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을 균열을 가할 수 있는 여자라서 행복하길 [도서 리뷰]

글 입력 2018.09.0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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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적 감각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청하는가? 일상의 평온이 어느 누구의 고통을 강제 봉인시켜 침묵의 늪으로 침잠시켜 온 결과였는가를 파헤쳐 드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이러한 파헤쳐 드러내기 작업이 수행되는 주된 영역은 외부의 적이 아닌 가장 이상화되어 있고 가장 친근한 영역인 가족제도이다.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은 가족이라는 친밀성의 양식 안에서 어떤 생채기가 계속 생겨나는지, 어떻게 서로에게 삶의 무게를 덧씌우고 있는지, 어떤 침묵을 강요해내는지, 어떤 방식으로 고요한 잔혹극이 전개되는가를 선연하게 그려낸다.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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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한테 질문한다. "너는 여자라서 행복하니?". 나는 여자라서 행복하지 않다. '여자'라는 이유로 '행복'을 말하기엔 그러다 할 명분이 전혀 없다. 사회에선 여성을 나약한 존재로 낙인찍어 버린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긴 과거에서부터 찍혀 살갗을 뚫고 깊숙힌 박혀버렸을 그 낙인은 여성을 소극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사회가, 사람이 만들어 낸 남성이라서 할 수 있는 일, 여성이라서 할 수 없는 일의 양분화 된 시선과 규범은 여성을 소극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여성'이란 이유로 쉽게 나서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렇기에 어디서나 잘 나서고 주도적인 남성은 "주체적이다. 리더십 있다. 당당하다. "라는 말로 쉽게 포장되는 반면, 여성은 "드세다. 나댄다."라는 부정적인 시선들이 그들 주위를 맴돈다. 나는 여자라서 행복하지 않다.

*

「정희의 시간」 속 정희는 한 시골 마을에 살았던 남성중심적 사회의 피해자이자,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다. 어느 감각보다 후각이 예민한 정희는 썪은내 나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맡아버린다. 하지만 이를 밖으로 토해내진 못한다. 마을 주민들이 서로서로를 다 알고 있는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7살의 어린 소녀는 성폭행을 당한다. 아버지 친구로부터. 하지만 예민한 후각으로부터 가해자의 냄새를 맡은 그 어린 소녀는 코를 막고, 입을 다물어 버린다. 바이올린을 키는 정희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예민하고 정확한 청각을 지녔는지 귀를 막아 버린다. 아직 어리고 그 작은 딸의 말을 들어주지 못하게 말이다.

40여 년 전에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의 정희의 이야기는 수십 년이 흐른 현재에 와서도 이어진다. 성폭행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사건의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에 주목한다. 피해자가 여성일 경우 그 정도는 더 심해진다. 어디에 살고 있는 몇 살의 여성인지, 그녀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심지어 그녀의 외모는 어떠한지, 어떠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지.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흠'이 보이면 어째서인지 피해자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간다. 피해자는 두 번 죽게 된다. 그리고 입을 다물게 된다.

「정희의 시간」 속 정희는 시간이 흘러 도망치듯 떠났던 고향을 다시 찾아 과거 성폭행 가해자인 전병집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의 힘 없는 가슴에 빨간 피 물을 들으면서 복수를 하게 된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동안 정희의 삶을 자기비난과 고통으로 짓눌르던 7살의 어린 소녀에서 벗어나게 된다. 정희의 복수는 사회적인 과정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7살 어린 소녀가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40여 년이라는 세월의 무게가 흐를 동안, 타인 그 누구도, 사회도 어린 소녀의 고통을 짊어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들은 깊은 세월동안 소화되지 않은 채 응어리진 가슴 속 멍들을 토해내야한다.

세계를 향해 구토하는 여자들에게 아무도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야한다. 그러고선 여자는 세계의 균열자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균열이란 정확하게 퍼즐이 맞춰진 사회의 흠집을 내는 것이 아니다. 단지, 원래부터 삐뚤어져 있던 그래서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던 사회의 퍼즐을 바로잡는 것이다. 우위와 열등의 이등분적 시선이 아닌 '동등'으로 말이다.


[이혜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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