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이야기] 더이상 책이 아닌 문학들

글 입력 2018.09.0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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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이야기
더이상 책이 아닌 문학들


'모든 순간이 너였다', '언어의 온도' 서점을 종종 간다면 한번쯤은 보았을 책들이다. 두 책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책이라는 점 외에도 두 저자가 모두 책을 내기 이전에 이미 개인 SNS에 개재한 글로 인지도를 쌓고 높은 인기를 누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듯 요즘 책 중에는 출판되기 이전에 이미 인터넷 상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경우가 많다. 개인 SNS에 올리는 글 뿐만이 아니라 인기를 끈 웹툰이나 웹소설 역시 자연스럽게 출판으로 이어진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흥한 글이 종이책의 형식으로 출판되는 현상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새삼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하면서도 동시에 종이책으로 출판될 때야 비로소 작품으로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인터넷에 있을 때는 작품이라기에는 2프로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책이라는 형식을 갖추고 세상에 나온 순간 뭔가 더 '있어 보이는' 느낌이 든달까. 연간 6만여종이나 되는 책이 출판되고(출처), 누구나 공책을 살 수 있을만큼 종이가 흔한 시대임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종이에 인쇄된 글을 그렇지 않은 것보다 높이 평가한다고 말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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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종이에 인쇄된 글을 신뢰하는 심리는 종이가 발명된 지 오래 되지 않아 아주 귀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정말 중요하거나 아주 뛰어난 내용만이 종이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문학은 종이의 발명과 함께 오랫동안 책의 형태로 존재해 왔다. 한때 문학은 책이나 신문, 잡지의 지면을 차지하는 것 외에는 독자에게 다가갈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종이에 인쇄된 글들은 단지 지면을 빌려 세상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정도 공신력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지하철을 타면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책을 보고 있는 사람을 압도한다.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그러하다. 가끔 인쇄된 활자가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과제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논문 하나 하나를 찾아 복사하던 시절은 지나고, 인터넷에서 저장된 논문을 손쉽게 다운로드 받는 시대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기존의 틀을 넘어서 지면이 아닌 인터넷 상에서 색다른 방식으로 독자를 만나는 문학이 늘어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실험적인 문학 플랫폼 네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학 삶, '문학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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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작과 비평사'에서 만든 플랫폼, '문학3'은 새로운 문예지를 다뤘던 다른 글('문예지의 변신') 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다. 문학3은 이번 글에서 소개하는 네 가지 매체 중 유일하게 종이로 된 정기간행물을 출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온라인 플랫폼은 아니다. 그러나 종이 잡지는 문학3의 일부일 뿐이다. 온라인 홈페이지에서는 더 많은 주제의 다양한 글을 다루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작가의 등단 여부가 글을 개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종이잡지에 실릴 글을 모집하는 글에도 명시되어 있으며 '그냥 올려본다' 코너에서는 말 그대로 어떤 것도 문학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독자들이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다. 전통적으로 문예지의 지면이 기성작가의 차지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글을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편집회의에도 독자가 참여하게끔 되어 있다. '문학몹' 카테고리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역사가 깊고 전통적인 출판사의 새로운 행보는 변해가는 출판 시장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비'와 '유'사이 숨은 말을 찾아서, '비유'


비유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독특한 첫 화면이 방문자를 반긴다. 세로로 쓰인 메뉴와 각종 기호를 마주하면 무엇부터 클릭해봐야 하는지 난감하기까지 하다. 그럴 때면 오른쪽 맨 위에 있는 메뉴를 클릭해 비유 소개글을 보자. '비유'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기획한 문학 웹진이다.  ! , ... , ? 세 가지 기호는 각각 '하다', '쓰다', '묻다'라는 코너명을 의미한다. '하다'의 경우 일반 문예지로 빗대어 설명하자면 기성작가의 소설이나 시를 싣는 란이다. 그러나 비유에서는 독특하게도 동화와 동시, 그리고 장르를 규정하기 애매한 '산문'을 추가해 글의 종류를 다양화했다. 또한 웹진답게 태그를 활용해 작품을 설명한다. '묻다'는 하나의 단어에 다양한 글을 연속적으로 배열하고 아카이빙한다. 공통된 키워드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다양한 의견을 만나볼 수 있는 코너다. 태그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웹진만의 특징을 살린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느낌표(!)로 표시된 '하다' 코너이다. 이 코너는 프로젝트 공모를 통해 운영되며 특정 장르의 분류 없이 문학적 실험이 이루어지는 장이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 '비하인드 랩', '선물하는 시', '시간의 결, 결의 시간', '자기만의 방'이 있다. 단순히 작품을 올리면 구독자가 읽는 방식이 아니라 각 프로젝트마다 나름의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문학을 탐구해 나간다. 예를 들어 '비하인드 랩'은 그동안 그냥 지나쳐왔던 이야기 속 조연을 다시 조명한다. 스쳐지나간 사람들을 연구하고 그들에게 서사를 부여하며 결국에는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나가고자 한다고, 비하인드 랩 팀은 이야기한다. 가장 최근 글에서는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 속 조연 혜현과 레디 엄마를 다루고 있다. 이 외에도 읽을 거리가 다양하니, 디자인 측면에서나 내용 측면에서나 가장 실험적인 문학을 만나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웹진이다.



이야기의 세계로 건너가는 방법, '브릿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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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문구를 내세운 '브릿g'는 출판사 '황금가지'에서 만든 소설 플랫폼이다. 문구만큼이나 감성적인 홈페이지 디자인이 눈에 들어온다. 브릿g는 그 이름처럼 웹소설과 출판소설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겠다고 한다. 현재 종이책을 활발하게 출판 중인 출판사가 만든 플랫폼인만큼 내부에서 인기를 얻을 경우 종이 책으로 출판되기가 쉽다. 관련된 공모전도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 장편 위주인 웹소설 플랫폼과 달리 중단편을 위한 게시판이 따로 있으며 웹소설의 대다수인 로맨스와 판타지 장르 이외에도 SF나 공포 등 다양한 장르를 포함한다.

무엇보다도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는 자유연재 게시판이 앞서 소개한 두 플랫폼과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물론 '문학3'의 경우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이 있으나 일회성 성격이 짙어 글이 연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반면 브릿g의 자유연재 게시판은 분량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글을 연재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인기가 있는 작품은 유료결제를 해야 볼 수 있다. '리뷰' 란이 따로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작품의 댓글 란에 달리는 짤막한 댓글이 리뷰를 대신하는 다른 웹소설 플랫폼과 달리 브릿g의 리뷰는 꽤 긴 또다른 하나의 글이고, 소설만큼이나 활발하게 업로드되는 편이다.



독자와 작가의 경계를 오가다, '판다플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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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소개할 '판다플립'은 기존의 웹소설 플랫폼과 비슷하지만 기성작가를 내세운 작품과 오프라인에서 살 수 있는 일반 도서 카테고리가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웹소설 플랫폼을 표방하면서도 기존의 종이책 콘텐츠나 작가를 초빙한 건 기존의 웹소설이 질적인 면에서 받는 비판을 완화시키기 위한 돌파구로 보이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3분 초단편' 란이 눈에 띈다. 판다플립은 알지 못해도 네이버 책문화판을 종종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남주, 손보미, 장강명, 듀나 등 이름이 알려진 기성작가들이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의 분량에 이야기를 담는 이 프로젝트는 긴 글을 읽기 버거워하는 요즘 독자의 성향과, 그에 따라 책이 점점 짧고 얇아지는 출판계의 추세를 잘 반영한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코너는 '판다 연재'의 '갈래' 란이다. 여기서는 하나의 작품을 여러 명의 작가가 집필하며 시작은 같지만 각각 다른 결말로 나아가는 실험적인 형태의 소설을 만나볼 수 있다. 덕분에 독자가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선택해 읽는 게 가능하다. 이처럼 실험적인 시도는 인터넷의 쌍방향성을 극대화하면 단순히 독자가 작가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에 소소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서 결말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독자가 또다른 작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다.

***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지만 한계도 많다. 독자와 작가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대신 작품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의 수가 적어 관련 게시판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여전히 출판된 책이 가진 권위는 강력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 플랫폼에서 인기를 얻은 글은 자연스럽게 출판의 수순을 밟는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온라인 플랫폼은 여전히 오프라인 출판의 부수적인 부분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들어 부쩍 많이 읽히는 전자책 역시 종이책을 그대로 인터넷 상에 옮긴 것에 불과하다. 전자책이 아닌 앞서 언급한 새로운 문학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기에는 실험적인 성격이 너무 강하다. 책장을 넘기며 읽어야 한다는 오래된 생각은 기술이 변하는 속도만큼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전자책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의 종말이 찾아왔다고 외쳤지만 아직 종이책이 건재한 것도 그 때문일 거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기술이 발전하고 매체가 변화함에 따라 문학의 형식과 사람들이 문학을 읽는 방식 또한 느리긴 하지만 조금씩 변한다는 사실이다. 서점에 가 보면 몇년 사이 두꺼운 장편 소설이 눈에 띄게 줄었음을 알 수 있다. 독자와 작가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작가의 권위는 약해지고 있다. 앞서 소개한 플랫폼들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일부에 불과하다. 전자책으로 서비스되는 텍스트와 앞서 소개한 플랫폼에 실리는 문학이 다르듯, 소위 '웹소설'으로 불리는 종류의 문학은 또 궤를 달리 한다. 이번 글에서는 거기까지는 다루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문학의 변주가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문학이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문학의 범위가 넓어지고 문학이 독자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다양해질수록 그 가능성은 커진다. 문학이 곧 책으로 여겨지는 단단한 공식도 바뀔 여지가 있을까. 그 답을 알기 위해 문학을 둘러싼 다양한 실험과 시도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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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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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DINOSAUR
    • 안녕하세요 소원님!

      글 정말 잘 봤습니다!ㅎㅎ 특히 문학을 읽는 방식이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
      공감하면서 봤습니다 그리고 소개해주신 네 가지 플랫폼도 덕분에 재밌게 둘러보았습니다!
      저는 이런 플랫폼들을 아예 몰랐던지라 신세계를 경험했습니다...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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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닫기댓글 (1)
  •  
  • 갈매나무
    • 2018.09.06 1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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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NOSAUR저도 이번에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며 새롭게 살게된 게 많아서 재미있었어요. 유용한 정보를 얻어가셨다니 기쁘네요ㅎㅎ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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