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신 경험해주는 사회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8.3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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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나는 1인 크리에이터들의 유튜브 동영상에 푹 빠져 있다.

온갖 종류의 다채로운 영상들이 피드의 구독 목록을 따라 차례대로 나의 눈길을 사로잡고는 한다. 뷰티 유튜버의 커버 메이크업 영상, 다이어트 유튜버의 홈 트레이닝 영상, 먹방 유튜버의 먹방 영상 등의 카테고리가 유튜브를 접속하면 피드를 따라 줄줄이 나열된다. 한편 최근에 이르러서는 1인 방송과 TV 방송 영역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각 방송사에 의해 아예 유튜브를 타깃으로 한 각종 웹 예능이나 웹 드라마도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기 때문에 유튜브의 볼거리는 날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TV 시청 시간보다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에 맞춘 콘텐츠 시장의 필연적인 흐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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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튜브 먹방 유튜버 '입짧은햇님' 영상)


그런데 이 수많은 유튜브 콘텐츠들 중에서도 최근 1년 여 간 조회수가 높은 인기 콘텐츠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중에서도 구독자들이 영상을 통해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유튜버를 통해 대신 만족하는 ‘대리만족’형 콘텐츠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A 편의점 신상 30가지 모두 먹어 보기!’, ‘B 회사의 신상 핸드폰 세 가지 모두 사서 개봉해보기!’ 와 같은 제목의 영상들이다.

또한 이렇게 탑재된 영상들의 하단에는 ‘저도 저렇게 해보고 싶어요’, ‘다음에는 ~해주세요!’ 와 같은 시청자들의 만족감 표현과 또 다른 대리만족 욕구의 표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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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vN '윤식당'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이러한 유튜브의 대리만족형 콘텐츠들은 곧 TV 방송 콘텐츠들의 제작 경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 장르에 있어서 올 상반기 방영된 프로그램의 목록들을 보면 대리만족형 예능의 제작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타들의 다양한 음식 먹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 주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시각적 만족을 느끼게 하는 먹방 예능이나 다양한 여행지의 풍경과 즐길 거리 등을 보여줌으로써 여행에 대한 현대인들의 욕구를 대신 해소하고자 하는 여행 예능 등이 그 중에서도 대표적이다. 한편 최근에는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해보거나, 농촌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하거나, 혹은 해외에 나가서 식당을 개업해보는 등의 대리만족형 라이프스타일 예능도 활발하게 제작되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올 상반기 예능 트렌드를 주도했던 일반인 출연자들의 러브라인을 소재로 한 ‘하트 시그널 2’, ‘선다방’ 등의 연애 예능도 이러한 대리만족형 예능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적극적인 제작진의 개입을 통해 러브라인의 형성을 유도했던 연애 예능과는 달리 이들 프로그램은 일반인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노출시키는 동시에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한 관찰 형식을 포맷으로 함으로써 시청자들이 출연자들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하는 효과를 극대화 시켰다. 이러한 연출과 구성 때문에 이들 프로그램을 보고 ‘대리 설렘을 느꼈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들이 범람하면서 트렌드를 주도하고 시청자들이 이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씁쓸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대리만족 콘텐츠의 인기가 결국 ‘3포 세대’, ‘5포 세대’ 등의 말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들의 단면과 맞닿아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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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


세대를 거듭하고 시대가 변화할수록 대중들, 특히 젊은 세대의 생각은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진보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막상 지금 이들에게 주어진 사회 현실은 그 자유로움을 마음껏 충족하는 데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현실과 자유욕구 사이의 괴리, 일종의 아노미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마음껏 먹고 싶고, 떠나고 싶고, 도시를 벗어나고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싶은 젊은 이들에게 그 누구도 법적 제약이나 윤리적, 사회적 제약을 두지 않지만 그들은 자발적으로 이 모든 욕구를 누르고 곧 포기하고 만다. 현실적으로 결코 이루기 쉽지 않은 욕구라는 것을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뉴스에서 보도된 ‘IMF 이후 역대 최악의 실업률’ 이라는 소식은 앞서 말한 젊은 세대들의 장애물이 되는 사회 현실의 대표적인 예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 앞에 놓인 청춘들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도 전에 자연스레 포기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급기야는 연애, 결혼과 같은 미래의 일상과 개인적인 감정까지도 스스로 억제할 만큼 지금의 청춘들은 무거운 현실 앞에 무기력해지고 말았다. 결국 ‘3포 세대’라는 단어는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표출되거나 이루어지지 못한 욕구와 자유들을 간접적인 방법으로나마 충족하고자 하는 이들의 니즈와, 유튜브의 1인 미디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콘텐츠의 구성이나 소재를 모두 적절히 결합해 탄생한 것이 바로 이러한 대리만족형 예능 콘텐츠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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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블로그 채널A '하트시그널2' 캡쳐)


해야 할 것들을 모두 끝낸 오후, 습관처럼 TV를 틀어본다. 행복해 보이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들은 멋진 옷을 입고 음식점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잔뜩 시켜 먹은 뒤 배가 부르다며 만족해 한다. 채널을 돌리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며 이른바 ‘썸’을 타는 구성의 프로그램 재방송이 전파를 타고 있다. 이 프로그램 속의 그들 또한 행복한 얼굴을 하고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요즘의 우리는 오늘도 화면을 통해, 누군가의 결코 특별하지는 않은 경험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결핍을 아주 부실하게나마 채우고 부러워한다. 일상적으로 여겨질 법한 경험들이 더 이상 당연하게 여겨지지는 않는 오늘, 그래서 화면 속을 가득 채우는 콘텐츠들을 보며 짓는 웃음이 유독 씁쓸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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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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