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작가를 ; 읽다 - 앨런 긴즈버그] 울부짖음 HOWL [도서]

비트 세대의 울부짖음, 앨런 긴즈버그의 [ HOWL ]을 읽고
글 입력 2018.09.01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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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 뛰어도 될 주저리 이야기

아무도 관심 없을 수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적고 갑니다. 문학 작가들을 조금 더 폭넓게 소개하고자 [작가 알아가는 시간]을 [작가를 ; 읽다]로 변경합니다. 그 이어짐의 시작은 시인 "앨런 긴즈버그"입니다.


라디오에서 우렁차게 낭송되는 [Howl]을 들으며,
순간 밥 딜런이 왜 그렇게 그를 연구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 존 레넌



작가소개

앨런_긴즈버그.jpg
 

앨런 긴즈버그. 미국의 시인. ‘비트 세대’의 대표 작가. 1956년에 발표한 시 <울부짖음>을 통해 동세대가 느끼는 정서를 파격적 에너지로 표출해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는 ‘비트 세대’의 월트 휘트먼으로 불리며 현대 미국 사회가 잊고 있던 시인의 역할을 일깨웠다고 평가받는다.


HOWL.jpg
 

『나는 내 세대 최고의 영혼들이 광기로 파괴되는 것을 보았다.
허기와 신경증으로 헐벗은 채,』


HOWL의 첫 문장이다. 여기까지 읽고 난 이 광기의 근원지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배경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비트 세대

비트는 ‘탈진하다’라는 뜻의 ‘비트(Beat)’와 ‘신의 축복을 받았다’라는 뜻의 ‘비티튜드(Beatitude)’가 함축되어 있다.
비트 세대에 의해 비트 문화 운동은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

1950년대 당시 미국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였다. 하지만 그 풍요의 속은 순종적이고 획일화된 일상이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았고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지속되는 소련과의 냉전에 대한 불안이 떠올랐으며, 풍요는 흑인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불안한 상황들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잠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 터져 나온 것이 비트 세대였다. 이들은 기존 기성 체제에 신물을 표했으며, 체제 안에서의 획일적인 인간을 거부했다.

이들은 정치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약물, 술, 섹스, 재즈, 선불교의 수양 등으로 생기는 고도의 감각적 의식을 통한 개인적인 해방을 주장했다.



HOWL

다시 시 HOWL로 돌아가,


그들 가난하고 남루하며, 텅 빈-눈으로 약에 취해 냉수만 나오는 아파트의 초자연적 어둠 속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도시 옥상을 떠돌며 재즈를 음미하던 자들,

(중략)

그들 창틀에서 절망의 노래를 부르다 지하철 창밖으로 추락해, 불결한 퍼세익 강으로 뛰어내린 다음, 흑인구역으로 도약해 온 시내를 울고 돌아다니며, 깨진 와인 잔 위에서 맨발에 고주망태로 춤을 추다 향수어린 유럽 1930년대의 독일 재즈 음반이 위스키 곡을 마치자 신음하며 지독한 화장실로 던져 올려져, 귀에서 신음과 엄청난 기적 소리의 폭발음을 들었던 자들,

(중략)

그래서 이제 그들이 얼음장 같은 거리로 뛰어나갔다. 생략과 나열과 운율 떨리는 평면을 활용한 연금술이 가져다줄 갑작스런 섬광에 집착하며,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다. 마치 썩은 꽃다발로 뺨을 맞은 느낌이었다. 꽃다발로 뺨을 맞는 것 자체도 충격적인데, 꽃이 썩어 바싹 말라서 긁힌 곳이 쓰라린 느낌이었다. 아무튼 요약하자면 차가운 충격이었던 것 같다.

주옥같은 문장에 전문을 모두 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너무도 긴 것을 나 또한 잘 알기에 접고, 특히나 와 닿았던 문장들을 썼다.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광기에 휩싸여 있었고, 이를 표현하는 단어들은 옷 한오라기 걸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인 양 생생하고 때론 외설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의사가 명확하고 진실하게 다가왔다. 처절한 진실 같았달까. 처절하게 울부짖는 노래 같았다.

노래 같았던 이유는 이 장시가 웅변같이 읽히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책이 큰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작긴 하지만, 주석까지 합치면 장장 20페이지에 달한다. 또 그럼에도 쉼 없이 물 흐르듯 읽힌다는 점. 오히려 감정이 고조되면 되었지 호흡은 끊기지 않는다.

그러나 난 뒤로 갈수록 곧, 자주 멈추곤 해야 했다. 슬픔이 목까지 차올라 울어버릴 것 같아서. 비트 세대들이 현실에서 벗어나 광기에라도 취하려 하나 그들을 둘러싸고 그것마저도 하지 못하게 하는 배경에 서글펐다.

*

1장에서는 ‘그들’이라는 단어가 문장마다 반복된다.

‘그들’은 비트 세대를 가리킨다. 이들은 획일적, 순응적 사회를 부정하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신적 자유와 해방을 택했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써 약물, 술, 섹스, 재즈에 온몸을 맡기는 행위가 나열된다. 이들이 약물과 술, 섹스, 재즈에 의존한 것은, 어떠한 체제에 묶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하며 행위 그 자체로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의 이유를 자신의 내면에서 찾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 그들의 행위는 반위적이라며 탄압당하고 정신은 박해당했던 것이라 짐작된다.

그래서 그들은 글을 썼다. 그들의 정신이 썩혀버리기 전에, 자신들의 정신을 도려내 천 년은 썩지 않을 글들을 남겨뒀다. 이들은 사회에 약물과 술과 섹스와 재즈로서 울부짖으며 맞섰고 이 또한 절망 당하자, 더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그들의 정신을 글로 옮겼다.


몰록! 몰록! 로봇 아파트들! 보이지 않는 교외! 해골 금고들! 눈먼 자본! 악마 같은 산업! 유령 같은 국가들! 천하무적의 정신병원들! 화강암 자지들! 괴물 같은 폭탄들!

(중략)

진정으로 거룩한 웃음소리는 강에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보았다! 야생의 눈! 거룩한 함성! 그들은 작별을 고했다!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고독을 향해! 손을 흔들며! 꽃을 들고! 저 강으로! 저 거리로!


2장에서는 ‘몰록’이라는 단어가 문장마다 반복된다.

‘몰록’은 고대 셈족이 섬기던 신으로, 어린이를 제물로 바쳤다. 긴즈버그는 이러한 몰록을 고독과 쓰레기, 추악함으로 표현한다. 그 표현들은 글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거칠어지며 형상이 명확해진다. 몰록은 눈먼 자본이며 악마 같은 산업이며 유령 같은 국가들이며 천하무적의 정신병원이라고 직접적으로 비난한다. 이것들이 바로 비트 세대가 신물 낸 사회의 모습이었다.


칼 솔로몬!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로클랜드(뉴욕 주의 정신병원)에
그곳에서 넌 나보다도 더 미쳐있다

(중략)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로클랜드에
내 꿈속에서 너는 바다를 여행하느라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고 눈물에 젖은 채 미 횡단 고속도로를 지나오고 있었다 서부의 밤 나의 오두막 문을 향해


그리고 마지막 3장에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로클랜드에’라는 문장이 반복된다.

이는 칼 솔로몬을 향해서 하는 말인데, 영혼을 죽이는 지옥 같은 정신병원에 함께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이 지옥 같음에도 함께이기에 깊은 애정과 유대감이 느껴진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로클랜드에’ 라는 문장의 반복은 터져 나오는 분노를 위로해주고 어루만져 주는 것만 같다. 또한 3장은 언젠가 지나올 자유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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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윌리엄 버로스, 루시엔 카, 앨런 긴즈버그-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앨런 긴즈버그를 포함한 잭 케루악과 루시엔 카가 만나 시작된 비트운동. 세상을 예민하게 바라본 비트 세대, 청춘들.

시를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세상을 예민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그 불씨는 1960년대에 이르러 점차 쇠퇴했다고 하지만, 그 정신과 울부짖음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효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예민하게 바라보려는 사람들의 곁에 붙어 있다고. 그러니 강에서 시체가 떠오른다면, 그건 그들일 것이다. 거룩한 그들은 거룩한 그 강에 있다.




14기 김현지.jpg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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