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동양 여성보다는, 소리꾼 박인혜, 판소리 오셀로

글 입력 2018.08.2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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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동양 여성보다는, 소리꾼 박인혜
판소리 오셀로
 

자, 먼저. 무릎 꿇고 반성. 삐딱한 시선으로 프리뷰를 썼었다. 그래도 찌질하게 한마디 하자면, '동양 여성'이 다분히 '서양 남성'적인 오셀로를 이야기 한다는 것이 필자한테는 썩 유쾌하게 들리지 않았다. 퇴근하고 나서 처음 공연장에 앉아있을 때도 뻔뻔하게 양 겨드랑이에 다른 쪽 손을 넣고, "좋아. 뭐가 그렇게 다른지 설명해보시지"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며, 반성한다. 그래도 게으르기 짝이 없는 필자가 바로 다음날 리뷰를 쓰는 것에도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이데올로기나 젠더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공연을 기대했던 필자의 잘못이었다. 감히 말하건대, <판소리 오셀로>는 올해 본 문화예술 공연 중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아주 소중한 경험이다.
 
하지만 또 찌질하게 한마디 더 하자면, 필자는 이 좋은 공연을 특정한 프레임으로 엮은 홍보 방식이 '정말 몹시 매우' 불만이다. 소리꾼의 재량 자체가 이미 그 모든 요소를 아득히 초월하고 있는데, 꼭 공연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의미'를 부여해야 했을까? 관객들은 공연장에 들어간 순간부터 소리꾼에 홀려버릴텐데, 거기다 대고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나타나는 서양-남성적 서사와 민족 설화 <처용가>의 동양-여성적 서사의 비교연구 '를 줄줄히 읽었어야 했을까? 판소리를 보고 나온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경험을 했겠지만, 최소한 필자에게는 '홍보물'인 <판소리 오셀로>와, 실제 '공연' <판소리 오셀로>간의 차이가 컸다.
 
어떤 방식이 더 우월한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식이든 적절하게 무언가를 표현해낼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이 된다. <판소리 오셀로>가 완전히 두 이야기를 비교하고 뒤집는 이야기가 되었어도 괜찮다. 다만, 광고랑은 너무 다르지 않은가. 마치 '나는 분명 딸기맛 케이크를 시켰는데, 라즈베리맛 케이크가 나온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막상 나온 라즈베리맛 케이크가 너무 맛있는게 함정이지만 말이다. 두 케이크다 빨갛고 베리 류니까 똑같은거 아니냐고 말한다면, 그건 그냥 녹두앙금빵과 단팥빵 같은거니 그냥 두개 다 드시면 된다. 그래도 우리는 삶을 즐기기 위해서 째째하게 색과 식감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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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먼저 기대했던 딸기맛 케이크는, 조선 기생 설비 단이 이야기하는 '오셀로'와 '처용가'의 차이와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그리고 이 안타까움은 동양-여성적인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필자가 맛본 라즈베리맛 케이크는, 소리꾼 박인혜가 이끌어가는 '오셀로'의 이야기다. 처용가의 이야기가 처음과 끝에 조금씩 끼어들긴 하지만 두 이야기가 동등하게 비교가 될 정도로 적극적으로 공연장으로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소리꾼은 그들의 이야기에 안타까움을 표현하긴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설비 단'이라기보다, '박인혜'같았다.
 
사실 공연을 보는 내내, <판소리 오셀로>보다는 <무형문화재 박인혜 콘서트>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설비 단'이기는 실패했지만, 좌중을 휘어잡는 '소리꾼'이기는 성공했다. 그녀는 처음 관객들을 마주했을 때 날씨에 대해 언급하고, 극에서 나와 함께 이야기를 진행하기도 했다. 여유로운 이야기와 몸사위, 더할 나위없이 완벽한 음색은 그녀의 이야기에 매료될 수 밖에 없는 힘을 가졌다. 이야기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그녀는 '동양 여성'이라기보다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떠돌고 전하는 아티스트에 가까웠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래서 그날 밤 잠에 들기까지 꽃을 휘적거리던 그녀의 모습이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 나름의 연출에 대해서 세세하게 늘어놓고 싶은데, 뭔가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생각해보면 한 인물이 모든 인물을 연기하고 여러 상황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그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같다. 신이 들렸다는 말이 그나마 그녀의 표현력에 가까울까? 극장을 나왔을 때 '박인혜'라는 이름만 입에 맴도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자잘한 것들이 하나로 엮여 <판소리 오셀로>의 가장 감명깊은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오셀로를 판소리로 표현했다는 점, 박인혜 소리꾼의 놀라운 실력이 그것이다. 그래서 아주 멋진 공연이었다. 나는 우려먹을만큼 우려먹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가 또 이런 맛을 낼줄은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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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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