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봉곤의 섹스 판타지 [도서]

그저 사랑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한 그의 ‘여름, 스피드’
글 입력 2018.09.0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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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라는 것은 발견에서부터 시작된다. 김봉곤은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로, ‘팔십 키로가 넘으면 웬만하면 자고, 구십 키로가 넘으면 얼굴도 보지 않는(여름, 스피드)’ 동시에 ‘수염이 없으면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는(밝은 방)’ 뚜렷하지만 흔하진 않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여름, 스피드’는 ‘Auto’에서 언급했듯 그의 인생에서 모티브를 따 온 소설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그의 사실적인 삶과 허구적 이미지의 모호한 경계 위에 서 있다. 독자들은 그의 소설을 읽으며 마치 전지적 입장에서 그의 생각과 인생을 조망하는 듯한 관점을 취하게 된다. 그는 스스로의 의견과 행동에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 순간에 충실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순간 느꼈던 생각을 그대로 기록하며 때론 충동적으로 합리적 판단 없이 행동을 취한다. 이 소설은 그러한 기록들의 나열이며 피드백은 온전한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독자들이 이 책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두 가지이다. 김봉곤의 섹스 판타지와 그의 예술에 대한 신념. 그 둘은 그의 인생 속에서 뒤섞이거나 완전히 분리되거나 혹은 병렬적인 양상을 보인다. 그런 그의 태도는 ‘밝은 방’과 ‘Auto’에서 두드러진다. ‘밝은 방’에서 등장하는, 무너지고 있으며 딱 앞만 보이게 하는 그 빛은 곧 영화를 뜻한다. 빛으로 들어가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결국 그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김봉곤 자신도 끝만 같은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를 알면서도 그의 예술 세계를 놓지 못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존재 의미를 찾아낸다. 그의 사랑도 이와 다르지 않다. ‘Auto’에서 그는 답이 보이지 않는 예술과 비슷한 존재인,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연인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항상 사랑을 하는 존재이고 그 사랑의 대상은 하나가 아니다. 그를 다르게 해석하자면 그가 했던 몇 번의 사랑은 곧 몇 번의 이별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랑을 하기에 앞서 겪어야 하는 것은 애정이 식은 애인과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더군다나 김봉곤은 ‘라스트 러브 송’에서 그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그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언급한 바 있다. 답이 없는 예술과 떠나간 애인. 이들의 공통점은 대상이 결코 주체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묻는 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대상은 항상 주체가 상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인다. 주체는 항상 낙관하고, 대상은 주체를 벗어나려 한다. 예술은 그에게 결코 정답을 알려주지 않고, 사랑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발견이란, 전혀 보편적이지 않는 주제에서 보편성을 도출하는 작업이다. 남자를 좋아하며 그를 외설적인 단어로 표현하는 김봉곤의 연애사에서 우리가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그 속에서 사랑이라는 공통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그의 인생사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반추하게 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김봉곤의 사랑은 권희철의 말처럼 ‘제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의미의 사랑에 가깝다. 김봉곤이 원하는 것은 특정한 상대가 아니다. 사랑을 위한 사랑. ‘언제나 기대했던 기시감으로 넘쳐나는 지금 이 순간, 그런 기시감과 패턴만을 사랑해왔던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사랑해버린다(디스코 멜랑콜리아)’. 그는 수 많은 남성을 사랑한다. 서울로 독립해 온 뒤 어플이나 클럽을 통해 다양한 남성들을 만났지만 그의 모순적인 순수성은 그 모든 남자들을 대상으로 일관성 있게 유지된다. 그가 사랑을 하는 이유는 ‘이번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린 확실히 좀 다르지 않은가, 아니다 우린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다른 거 하나 없이 우리 뻔하게 남들처럼 오래 하자(라스트 러브 송)’는 대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새로운 사랑에 대한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낭만적인 기대 때문이다. 그는 사랑할 만한 대상, 그러니까 자신의 섹스 판타지가 충족될 수 있는 대상에 대해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일면은 ‘디스코 멜랑콜리아’에서 제시된 상황 속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어플을 통해 만난 남성과의 첫 오프라인 만남을 통해 김봉곤이 그의 취향이지만 아직은 미지 속에 있는 새로운 남성과 마주할 때 어떤 사고과정을 거쳐 어떤 행동을 취하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매 순간순간 그가 하고 있는 사랑이 다시 없을 운명처럼 여기며, 맹목적으로 그를 따른다.

이는 그의 ‘게이’라는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동성을 사랑하는 것이 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며 그렇기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가 동성이라면 쉽게 호감을 표시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김봉곤이 겪어 온 대부분의 만남이 누군가를 만나고 그에게서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도 게이인 경우가 아니라, 사랑을 시작하고자 하는 게이들이 자신의 신상을 밝힌 상태에서 자신이 사랑할 만한 이를 선택해 그와의 만남을 시작하는 경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사랑을 위한 사랑’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사랑을 쉽게 시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랑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대상 따위는 괘념치 않은 것이 되어 버린다. 사실 일반적인 연애 또한 마찬가지이다. 서로를 너무 시작해서 사랑하는 연애는 흔치 않다. 상대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과 그 상대가 나쁘지 않은 사람 둘이 모여 시작하는 관계가 대부분이다. 이 때 단순히 ‘상대가 나쁘지 않게 느껴지는 사람’이 김봉곤의 경우와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는가?

연애는 결국 자신의 판타지를 하나씩 포기하는 과정이다. 누구나 자신이 바라 왔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 놓고 연애가 그것을 충족 시켜 주리라 믿기에 그를 시작하는 것이겠지만 실제로 그것이 100% 충족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김봉곤은 그의 판타지를 놓지 않는다. ‘당신과 내가 만난 건 기적이에요. 거기에다 당신과 내가 게이일 확률을 곱해버리면 그 기적은 무한대가 되어버렸다 (라스트 러브 송)’ 다는 그의 논리에 따르면 그와의 만남은 환상 그 자체이기에, 그는 기대할 수 밖 없는 것이다. 게이인 그의 연애가 이성애자인 나를 비롯한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진 이들에게 공감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판타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그리고 포기해왔던 판타지를 그는 놓지 않기에 우리에게 과거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의 외설적인 표현 속에서 그것은 결국 섹스로 연결되지만, 섹스는 결국 사랑의 가장 강렬한 종착지이며 내 모든 것을 주고 싶다는 최대의 표현이기에 그의 적나라함은 ‘제어 불가능한 사랑’ 그 자체로서 기능한다. 누군가를 그래도 한 번 믿고 싶다는 마음과 기대는 결국 섹스이자 연애의 판타지이며 그것은 이미 과거에 학습된 것이기에 향수로 남지만 새로운 연애가 시작될 때마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으로 다시 치환된다. 사랑의 위대함은 그것에 있다. 상처와 역경과 반복되는 굴레 속에서도 한 번 더 믿고 싶은 희망적인 기대가 우리를 다시 사랑에 빠지게 함을, 김봉곤은 온몸으로 실천하며 보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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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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