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떻게 살 것인가, < 팔과 다리의 가격 > [도서]

글 입력 2018.09.02 21:1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팔과 다리의 가격.jpg
 

<팔과 다리의 가격>
장강명 지음





팔과 다리의 가격. 섬뜩한 제목이었다. 요즘은 암만 몸값, 몸값 한다지만 사람의 신체 부위를 콕 집어 가격을 매길 수 있나? 책의 저자부터 확인했다. 장강명 작가의 책이었다. 제목에 의미가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장강명 작가의 팬인 친구에게 물었다. 이 책 뭐야? 여러 가지 의문점이 함축된 짧은 질문이었다. 친구는 대답했다. 빨리 읽어봐요. 금방 읽을 수 있어요.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 아니, 그래서 이 책이 뭔데 제목이 이런 거야? 친구는 대답했다. 탈북자의 이야기인데, 하여튼 말로 설명 못 해요. 얼른 읽어 봐요. 꼭 읽어요.
 
그래서 읽었다. 장강명 작가의 <팔과 다리의 가격>.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차례로 진행된다.


<차례>

0. 이 책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1. 굶을 때 생기는 일에 대하여
2. 탄광마을의 삶에 대하여
3. ‘미공급’ 사태에 대하여
4. 귀신이 나오는 집
5. 비명을 지르는 밤
6. 어떻게 살 것이냐

작가의 말
 

장강명 작가는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밝히며 글을 시작한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 대기근이 일어나 약 33만 명이 숨졌다. 이 기근을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른다.
33만 명이라는 숫자는 2010년 대한민국 통계청이 발표한 추정치다. 현재로서는 이 수치가 가장 믿을 만하다. 그러나 당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이보다 많다는 분석도 꽤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 이 책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중, 7p


위에 언급된 대로 북한의 대기근, 즉 ‘고난의 행군’ 시기가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기초적인 상황이다. 기근은 흉년으로 먹을 것이 모자라 굶주리게 되는 것을 말한다. 90년대 중반 남한의 모습은 어땠던가. 갓난아이였던 나는 그 시기의 우리나라가 어땠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가장 빠르게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떠올린다. 이 드라마가 인기와 공감을 끌었던 만큼, 아마 거기에서 그려진 모습이 대략적으로나마 우리의 90년대 중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으리라 추측해본다. 대기근이나 굶어 죽는다는 현실과는 꽤 거리가 멀었던 시기였을 것 같다.


나는 독자들이 그저 눈을 감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잘못 없이 굶어 죽은 비극에 대해 더 슬퍼해주기를 바란다. 그런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그게 누구의 책임이었는지 아는 것은 뒤로 미뤄도 된다. 비난의 대상을 찾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먼 미래로 연기하거나, 아예 하지 않아도 되고.
나는 고난의 행군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집중하려 한다. 굶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면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지, 인간의 존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그런 가운데에서도 동시에 인간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가치를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 쓰려 한다.
나는 어떤 소년의 이야기를 쓰려 한다.

- 이 책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9p


어떤 소년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오랫동안 굶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굶는다는 것은 간헐적 단식을 한다거나 건강을 위해 공복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굶주리는 상황은 이 세상의 ‘표준적인 인간’의 모습을 버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으로 사고할 수 없게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나의 부모님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은 ‘밥은 먹고 다니니’, ‘밥은 먹었니’ 하며 안부를 묻는다. 때를 놓쳐 대충 끼니를 때우거나, 한 끼를 그냥 굶어버리면 난리가 난다. 그래도 사람이 밥은 먹어야지,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최악의 경우까지 듣게 된다. 밥이든 간식이든 뭐라도 먹을 것을 입에 넣어야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나는 굶는 것을 못 한다. 안 한다. 건강을 위한 적당히 공복 시간을 두는 것 말고는 굶지 않는다. 꽤 오랜 시간 끼니를 거르게 되면 두통이 오고 신경이 곤두선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다. 때로는 정신력으로 버티긴 하지만 그마저 소진되어 버리면 끝내 건강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항상 준비를 한다. 굶지 않도록, 몸이 망가지지 않도록.

그만큼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인간에게 큰 의미가 있는 활동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도록 여유를 준다. 일상에서 가장 당연하게 이뤄지는 보통의 행위이면서도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행위다. 식사 여부를 묻고 챙기는 것은 서로 아끼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온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굶주린다는 것은 ‘밥은 먹었니’라는 안부의 말이 의미 없어진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은 인간이 서로의 정을 확인할 가장 일상적인 방법을 잃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기근 시기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습을 잃고, 인간이 가장 인간 다울 수 있는 정이 사라지고, 평범한 일상의 길이 기약 없이 막혀버렸던 시기였을 것이다. 굶지 않을 준비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나는 그저 그 처절한 시기를 조심스레 가늠해볼 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어떤 소년은 함경북도 회령시의 어느 탄광 마을에서 살았다. 그 탄광의 이름은 학포 탄광이다. 소년은 북한 대기근 시기에 10대를 보냈다. 그 시기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어 굶어 죽는 이웃들이 허다했다. 사람들은 죽음에 점점 무뎌졌다.

모두가 가난했고, 굶주렸다. 가진 것도 없어서 음식과 교환할 만한 물건도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방식으로 탄광의 사람들은 석탄 도둑질을 택한다. 소년과 그의 가족들도 생존을 위한 도둑질에 가담했다.

어느 겨울, 소년은 내다 팔 석탄을 훔치다가 열차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로 왼쪽 팔과 다리를 크게 다쳤다.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던 만큼, 그는 마취도 없이 썩어가는 팔과 다리를 잘라냈다. 그때 소년의 나이가 열넷이었다.


소년은 긴 수술 중에 몇 번이나 기절했다. 정신을 되찾으면 눈을 채 뜨기도 전에 질문들이 먼저 그를 찾았다.
네 이름이 뭐냐.
너는 왜 살아야 하느냐.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
마취약이 없는 의사는 그런 질문으로 어떻게든 소년의 의지를 끌어내려 했다. 그게 그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비명을 지르는 밤, 115-116p


피와 고름 냄새만이 가득한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그 소년은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목발을 짚고 중국과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에 오게 된다. 시간이 흘러 그 소년은 청년이 되고, 청년은 북한인권단체 NAUH(Now, Action & Unity for Human rights)를 만들고 그 단체의 대표가 된다. 그의 이름은 지성호다.


“저 같은 사람도 그 시절을 버티고 살아남았다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 어떻게 살 것이냐, 128p


어느 맑은 봄날이 그런 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풀과 나비와 제비가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면…… 이 책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 어떻게 살 것이냐, 131p


친구에게 책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 말로 설명 못 해요,라고 답했던 이유를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남한의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성호 대표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풀어주었다. 우리의 팔과 다리가 좋은 세상을 위해 쓰일 수 있기를 바라며, 장강명 작가는 이 책을 집필했다.

책은 지 대표가 열차 사고 이후 처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때를 이야기하며 마무리된다. 지금 이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직접 발췌 인용하여 전달하지는 않으려 한다. 이 책이 어땠는지, 어떤 책인지에 대한 물음에의 답은 출판사 서평을 발췌하여 대신해본다.


사나운 파도를 넘어 네가 닿은 포구는 어디...’ 북한영화 [곡절 많은 운명]의 주제가를 부르며 청년은 자신들도 굶으면서 아사 직전의 소년에게 옥수수와 김치를 나눠주던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시대 가장 첨예한 현실의식을 가진 작가 장강명은 이 청년이 쓴 수기를 읽고, 그의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그리고 ‘아무 잘못 없이 비참하게 굶어 죽어야 했던 사람들의 비극에 대해 누군가 함께 슬퍼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책의 주요 배경이 되는 ‘고난의 행군’에 대해 분명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책에 쓰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정치·이념 지형에서 북한 문제는 진영 간 정쟁 소재로 소모되다가 갈피를 잃기 일쑤인데 이 책이 그런 길을 걷지는 않았으면 한다.”

장강명이 말하려는 것은 한 청년의 잘려 없어진 한 팔과 한 다리의 가격이 아니라 아직 가지고 있는 한 팔과 다리의 힘에 대한 것이다. 한 팔과 한 다리의 힘으로 밀고 가는 불굴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굶주린 소년이 석탄으로 알고 훔쳐온 아무 가치도 없는 잡석을 사주었던 할머니의 마음이 독자를 울게 만들고,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가물거리는 희망이 된다.

- 출판사 서평 중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있다. 이 이야기가 지 대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책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팔과 다리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가. 나의 팔과 다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메시지와 질문들을 나는 한동안 꽤 오랫동안 곱씹기로 또 꺼내 보기로 한다.





※ <팔과 다리의 가격>은 출판사 아시아의 ‘이 사람 시리즈’ 중 두 번째 이야기다. 저자는 이 책의 인세와 판권 수입을 모두 북한인권단체 NAUH(www.nauh.or.kr)에 기부하기로 했다.


[심지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0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