서 벌어지는 친밀한 불행

일상의 평온이 어느 누구의 고통을 강제 봉인시켜 침묵의 늪으로 침잠시켜 온 결과였는가를 파헤쳐 드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이러한 파헤쳐 드러내기 작업이 수행되는 주된 영역은 외부의 적이 아닌 가장 이상화되어 있고 가장 친근한 영역인 가족제도이다.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 역시 엄마와 아버지, 자식의 뒤얽힌 관계망을 바탕으로 짜여 있다. 신중선 작가의 소설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은 가족이라는 친밀성의 양식 안에서 어떤 생채기가 계속 생겨나는지, 어떻게 서로에게 삶의 무게를 덧씌우고 있는지, 어떤 침묵을 강요해내는지, 어떤 방식으로 고요한 잔혹극이 전개되는가를 선연하게 그려낸다. - 해설 윤김지영(페미니즘 철학자)

소외된 존재를 향한 예리한 시선으로 소설을 써 온 신중선 작가의 소설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이 출간된다. 「정희의 시간」「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노래방 여자」「반칙왕」「아내의 방」「묘화는 행복할까」 괜찮아」까지 일곱 편의 소설들은 우리 시대에 '여자라서 행복하느냐'고 묻는다. 일곱 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신중선 소설은 가족극장 속 여자와 남자가 엄마와 아버지, 자식이라는 위계적 역할 속에서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가를 치밀하게 추적해 내면서 가족 판타지를 망치질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손쉬운 해피엔딩 대신 무거운 질문다발을 안기며 이 사회의 근간을 다시 직조해내길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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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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