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이 있는 그의 공간, 'All about Saul Leiter'

글 입력 2018.09.0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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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이 있는 그의 공간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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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세상을 바라본 자의 시각은 실로 대단했다.

평범한 것, 보이지 않는 것, 사소한 것, 순간적인 것을 담은 사울 레이터의 프레임은 그 어떤 거창한 의미가 담긴 사진보다 더 빛났다. 주변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러나 과감한 구도로 캐치한 그의 사진은 비밀스럽기도 했고, 서정적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따스한 감성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작업하다 뒤늦게 큰 사랑을 받은 사울 레이터. 그의 말대로 "예술의 역사는 간과되고 무시되고 부적절하고 평범한 것들이 찬사를 받는, 위대한 것들의 역사"였다.

그는 표면에 떠오르지 않았지만,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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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는 1923년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랍비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지만, 탈무드 학자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입학했던 유대교 율법학교를 중퇴한 후 23세에 뉴욕으로 갔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뉴욕에 살며 자유분방하면서도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찼던 뉴욕 구석 구석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가 사는 동안 뉴욕은 빠르게 변화했지만, 세상을 향한 그의 눈길은 한결같았다. 사울 레이터는 어떠한 결정적인 순간이 아닌,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핵심이 있다고 믿었다. 그가 캐치하는 길모퉁이의 풍경은 완벽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진 몇 장만 감상하면 비로소 알게 된다. 그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중심을 벗어나게 잡은 대담한 구도, 그리고 거기에서 생기는 여백에서 차분하면서도 쓸쓸한 어떤 것이 느껴진다. 실제로 일본 미술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는 불완전함의 미학을 뜻하는 와비사비 미학을 찾아볼 수 있다. 덜 완성적이고, 단순한 것. 그런 것들에서 오히려 '본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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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 공개되어 있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숨어 있는 것들도 있어요. 그리고 그 숨어 있는 것들이 인생이나 현실 세계에서 더 많은 영향을 주죠. 그렇지 않나요?"

"명백한 사실인 것 같아요. 우리는 공개된 것이 현실 세계의 전부인 척 하는 것을 좋아하죠."

- Saul Leiter


2000년대 후반까지 거의 60년간 그의 사진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사울 레이터의 작품은 뒤늦게 주목 받기 시작했고, 그는 '우연히 발견된 거장'이라고 불렸다.

사울 레이터는 세상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순수한 관찰자가 되길 원했던 예술가였다. 인생 대부분을 드러나지 않은 채 살았기에 만족했고, 이를 오히려 '특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삶의 철학은 작품에도 깊이 묻어났다. 그는 피사체를 향해 직접적인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인물의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담거나, 유리창과 거울을 매개 삼아 피사체를 응시했다. 사울 레이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숨어 있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깨닫게 한다.

그의 말처럼 감춰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을 깨달아가면서 사진의 역사가 바뀌는 것 같다. 알려지지 않은 60년 동안 한결같은 시선으로 담아낸 그의 작품이 발견됨으로 인해 사진의 역사가, 그리고 예술의 역사가 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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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피사체를 단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대담하고 회화적인 구도 속에 흔들린 초점으로 포착된 피사체는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고요하고도 몽환적이며 신비롭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사체를 향한 시선이 불안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더 단단하고 깊은 감동이 밀려온다.

이런 사울 레이터의 사진과 영화 <캐롤>의 장면이 닮아 있다. <캐롤>은 다채롭지만 절제된 컬러와 불안한 사랑을 하는 두 주인공의 내면을 담은 파격적 구도 등 독특한 미장센으로 눈길을 끌었는데, 감독 토드 헤인즈는 영화 연출에 있어 사울 레이터와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전한 바 있다.

'사울 레이터'를 알기 전 영화 <캐롤>을 먼저 봤던 터라 잘 몰랐는데, 이후 다시 영화를 보니 사울 레이터가 담아냈던 1950년대 뉴욕의 풍경이 영화 곳곳에서 보인다. 파격적인 구도에서 주인공들의 외롭고 쓸쓸한 감정이 잘 드러나고, 1950년대 뉴욕 중산층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장면에서 사울레이터의 감각적인 사진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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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캐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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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캐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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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의 작품과 언어를 담은 사진 에세이,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을 읽는 동안 감탄의 연속이었다. 절제미가 느껴지는, 시(詩)와 같은 사진 작품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감상했다. 그가 남긴 말들도 역시 사진만큼 인상적이었는데, 읽고 나니 마치 철학책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진집 그 이상의 울림이었다.

스튜디오가 아닌 거리, 유명인이 아닌 행인, 연출된 장면이 아닌 평범한 일상,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과 여백까지 사울 레이터의 '없는 것'에서는 오히려 '본질'이 더 명확하게 보였다. 그의 사진 속에는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이 있는 공간이 있었다. 단연코 중요한 것은 장소나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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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 All about Saul Leiter -

원제 : All about Saul Leiter
지은이 : 사울 레이터
옮긴이 : 조동섭
펴낸곳 : 도서출판 윌북
분야 : 사진집 / 사진 에세이
쪽 수 : 312쪽
발행일 : 2018년 7월 31일
정가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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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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