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04. 사각지대에서 '나'를 외치다

복지의 사각지대 들여다보기
글 입력 2018.08.2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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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뉴웨이브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엄청난 경제성장을 달성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북부 공장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뉴웨이브 작품들은 노동자들의 생활공간과 일상을 묘사하는 것을 통해 그들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접근했다. 또한 이들은 물질적 풍요가 만든 개인주의의 팽배와 사회적 책임감의 약화 등 다양한 모순점을 파헤치는 것에 집중한다. 뉴웨이브 영화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뉴웨이브 영화와 비슷한,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를 비추는 영화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사각지대에 놓인 개인을 담은 영화는 많지만 그중 내게 가장 강렬했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사회에서 고립된 개인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I, Daniel Blake."


"질문에만 대답해주세요." 영화는 한 남자와 복지사 직원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답답한 대화로 시작한다. 심장병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게 된 '다니엘'은 질병수당 대상자이지만 어째서인지 심사에서 떨어진다. 그는 수많은 절차와 인정 없는 원칙 때문에 질병수당은 물론, 실업급여와 같은 생존에 필요한 보조금조차 지원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이렇게 다니엘은 사회에서 늙고 병들었으며 디지털 시대지만 아날로그에 최적화되어 있는 '별 쓸모가 없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자신의 권리를 놓고 사회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던 다니엘은 케이티를 만난다. 케이티 역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생계가 위태로운, 사회적 약자이다. 살기 벅찬 세상에서 그들은 서로를 돕고 연대하며 자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대사회에서 도태된 자는 이를 극복할 두 번째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도태된 개인의 '나(I)'는 세상에서 지워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다니엘은 지워지는 개인에게 질책과 외면이 아닌, 의지할 수 있는 따뜻한 손을 내밀며 함께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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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 지급에 문제가 생기고 질병수당 결과에 대한 항고 절차가 길어지자 그는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를 보호해주는 것은 없었다. 결국 그는 관공서 벽에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시작되는 문장을 쓰는 것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과 답답함을 세상에 외친다. 영화는 이를 통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다니엘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막이었다. 즉 다니엘의 그래피티(graffiti)는 보조금을 위한 어리광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외침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복지의 사각지대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시스템에 대해서 지적한다. 특히 다니엘이 관공서 건물 외벽에 작성한 호소문은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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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담 전화의 구린 대기음도 바꿔라!”


하지만 이는 비단 사회의 책임만은 아니다. 그 자리에서 환호와 박수를 보냈던 행인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공범이 되어 버린다. 다니엘의 의견과 상황에 공감은 하지만 누구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기 때문이다. 행인들이 보내주는 작은 연대는 최소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소극적으로 대한 우리의 과거를 비추며 관객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나'로 살아간다는 것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저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그들을 외면한 결과가 어떤지 다니엘의 죽음을 통해 보여준다. 영화는 다니엘을 통해 인간의 온정과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허무하고 우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영화는 사회의 이면을 숨기지 않고 우리에게 바로 보여주는 것을 통해 사실을 직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 주변에는 영화 같은 일만 벌어지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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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다니엘은 결국 이 편지를 직접 읽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도움을 통해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케이티가 장례식장에서 이 편지를 대신 읽어준다. 어쩌면 영화는 다니엘의 편지를 읽어주는 케이티와 같은 역할일지 모르겠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자신의 방식으로 현실을 보여주며 영화를 통해 관객이 세상의 부조리를 바로 보고 변화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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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다니엘의 삶을 통해 무엇을 봤는가?

이번 [사각지대]는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개인을 통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 영화는 그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주변 또는 내 이야기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또한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현실을 직접 보여주는 것을 통해 우리가 그들을 사각지대에서 찾아내고 연대할 수 있게 도와준다. 나는 이것이 영화의 매력이며 힘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나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게 지켜주는 최소의 울타리는 얼마나 헐거운가.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라는 다니엘의 말처럼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회를 우리 모두가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조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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