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글을 쓴다는 것

나를 넘어서는 글을 쓰고 싶었다
글 입력 2018.09.04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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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쯤 전에 아트인사이트에서 처음 에디터로 활동할 무렵 “글을 쓴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어쩌다보니 글을 계속해서 쓰게 됐지만 그나마도 자신이 없다고 고백하는 내용이다. 인생에 처음으로 어딘가에 꾸준히 글을 게재하게 되다보니 이래저래 글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던 모양이다. 그 당시에도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러웠던 글이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그때의 고민이 생생해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 이후 에디터로, 문화리뷰단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책과 영화와 전시와 공연을 보고 리뷰를 썼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은 어려웠고, 스스로 선택한 것인데도 강제인 것처럼 느낄 만큼 괴로울 때도 많았다. 그러나 책이나 공연을 볼 때의 생각과 느낌을 글 속에 꼭꼭 눌러 담다보면 문화예술에 대한 시야가 차츰 넓어지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미술이나 전시에 더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도 생각해보면 이런 글들이 차곡차곡 쌓이다보니 저절로 알게 된 것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던 만큼 수확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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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연히, 어쩌면 필연적으로 내게 찾아온 글쓰기에 대한 애증을 끝까지 갈고 닦으며 지켜나가겠다는 다짐의 글”이라 끝맺었던 2년 전의 문장을 보면 복잡한 마음이 든다. 나는 분명 성장했지만 성장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는 노트북을 쳐다보는 것조차 많이 힘들다. 프리뷰나 리뷰를 쓰는 것은 여전히 자신이 없고 억지로 뽑아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사놓고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가와사키 쇼헤이의 『리뷰 쓰는 법』을 결국 펼치게 된 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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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른 글쓰기 교본처럼 문장을 다듬고 글을 구성하는 법에 대한 실용적인 지식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가장 내 마음을 흔들었던 부분은 비평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쇼헤이는 비평이라는 것이 ‘가치를 전달하는 글’이라고 정의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의 가치를 남에게 잘 전달하여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 했다. 리뷰 쓰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면서도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머리가 띵하도록 반성하게 됐다. 만약 내가 ‘이 글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만들겠다’는 명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썼다면 지금까지 쓴 수십 편의 리뷰들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개중에는 마음이 뿌듯해질 만큼 잘 썼다고 느끼는 글도,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은 글도 몇 편 있었지만 글을 쓰고자 마음먹고 노트북 앞에 앉을 때마다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이러한 목적의식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서 시작해서 나를 넘어서는 글.” 돌이켜보니 내가 쓰고 싶었던 글도 정확히 이것이었다. 타닥타닥 자판을 치며 만들어나가는 글자 하나하나가 누군가에 마음에 닿기를 그토록 바랐는데. 그래서 “너의 글은 참 재밌어”라는 단순한 칭찬 한 마디에 가슴이 두근두근할 정도로 기뻐하고, 몇 번이고 그 한 마디를 곱씹어보았나 보다. 한편 내 글이 스스로의 마음에도 와닿지 못할 정도로 힘이 없다 느껴지면 자꾸만 좌절하고 의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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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우연히 어디선가 “순간수집가”라는 단어를 만난 후 지금까지도 나를 표현할 때에 그 단어를 사용한다. 나는 나 자신이 통과하고 있는 수많은 찰나들을 수집해내어 글로써 보존하는 것이 가장 익숙한 사람이다. 최근 몇 달 동안 그 익숙함에 질식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래서 익숙함에서 빠져나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한 번쯤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성을 느꼈다. 『리뷰 쓰는 법』과 같이 글쓰기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책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들을 접해보려 노력 중이다. 인풋(in-put)이 있어야 아웃풋(out-put)이 있다는 것은 진리이니까. 이 글은 2년 전의 것과 달리 다짐의 글은 아니다. 다시, 멈춤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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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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