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 무용한 것들을 좋아합니다 [도서]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을 읽고 새롭게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글 입력 2018.09.03 23:3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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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

매실나무.jpg
 

오늘 도서관을 탐색했다. 가장 큰 성과는 나무 이름이었다.

언제부턴가 도서관 주위에 나무들이 심어졌다. 일주일에 최소 3번은 지나다니면서 늘 보아왔지만 내 눈엔 다 그게 그거였다. 그 잎이 그 잎 같았고, 모든 색이 초록색 같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탐색의 결과 단풍나무, 매실나무, 주목, 소나무, 자작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모과나무, 스트로브잣나무. 이게 다 내가 하나의 것으로 합쳐버렸던 나무들의 이름이었다. 가까이 가 보니까 잎의 모양도 다 달랐다. 그렇게 신기해서 열심히 보다 모기를 물리는 영광을 얻었다. 아, 이 말을 뱉는 순간 간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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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사진가가 주는 선물은
일상의 간과된 아름다움일 경우가 종종 있다.


뜬금없이 왜 이런 탐색을 하게 됐는가 하면.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서 이런 것들을 자꾸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익숙한데 낯선. 분명 알고 있던 흔한 것들인데, 처음 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따뜻한 색감에 오래도록 쳐다보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은 길거리에 나갈수록, 우리가 보는 건 반짝반짝 눈길을 끄는 것들이다. 눈길을 끄는 건 대부분 강렬하고 예쁘고 특이한 것이다. 그에 비해 다른 것들보다 평범하면 평범할수록 묻혀 ‘이게 여기 있었나.’ 싶을 정도로 무심히 지나친다. 세대가 그렇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카페 하나도 간판이나 인테리어가 중요하다. 그래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물론 나의 눈도 그것에 익숙해졌다.

그런 점에서 난 사울 레이터의 시선이 다르다고 느꼈다. 그래서 좋았나 보다. 그의 시선은 늘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사진은 그 사람이 반짝반짝 시선을 끄는 존재라 보았다기보다는, 그저 있는 것에 눈길을 준다. 그래서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용한 것, 평범한 것, 일상적인 것을 아름답게 보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다. 그의 사진은 말하고 있다. 원래 아름다웠다고. 우리가 너무 많이 봐 익숙해져, 보지 않고 지나쳐버린 아름다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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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선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여백은 사울 레이터 사진만의 분위기와 색깔을 입히는 요소 중 하나다. 나 또한 독특하게 봤다. 누군가의 단편을 엿보는 느낌이랄까.

난 사진에 옆모습과 뒷모습을 담은 사람들이 많다고 느꼈다. 어떤 사진은 여러 개의 거울이 한 여자의 얼굴을 비추고, 어떤 사진은 여자의 옆에 있는 거울이 그녀의 옆얼굴을 비춘다. 유리창으로 한 남자의 옆모습도 보인다. 웨이터의 옆모습도. 때론 사람들을 위에서 내려다보기도 한다. 길거리를 걷는 옆모습도, 어딘가로 가는 뒷모습도. 생각해보면 난 내 옆모습과 뒷모습을 많이 보지 않는다. 아마 내 옆모습과 뒷모습보다 남의 옆모습과 뒷모습을 평생 더 많이 볼 것이다. 어쩌면 낯선 얼굴은 이들보다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을 보고 내 주변의 것들을 유심히 보려 노력했다. 물론 내 뒤통수도 오랜만에 봤다. 거울을 들고 요리조리. 그렇게 탐색을 해봤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볼수록 새로이 보였다.



#우산 속에서


나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확신하지 못할 때를 좋아한다.
우리가 왜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지 모를 때,
갑자기 우리는 보기 시작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이 좋다.


우산 속에서.jpg
 

비가 엄청나게 오던 날, 사울 레이터는 여백 속에서 어떤 걸 보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반 이상은 가려진 시야에서 바라보는 건 어떤 느낌인지 바라보고 싶었다.

나를 기준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저 구두를 신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저 구두를 신고 어딜 다녀온 걸까. 저 강아지는 차박차박 걷네. 그런 별별 생각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시선을 두는 순간 그 사람은 안 본 것만 못한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은 아니게 되었다는 거다.

그가 좋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나 또한 비와 눈과 햇살을 좋아해서다. 늘 반복되지만, 날마다 달라지는 구름의 조각을 가지는 하늘과, 우산에 떨어지는 비의 소리와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산 안에서 듣는 그 소리가 참 좋다. 우산을 뚫어버릴 듯 많이 올 때는 퍽 난감하지만 말이다.

*

이런 것들을 좋아해 나는 필름카메라로 찍는다. 비가 내려서 ‘그냥’. ‘그냥’ 그날 햇살이 유독 예쁜 것 같아서. 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려서. 생각의 흐름에 따라 찍어버린다. 그럼 마찬가지로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얼마 전에 인화를 했는데, 친구가 관심이 갔는지 다가왔다. 구경하다 이내 실망한 것 같았다.

“죄다 나무랑 꽃이랑 하늘이랑 뭐야 고양이 사진은 왜 찍었어? 아는 고양이야?”

이게 다냐고 물었다. 이게 다라고 말했다. 정말 다인걸.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해.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무용한 것들. 근데 이런 것들을 자세히 보면 새롭고 예뻐. 평범하다고 일상적이라고 무용하다고 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그래서였다. 사울 레이터 제작 노트를 처음 보자마자 마음이 끌렸던 것이. 어떤 것을 볼 때 내 마음을 유난히 끄는 것들이 있다. 전시회의 수많은 작품 중 하나일 어떤 작품에. 수많은 책 중 하나일 뿐인 책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노래 중 하나일 한 노래에. 꽂혀 오래도록 머물고 듣는 것. 어떠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고, 나만의 기준이겠지. 뭐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는 기준. 사울 레이터의 사진과 글 또한 그랬다. 읽고 난 후의 감정도 그렇다. ‘그냥’ 그의 사진이 좋았다. 그의 가치관이 좋았다. 그 자체로 좋았다.


사울레이터_입체700px.jpg
 




*
<목차>

작품
Fashion-Street-Color-Drawing-Nude

해설
화가의 면모 · 마지트 어브
뉴욕 나비파 · 폴린 버메어
뒤로 몰래 다가와 왼쪽 귀를 간질이는 사진 · 시바타 모토유키
아름답던 시절의 아름다운 순간의 기록 · 권정민

사울 레이터 연보



 
14기 김현지.jpg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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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dbswnrl
    • '아마 내 옆모습과 뒷모습보다 남의 옆모습과 뒷모습을 평생 더 많이 볼 것이다'라는 문장이 인상 깊습니다. 저도 사울레이터 에세이집을 보면서, 뒷모습에 대해 언급된 페이지에서 꽤 오랫동안 시선을 떼지 않았습니다. 글에 쓰신 것처럼 매일 화려한 것과 앞모습, 정면, 무언가 확실한 아이덴티티가 있는 것이 시선을 끄는 요즘이라 그런지, 뒷모습에 대한 그의 사유가 더 참신하고 좋았던 것 같아요.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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