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의 사진에는 '휴식'이 있다 [도서]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All about Saul Leiter)
글 입력 2018.09.0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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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 대부분을 드러나지 않은 채 지냈다.
그래서 나는 늘 아주 만족했다.
드러나지 않는 것은 커다란 특권이다.

(148쪽)


알려지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는 사울 레이터. 대부분의 사람의 마음에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리고 그는 관중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다. 그런 그가 유명세를 중요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를 놀라게 한다. 그의 이런 삶의 태도는 그의 사진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의 사진을 보면 편안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작가의 생각을 확실히 전달하는 사진과 다르다. 그의 사진은 강한 주장이 없다. 사진에서 분명 그의 시선이 남아있지만, 그의 말은 빠져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을 채우는 몫은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넘겼다. 나는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 빈 공간에 여러 이야기를 그려 넣을 수 있었다. 그의 사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무수한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은 느낌은 아마도 드러나는 삶을 중요시하지 않았던 그의 마음과 관련 있어 보인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피사체를 단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보는 이에게 조용히 그 틀을 제공한다. 그래서 그 사진들은 보는 이의 뒤로 몰래 다가와 왼쪽 귀를 간질인다.

(288쪽)


문학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좋은 문학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좋은 문학은 독자에게 강렬한 감정과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는 문학을 포함한 예술에도 강렬한 감정과 메시지를 주는 것을 필수로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일상적인 순간을 담은 예술이 주는 잔잔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

이번에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을 통해 나는 예술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깰 수 있었다. 창작자의 강한 감정과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빈 공간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있음을 깨달았다. '모두 너무 지나치다 (12쪽)'는 그의 말처럼 작품에 지나치게 강렬한 감정과 메시지가 때로 작품을 감상하는 이를 지치게도 하니까. 사울 레이터의 사진의 사진에는 휴식이 있다.


스스로에게, 또 자신의 예술에 어떤 무거운 의미는 전혀 덧붙이지 않았다. 세상에 존재하며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늘 잘 느끼는 것 외에 다른 어떤 확고한 목적이나 의도는 품지 않았다. 설교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

(281쪽)


사울 레이터는 일본 미술에 대한 많은 애정과 관심이 있었다. 레이터의 사진에서 내가 느꼈던 빈 공간이 주는 평화로움이 바로 이것과 관련 있어 보인다. 일본의 대표적인 미의식인 불완전함의 미학인 '와비사비'를 떠올리면 그가 준 평온함이 단번에 이해가 된다. 폴린 버메어도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서는 와비사비의 미학이 느껴진다. 작품 자체에도 무거운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았고, 최대한 자신의 생각을 뺀 상태로 독자에게 사진에 담은 것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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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사진가가 주는 선물은 일상의 간과된 아름다움일 경우가 종종 있다. (104쪽)" 그의 말처럼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쉽게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주목하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익숙한 것의 소중함을 잊어버린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 매일 보는 출근길의 풍경 등. 항상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 존재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은 물론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다. 심지어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움을 찾아 다른 곳으로 도망치기도 한다.

누군가 여행이란 다시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오는 과정이라고 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건 익숙함이 주던 은은하게 퍼지는 온기를 발견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익숙함이 사라진 순간에서야 우리는 다시 익숙함을 그리워한다.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이미 행복한 일을 일어나고 있다는 말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사울 레이터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했던 공간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에 담아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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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는 무엇을 얻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내놓는가가 중요하다.

(56쪽)


사울 레이터, 그의 말을 통해 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했다. 새로운 발견은 최근 복잡한 내 마음을 차분히 정리해줬다. 무언가 얻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에 힘을 써야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욕구를 버리는 것은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만큼이나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일이다. 어떤 영역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진다."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이 문구를 발견하고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러나 단순한 공감에 그치고 마음 깊숙이 파고들진 않았다.

하지만 사울 레이터의 말의 여운은 길었다. 그의 말은 그대로 그의 삶이었다. '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자신의 말을 굳건히 지켜나가며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필름에 담아냈다. 사울 레이터는 자신의 삶을 통해 자신의 말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잘 알고 있었다. 변화가 심한 1960년대에 많은 예술가와 어울렸지만 그는 변치 않고 처음 모습을 유지했다. 내가 레이터의 사진에서 느꼈던 부드러움과 반대되는 강렬한 힘을 그의 삶에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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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진과 그림, 그리고 말까지,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을 접하면서 하나의 장면이 머릿속에 박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카페에 앉아 습기 찬 창가를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누군가의 모습. 이건 사울 레이터의 예술과 삶이 내게 준 하나의 이미지다. 그가 내게 보여준 예술은 이런 따뜻한 휴식이다.

그의 사진이 주던 평온함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사울 레이터의 삶처럼 더하는 것보다 빼는 삶을 살고 싶지만, 나는 금방 평소의 나로 돌아올 것이다. 지나가면 다시는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놓치며 인생이라는 바구니에 최대한 많은 것을 담으려고 노력하면서 물건이 흘러넘치는 것도 모른 채 매일 불행하다는 투덜거림을 달고 살아가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순간 다시 한 번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을 들춰보며 그의 사진에서 잠시 쉬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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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원제: All about Saul Leiter
지은이: 사울 레이터
옮긴이: 조동섭
분야: 예술·대중문화>사진집 / 에세이>사진 에세이
면수: 312쪽
ISBN: 979-11-5581-149-8 03660
판형: 148*210
정가: 20,000원
발행일: 2018년 7월 31일
펴낸곳: 윌북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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