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주관적인 시카프(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방문기 [기타]

글 입력 2018.09.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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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아직 전시회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어린 학생 시절 우연히 시카프를 알게 되었다. 그 해가 마침 한국만화 100주년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처음 가보는 전시회에 두리번거리며 부스 하나하나에 즐거워했었다. 커다란 전시장을 헤매며 놀았고 나올 때는 두 손에 묵직하게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이후에도 방학 시간을 활용하여 종종 놀러갔다. 매 번 가지는 못했지만 생각날 때는 항상 갔었던 것 같다. 올해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고민했지만 마지막 날에 좋아하는 웹툰 작가님이 사인회를 열어서 가기로 했다. (산업계 전시회는 마지막 날에 가면 볼거리도 적어지고 마감 시간 전부터 철수하는 부스들이 꽤 있기 때문에 이 날은 피하는 것이 좋다.)



시카프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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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통칭 시카프는 1995년 만화와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축제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올해의 시카프 주제는 바로 Life였다.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인간의 삶을 반영한다는 말로 문을 연 이번 전시는 크게 셋을 타겟으로 한다.

어른들을 위한 시간여행,
여성들을 위한 설렘,
어린이 및 청소년을 위한 공연

과연 각 파트가 모두 충실하게 구성되었는지는, 다음의 방문기에서 밝혀질 것이다.



방문기

시카프는 2009년 나의 첫 방문 날 이후 꾸준히 코엑스에서 하다가 2013년~2015년까지는 공공기관 쪽 건물에서 진행하더니, 2016년 DDP, 2017년에는 SETEC, 올해는 다시 DDP에서 열렸다. 코엑스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DDP로 간 이유가 혹시 대관료 문제인지 알기 위해 둘을 비교해보았다.


   코엑스  DDP
가격   103,529,250(부가세 포함)  101,605,000(부가세 포함)
(코엑스 : B1,B2 5일 기준 / DDP : 알림 1관 5일 기준)


코엑스가 약간 더 비싸긴 하지만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예술 외 한국 전시업은 사실상 코엑스에 주요 전시가 몰리고 나머지는 킨텍스, 세텍, 컨벤시아로 분산된다. (서울 외 : 지방 컨벤션 센터) DDP가 이제 산업전시도 챙기느라 혜택을 더 준 것일까?

어찌되었든, 사인받을 책을 챙겨 DDP로 향했다.


00 입장

들어가자마자 지도를 챙기는데, 테이블 바로 옆에 긴 줄이 있기에 혹시나 싶어 사인회 일정을 물어봤다. 인포메이션 쪽 스태프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그 때 가면된다고 했지만, 나의 촉이 외쳤다. 이것을 놓치면 안 된다고.

바로 줄 서 있는 곳 있는 스태프에게 물어보자 2시 반의 작가님 사인회 번호를 배부 중이라고 했다. 답변을 듣자마자 줄의 끝으로 갔다. 흔한 팬 사인회 같은 것도 참석해본 적이 없어서, 정시가 되면 사인 줄을 서는 줄 알았었다. 만약 촉을 무시했더라면..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의 절반은 놓칠 뻔 했다. 정말 아슬아슬하고 짜릿하게도 마지막 번호를 받았고 기분 좋게 관람을 시작할 수 있었다.


01 어른이전

평점 : ★★★ (무난)

관람 순서는 외곽을 빙 돌아서 중앙으로 가는 것으로 정했다. 처음 만난 것은 어른이전이었다. 건담을 비롯한 익숙한 로봇들과 귀여운 몬스터들이 있었다. 만들기 쉬워 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디테일 하나하나가 감탄스러운 수준이었다. 이전 시카프에서도 했었던 건담 만들어보기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대기자가 다 차서 신청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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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종이남친전

평점 : ★★ (실망)

다음은 분홍분홍한 종이 남친 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흥행을 이끄는 요소이므로 기대를 안고 들어갔다.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이 컸다.

소개된 캐릭터는 ‘유미의 세포들’의 유바비, ‘치즈인더트랩’의 유정, ‘내 ID는 강남미인’의 도경석, ‘스피릿 핑거스’의 남기정, ‘낮에 뜨는 달’의 도하, ‘간 떨어지는 동거’의 신우여, ‘오늘도 사랑스럽개’의 진서원, ‘걸어서 30분’의 지구봉 등 총 8명이었다. 이 매력적인 존재들을 가지고 종이 남친 전이 보여준 것은 고작 그들의 프로필, 명대사, 등신대뿐이었다. 딸린 프로그램은 캐릭터 얼굴 선 따라 그리기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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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전시회로 만들지 말고 SNS 콘텐츠 정도로 만들고 ‘작가가 보내주는 그림’을 상품으로 건 이벤트 하나 열면 딱이었을 콘텐츠였다. ‘유미의 세포들’의 세포 형식 연애나 ‘치즈인더트랩’의 로맨스릴러라는 신선한 장르, ‘내 ID는 강남미인’의 화제성 등을 하나도 살리지 못했다. 그저 만들기 쉽고 돈도 거의 들어가지 않으며 홍보하기 좋아서 만든 것 같았다.



03 작가전 – 신동헌, 신일숙

평점 : ★★★★ (만족)

실망감을 안고 빠져나와 향한 곳은 작가전이었다. 홍길동의 신동헌 감독 특별전과 전년도 SICAF 코믹어워드 수상자 신일숙 작가의 생애 첫 단독전이 있었다. 홍길동 전이 제법 크게 다루어지고 있었는데 재미는 없었다. 홍길동 애니메이션의 의의는 알겠지만 교과서적인 전시였다. 한 바퀴 둘러보고 패스-

순정만화를 꽤 읽어본 독자입장에서 신일숙 작가를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사실 신일숙 작가는 나보다는 나의 위세대가 더 사랑했을 작가이긴 하다.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작가는 천계영, 유시진, 황미나, 강경옥, 윤지운, 이소영, 김혜린, 한승원, 원수연, 김영희, 서문다미, 서현주, 김연주, 이시영, 이현숙, 임주연, 이은 등에 가깝다. 이 속에는 신일숙 작가 세대의 사람도 섞여있지만 말이다. 

신일숙 작가의 작품 중 읽은 것은 유명 게임의 원작인 ‘리니지’ 뿐이지만 제일 유명한 작품은 1986년부터 연재 시작한 ‘아르미안의 네 딸들’일 것이다. 홍길동 전시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전시장 내부에는 ‘아르미안의 네 딸들’ 속 그림과 글들로 가득 차있었다. 최근 연재작은 ‘카야’지만 파급력이 큰 것은 역시 이 작품이기 때문 인걸까.

아래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신일숙 작가의 그림체와 작품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고전적이다. 신화, 전설을 배경으로 한 영웅설화가 주요 테마이기 때문에 이야기 속에서 시련과 극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순정만화답게 여성이 주인공이며 특히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제목에서 나타나듯 네 명의 후계자들이 각자 선택한 길과 그 결과를 보여준다.


"나는 행운을 무작정 기다리는
그런 무력한 인간이 아니다.
내 손으로, 내 스스로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삶이야말로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다."

여왕 레`마누아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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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마나에서 진행했던 신일숙 작가의 인터뷰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단행본 시절의 만화와 달리 오늘날의 웹툰은 사전 제작을 하지 않는 이상 매회 승부를 봐야하기 때문에 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그림 작가와 글 작가가 따로 붙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단행본은 빠르면 한 달에 한 권, 늦으면 몇 달에 한 권씩 볼 수 있지만 웹툰은 보통 주 1일 연재이다. 지난번 웹. 만. 사 글에서 밝혔듯이, 그렇기 때문에 작가와 작품을 관리해주는 매니지먼트사가 중요해졌다.

두 번째는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문장인 “운명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에 대한 작가의 답변이었다.


운명이 바뀌었다고 해도, 원래 정해진 운명과 비교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사형수라 해도 그냥 죽는 날만 기다리느냐, 죽기 전에 뭔가를 해보려고 하느냐는 선택할 수 있다. 어떤 길을 갈 때 남이 시켜서 가느냐, 내가 원해서 가느냐, 가야 하기 때문에 가느냐는 다르다.

어떤 결과가 나오는 데 있어서,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둘 중 하나는 선택할 수 있다. 이 상황을 즐길 것이냐, 아니면 힘들다고 만 생각할 것이냐. 이런 식으로 순간마다 선택지가 나온다. 한 번도 스스로 선택해보지 않는 사람과 매번 자기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은 그 삶이 굉장히 다르다.

원해서 하는 것이 원래 정해진 운명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아니었을 수도 있다. 매번 자기가 선택해서 가는 것은 굉장히 다른 것이다. 그런 게 바로 운명을 변하게 한다.


이런 생각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당시 이 작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었다.

작가의 인터뷰 전문을 보고 싶은 사람은 이곳으로


04 뮤지컬 갈라쇼 - 허풍선이 과학쇼

평점 : ★★★★ (만족)

2시 반의 사인회까지 약 40분 정도 남은 시점에서 전시장 내부를 다 살펴보았다. 보통 전시장을 최소 1시간은 둘러보는 내 입장에서 이번 시카프는 가장 아쉬웠다. 입장한지 거의 30분 만에 종료라니.. 2009년에 거의 3시간 돌아다녔던 기억이 아득하다.

사인회를 기다릴 겸 어린이들과 부모님들이 앉아있는 메인무대로 갔다. 2시 정각에 공연이 시작하므로 적당히 쉬면서 시간을 때우기 좋을 것이라 여겼다. 시작된 쇼는 즐겁게 예상을 깼다. 어린이 대상 뮤지컬이고 제목이 과학쇼인 만큼 살짝 지루할거라 생각했는데 마치 한 편의 서커스 같았다.

적당히 따라 부르기 쉬운 운율과 반복되는 대사, 캉캉 거리는 춤과 캐릭터에 잘 맞춘 의상이 유쾌했다. 과학자는 에디슨과 장영실이 나오는데 여기서 장영실이 우스운 입담과 발재간을 선보인 것이 웃음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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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배틀 이후 관객 초청 쇼가 이어졌는데, 어린이들의 승부욕도 귀여웠지만 코스프레한 사람들의 열렬한 호응과 참여가 백미였다. 좌석에는 데드풀, 스파이더맨, 라라, 나루토의 어떤 캐릭터 등 여러 콘텐츠의 코스프레인들이 있었고 참여자는 라라와 나루토 캐릭터였다.


05 사인회 - ‘스피릿 핑거스’ 한경철 작가

평점 : ★★★★★ (대만족)

즐거운 뮤지컬 갈라 관람 이후 곧바로 사인회장으로 갔다. 약 30분 정도 기다리는 동안 작가님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을 속으로 연습했다. 옛날 시카프에서 HUN 작가님을 봤을 때는 말 한마디 못 붙이고 멀리서 바라만 봤는데, 이젠 책까지 준비해서 사인을 요청하고 있는 내 자신이 뿌듯했다. 사인을 받고 나오기까지 85% 정도는 순서를 지켜 잘 말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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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대상은 내가 좋아하는 네이버 일요 웹툰, ‘스피릿 핑거스’의 한경철 작가님! 이 작품이 네이버에서 주로 나오는 10대 소년소녀 연애물이기는 하지만, '유미의 세포들'처럼 연애보다는 주인공의 성장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고 일요일 부동의 1위였다. 막 완결했으므로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수 있다.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환상적인 작화
색연필로 만들어진 동화 속의 세계 같은 느낌을 잘 살렸다. 그러면서도 캐릭터를 그릴 때는 선이 뚜렷해서 배경을 보든 캐릭터를 보든 눈이 즐겁다. 인물 별 특징과 색이 뚜렷하고 이를 반영하듯 각자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깊다.

현실과 만화라는 경계
“만화는 현실을 다루지만 어디까지나 만화일 뿐이다.” 라는 생각을 즐겁게 농락한다. ‘스피릿 핑거스’의 주인공이 모임 사람들과 드로잉을 하는 모임 장소는 현실의 세계가 아니다. 작은 지하의 스터디방일 뿐인데 해리포터의 공간 확장형 텐트 마냥 복도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매 번 모임을 열 때마다 그날의 컬러와 인물에 맞추어 무대 세트마냥 스타일이 바뀌기도 한다.
주인공은 가끔 이곳에 대해 의심하지만 제 4의 벽을 깨지는 못한다.

따뜻한 성장
너무 날카롭거나 괴롭지 않은 성장물이다. 주인공의 성장이 큰 줄기지만 주인공 외 다른 인물들 역시 이야기 초반과 후반에 많이 달라진다. 가족은 좀 더 가까워지고, 친구들은 꿈을 찾고, 드로잉 멤버들은 각자의 변화를 맞이한다.

보는 내내 응원하고 싶어지는 웹툰이었다. 이제 외전 연재까지 끝나 더 이상 이들의 이야기를 볼 수 없겠지만 어련히 잘 살 것이라 믿는다.



마치며

시카프는 왜 점점 아쉬워질까? 띄엄띄엄 참가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전과 비교해서 전시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 흥미롭지도, 새롭지도 않았다.

이번 주제가 Life라서 전연령층을 아우르는 전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연령별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이 한정적이고 그나마도 많지 않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8년 콘텐츠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지난해 한국 만화산업 매출액은 총 1조원이었고 올해는 1조 1000억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한다.([웹툰 전성시대]① 만화 시장 1조시대 연 1등 공신...K웹툰 열풍도 이끌어) 매 년 성장세인 만화산업이고 시장도 결코 작은 규모도 아닌데, 왜 대표적인 만화애니메이션 전시회의 질은 떨어진 것일까?

특히 네이버를 필두로 시작된 웹툰이라는 플랫폼은 출판만화 이후의 만화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스토리보드를 따로 짤 필요가 없어 이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도 많이 생겼다. 한국에서 전연령층이 즐기는 대표적인 콘텐츠이기도 하다. 이번 시카프에서 웹툰을 크게 다루었으면 주제와 목적을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년 7월 혹은 8월에 열릴 23회 시카프는 알차고 재밌는 전시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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