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정에서 여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 도서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

글 입력 2018.08.3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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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스물한 살- 배가 덜 갈라졌을 때
아이엠에프가 당신의 기둥과 함께 터지기 전
머리숱은 지금과 달리 풍성하고
미간 사이가 평평했을 때
옷장 속에는 공짜로 받은 거적때기 말고
짙은 청색의 스커트와 노란 스카프가 걸려 있을
그때의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를 후회하지 않을까, 엄마

나는 아무래도 괜찮아, 나선미


저 시에 엄마의 자리를 아빠로 채웠을 때 우리는 과연 본래 작가의 의도만큼 공감할 수 있을까. 아니, 장담하건데 이 시를 읽은 후 눈물샘 즈음에서 발생했던 울렁거림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도 자연스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자리 잡아버린 가정에서의 여자는 어떤 존재인가를.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인식한 것은 2017년 초 즈음이었던 것 같다. 22년동안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인식되어왔던 이상적인 가족의 공식이 사실 이상적이기는 무슨, 오히려 누군가를 침묵시키고 있다는 진실이 보였다. 가정에서 여자의 역할은 어떠해야 했나. 현모양처, 내조를 잘한다는 말은 대부분 여자한테만 붙는 수식어이자 평가의 지표가 되어 여자를 검열해왔다. 아침밥을 해주지 않는다던가, 일을 나가 집안일에 크게 관여를 하지 못하는 모습 등 검열의 기준치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가족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 하지 못한 사람으로 질책받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여자에게 결혼과 가정은 족쇄와 다를 것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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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권리에 불합리함을 느낀 후 페미니즘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 이 책은 여자라서 행복한 적이 있었나 하는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고등학교 때 내 꿈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좋은 남편을 만나 딸 한 명, 아들 한 명을 낳아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 때는 아마 여자라서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비혼을 다짐한 이 시점에서 나에게 여자라는 성별은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그리고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에 수록된 총 7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그들 또한 나와 같다고 생각한다.
 
여자를 옹호하는 책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여자가 무조건 선한 역할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에서 언급되는 여자는 이미 전세금을 빼서 도망갔고, <아내의 방>의 여자는 남편의 애착을 가져가버린 다른 생명들을 해치기에 이른다. 흔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뤄지는 도망자, 질투의 대명사 같은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 인물들이 상당히 입체적으로 그려진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랄까. 그들의 악한 행동에는 가정으로부터 비롯한 어떤 이유가 있다는 것을 함께 비춰주며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게끔 돕는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한시도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다. 계속 불편하고, 또 불편했다. 특히 끔찍한 과거를 기반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정화의 시간> 이 더욱 그랬다. 정화에게 있어서 어떤 생채기보다도 깊은 상처는 청각으로 남았고, 인생을 통째로 바꾸었다. 아버지의 친구에게 끔찍한 사건을 당한, 하지만 아버지에게 보호 조치를 받지 못했던, 동네의 소문거리가 되어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던 어릴 적의 정화를 그저 안아주고 싶었다. 너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안타까움과 피해자에 대한 타인의 태도에 분노해 마음이 편할 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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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을 다짐한 이유에 대해 가끔 질문을 받는데, 나는 꿈꾸고 있는 직업이 있고 그 업에 종사하면서 내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항상 떠올리는 미래에는 흔히 말하는 경력 단절이 계획되어 있지 않다. <괜찮아>는 이러한 다짐에 확신을 얹어 주기 충분했다. 비혼을 생각하기 전에도 걱정했던 것이 있다면, 내가 과연 내 아이를 올바르게 잘 키울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나의 다짐과 이러한 걱정이 모두 담긴 내용이었기에 일곱가지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라고 꼽을 수 있겠다.

장애를 가진 자식에 대해 홀로 걱정하고 전전긍긍하는 소영과 그 책임을 소영에게 지우는 남편의 관계에 대해 화가 났다. 소영도 직업이 있었고 계속 그 생활을 유지하고 싶어했다. 결코 전업 주부가 되려는 마음이 없었던 그녀에게 가정 일을 맡겨버린 것은 그의 남편이었다. 가족의 일을 모두 그녀에게 맡겨버린 채 자신은 손을 떼 버리고 무책임하게 지켜보고 있는 꼴이다. 이혼 후에도 그와 아이들은 그녀의 삶에 죄책감을 가져다 주고 멀쩡한 삶을 살지 못하게 흔들어 놓는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안타까워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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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회사에 가벼운 일로 다니고 있다. 우연히도 내가 속해 있는 팀은 모두 여자로 이루어져 있고, 나이가 있으시지만 아무도 결혼을 하지 않으셨다. 상사 분들의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 후 육아 중이라서 주변에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다들 우울증을 조금씩 앓고 있고 가끔 찾아가면 가정을 벗어난 느낌이 들어 매우 반겨준단다. 이런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상사님이 친구에게 결혼하니까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친구 분은 자기 주문처럼 읊조렸다고 했다. “괜찮아, 괜찮아..”


[맹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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