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

글 입력 2018.09.0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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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외롭지 않기 위해, 더 행복해지기 위해 가족을 이룬다. 그렇게 시작된 가족의 구성원들 중에는 사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누가 나의 부모로 적당할지는 전혀 선택할 수 없었고, 나의 자식도 고의를 한껏 담지 않는 한 선택할 수 없다. 소설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버린 사람들은 누구도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이런 불편함이 현실이라면 차라리 애초부터 나홀로 외로운 것이 낫겠다 싶을 정도다.

모든 것이 갈등을 세심히 다루고 싶은 작가의 의도와 상상력 덕분이겠지만, 글 속의 화자에 이입하여 읽다 보면 그들이 받았을 상처의 고통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내가 실제 겪은 일이 아님에도 생생하다.


느닷없이 세상에 나왔던 아기가 있었다. 배가 뒤틀리듯 아파서 근린공원 공중화장실에 들어갔다. 아랫배에 힘을 주자 아기가 미끄러져 나왔다. 당시 미옥은 대학생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기란 엄청난 신체의 고통 속에 어렵게 태어나는 존재로 알고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덤벙대다가 가장 손쉽지만 또한 가장 나쁜 선택을 하고 말았다. … 화장실 안에 놓여있던 작고 푸른 플라스틱 휴지통은 아기가 들어가기에 알맞았다. 아기를 거기 넣은 후 하염없이 휴지를 풀어 덮고 또 덮었고 그것보다 더 많은 휴지를 사용해서 신체의 아랫부분을 닦아냈으며 또한 겹겹이 쌓아서 팬티라이너를 만들었다. 너무도 떨린 나머지 한 손으로 다른 손을 부여잡고 그 모든 행위를 수행해야 했다. 어서 자리를 모면해야 한다는 것 외엔 다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그땐 현장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었다.

세번째 이야기 ‘노래방 여자’ 中


“이혼하자.”
“직장 다니지 말랬다고 이혼하는 사람도 다 있나?”
“당신하곤 더 이상 살지 않겠어. 나도 존중받고 싶어. 현우 데리고 다니며 발버둥칠 때 당신은 뭐했나 곰곰이 생각해 봐. 내가 일일이 말하지 않았지만 당신은 그때도 지금도 너무나 이기적이야. 이게 이혼사유야.”
“이혼 같은 건 내 인생에 없어.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도둑질하는 자식과 모자란 자식 뒷바라지 때문에라도 이 집에 오래오래 있어줘야겠어.”
남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영의 손이 그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모자란 자식’이란 말이 부모 된 자의 입에서 튀어나오다니 믿기 힘들었다. 그러자 남편도 기다렸다는 듯 소영의 뺨을 올려붙였다. … 소영은 남편의 손찌검의 느낌에서 일말의 애정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명확히 감지했다. 그러면서도 이혼하지 않겠다니 이건 무슨 마음보란 말인가. 조금 전 남편이 내뱉은 말은 완벽한 그의 진심이었던 것이다. 도둑질하는 자식과 모자란 자식 뒷바라지 때문에라도 이 집에 오래오래 있어줘야겠어.

일곱 번째 이야기 '괜찮아' 中


그렇다면 나에게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

한 집에서 오래 붙어 지내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멀리 떨어져 지내도 나를 심란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10대 때에는 내내 ‘엄마’라는 소재에 민감했던 것 같다. 엄마를 떠올리면 슬퍼서 눈물이 주룩주룩 나던 때가 있었다. 엄마는 항상 함께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것도 아주 오래되었다. 엄마는 가난한 집의 맏이로 태어나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일찍부터 취직을 해서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되어야했다. 좋은 가정을 꾸려 아이들을 부족함없이 잘 키우는 것이 꿈이었던 엄마는 결혼을 하면서 일을 그만두었다. 이후 집에서 육아와 살림살이를 도맡았던 엄마는 오랜 기간 경제력이 없었고, 아빠와 시댁 식구들에 은근히 무시당하고, 괴로움인가 외로움 때문에 우울증을 앓았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는 절대 저렇게 살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나를 포함한 가족들이 얼마나 엄마에게 잔인했는지. 엄마는 자신이 어릴 때 먹지 못한 것, 갖지 못한 것, 배우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큰딸인 나의 손에 어떻게든 많은 기회를 쥐여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20대 초중반에 접어들 때까지도 엄마에 대한 미움을 뿜어내며 최대한 멀어지려고 했다. 나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느낌, 나에게 크게 의지하는 느낌, 나를 통해 자아실현을 하는 느낌에 대한 증오였다.

돌이켜보면 딸이라는 사람이 한 생각 치고는 너무 심했던 것 같다. 지금은 엄마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감사하다. 몇 년 전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갖게 된 후 늦게서야 되찾은 건강한 생활의 만족감을 엄마가 언제까지나 누려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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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는 단편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그것들을 모아 놓은 소설집에 관심이 없었다. 조금 몰입을 해보려면 소설이 끝나버리고, 새롭고 낯선 설정의 다음 단편 소설이 시작되는 것이 너무 섭섭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단편 소설에 대한 호감은 없지만, 이 소설집은 문학 읽는 재미에 다시 눈을 뜨게 해주었다. 최근 읽었던 비문학 책들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이야기 속 인물의 입장에 그대로 녹아들어가는 느낌을 오랜만에 받을 수 있었다.

글 속에서 이 작가가 꺼내 드는 소재들 (이를테면 레슬링, 열대어 등)은 실제 작가의 취미 분야일까? 작가의 실생활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는 무엇이며, 온전히 상상력에 기초한 이야기는 어느 부분일지도 궁금했다. 그 궁금증을 명확히 해결할 수 없어서 글에 비쳐 보이는 작가라는 존재는 언제나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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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신중선



[하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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