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을 먹다 ‘케이크 메이커’ [영화]

코끝에 달콤쌉살한 향이 맴도는 영화
글 입력 2018.08.3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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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오렌'은 베를린에 출장 올 때마다
가장 먼저 케이크를 먹으러
'토마스'의 카페에 들른다.
그렇게 만나게 된 둘은
출장 때마다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러던 중 토마스는 오렌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상실에 빠진 토마스는 그의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남편을 잃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아나트'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토마스와 아나트가 서로의 삶에 서서히 스며들어가는 세심한 연출이었다.
 
둘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전혀 급하지도 극적이지도 않아서 좋았다. 처음 영화 메인카피를 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 사람이 슬픔을 나눈 뒤 희망을 품는 그런 뻔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물론 큰 흐름은 그게 맞긴 하지만 그 과정이 전혀 노골적이지 않다. 그건 토마스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그녀 옆에 진짜 ‘그냥’ 있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초반엔 "그래서 아나트는 언제 토마스의 정체를 알게 되지?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가 궁금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것들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영화의 핵심은 토마스가 디저트를 통해 위로를 건네는 방식, 아나트가 서서히 마음을 열고 그에게 의지해가는 모습을 섬세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것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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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남편과 바람을 피우던 남자’와 사랑을 한다? 까딱하면 관객들의 공감과 이해를 얻지 못한 채 남는 것 없이 끝날 수도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불륜과 사랑의 경계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줄타기를 자유자재로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걸 가능하게 한 요소에는 최소한의 대사,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표현, 아름다운 ost, 급하지 않은 전개, 토마스와 오렌의 깊은 사랑 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포인트는 바로 베이킹이었다고 생각한다. 백 마디 대사보다 토마스가 아나트와 그녀의 가족들을 위해 정성 들여 만든 케이크가 모든 것을 이해시켰다. 케이크를 만드는 그의 손길 하나하나에 사랑과 위로가 담겨있는 듯했다. 나는 특히나 디저트를 좋아해서 유튜브에서 베이킹 영상을 즐겨보고, 맛있는 디저트 가게들을 찾아다니는 편이라 더 공감이 많이 됐다. 둥그렇고 푹신해 보이는 반죽을 만드는 장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정성이 담긴 따뜻한 빵이나 케이크를 맛있는 차와 함께 먹었을 때 허한 마음이 뿌듯이 채워지는 그 기분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더 공감이 클거라고 생각한다.

아나트가 접시까지 핥아서 케이크를 비울 때 느꼈을 감정이 그대로 와닿았다. 이처럼 이 영화는 대사가 거의 없고, 인물들의 감정을 상상하게끔 하는 장면들이 많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인물들의 감정 표현에 푹 빠져들어가는 마법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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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는 늘 혼자였다. 그런 토마스의 처지가 이스라엘의 유대교 문화와 대조되어 드러난 게 좋았다. 유대인은 가족들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안식일 저녁을 함께 먹는 문화를 중시하는데, 아나트의 가족들은 혼자인 토마스를 챙긴다. 재밌는 건 그들이 타국에 홀로 사는 토마스를 사랑하는 방식이나, 토마스가 그들을 사랑하는 방식 모두 음식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음식이 가지고 있는 힘을 믿는 건 역시 만국 공통인가보다.

*

토마스의 대사 중에 자신은 오렌이 있어서 혼자가 아니라는 대사가 있다. 그렇다. 그는 오렌 덕분에 혼자가 아니었고, 오렌이 죽고 난 뒤엔 그의 가족들 덕분에 혼자가 아니었다. 곁에 있어 주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고마움과 소중함인가. 이 고마움은 아나트도 마찬가지로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조건 없이 묵묵히 자신을 늘 도와주는 토마스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주방에서 서로를 안고 입을 맞추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너무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서로가 정말 고맙고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토마스가 사랑 그 자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 때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 주는 것. 그리고 땀 흘려 만든 케이크 한 조각을 건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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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들을 최소한의 대사와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연기로 관객들에게 전달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사랑, 연민, 위로 그 어딘가에 있는 감정을 케이크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특히 아나트 역의 사라 애들러와 토마스 역의 팀 칼코프의 넘치지 않는 연기가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다.


[김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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