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름의 끝에서, 기쿠지로의 여름 [영화]

글 입력 2018.08.3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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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유 없이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나에겐 기쿠지로의 여름이 그중 하나였다. 무성한 연꽃잎 사이에 두 남자가 있는 포스터와 히사이시 조의 Summer가 이 영화의 OST라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선택하기엔 충분한 이유였다. 이 영화를 여름에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여름이 다 끝나가고 날이 선선해진 지금 영화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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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하나도 모른 채 계속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영화는 어린아이가 일하러 멀리 떠난 엄마를 전직 야쿠자와 함께 찾으러 간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초반 장면은 아빠에게_아이를_맡기면_생기는일.avi 그 자체였다. 아저씨는 어린아이를 엄마에게 데려다주기는커녕 경마장에 데려가 돈을 탕진하고 아이가 부르는 번호로 경마에 참여하고, 아이에게 경마선수 옷을 사입히고, 다시 돈을 탕진한다. 아이는 그저 그런 어른을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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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진 그들은 엄마를 찾으러 가는 긴 여정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기도 하고, 무작정 걷기도 한다. 영화 제목이 <걸어도 걸어도>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둘은 여러 길을 걷는다. 아이가 힘들 것이 걱정되면서도 예쁜 길을 걷는 그들의 모습이 좋았고, 여정 중에 만나는 사람들이 좋았다. 저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여행이라면 보물 같은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스쳐 지나갔을 사람들이 아저씨, 아이와 오래 머물고 함께 지내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사실 어머니를 찾는 내용은 2시간 영화 중 1시간 이내에 끝난다. 어머니 찾기는 훼이크인 것이고 전직 야쿠자와 아이가 여름을 보내는 방법이 주 내용이다. 하지만 어머니를 찾는다는 건 영화에서 빼놓지 못할 이야기다. 아이의 어머니를 보겠다는 기대가 무너지면서 아이의 여름이 아저씨의 여름으로 전환된다.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을 맛보며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를 위로해주며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고 그 동시에 아이와 놀아줄 방법들을 여러 가지 생각해낸다. 그런 아저씨를 아는지 아이는 아저씨의 손을 잡아준다.

영화를 보며 진정한 YOLO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처음 본 낯선 이에게, 자신에게 소중한 걸(천사의 종) 뺏어간 사람에게 다가가서 같이 생활하고, 친절하게 대해준다. 자신의 길을 가다가도 낯선 자들을 태워주고 그들과 함께 저글링을 하고, 출입금지 지역에서 논다. 영화가 만들어진 20년 전과 비교하면 현재는 히치하이킹은 물론이고 길에서 말을 거는 아이조차 믿을 수 없는 사회지만 한번 사는 인생, 가던 길을 멈추고 낯선 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그들과 순수하게 생각 없이 놀아보고 싶다. 아무런 걱정 없이 길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하던 날들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혹은 모든 걸 예약하고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서 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연락수단도 없이 그들처럼 길을 떠나보고 싶다. 그때는 얼마나 쉽게 그런 여행을 해냈는지. 차와 오토바이만 있으면 떠날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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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 기쿠지로는 아이의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극 중에서 아이의 이름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기쿠지로는 아이의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아이가 아저씨의 이름을 물어봤을 때 아저씨 이름이 기쿠지로라는 것에 나 혼자 화들짝 놀라며 깨달음을 얻었다. 영화제목이 아이의 이름인 마사오의 여름이 아니라 기쿠지로의 여름인 이유가 있구나! 하며. 마사오보다 더 아이 같은 기쿠지로가 52세의 나이에 어린아이의 여름을 느낀 거 같아 부러웠다.

계절의 결에 어울리는 영화가 있다. 밖에서 매미 소리가 들려도 영화 속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는 색다르다. 이번 여름이 완전히 끝나기 전 나만의 여름영화를 꺼내보는 건 어떨까. 계절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소소한 여유와 행복을 느껴보자.


[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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