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장 전통적인 일인극의 세계로

'판소리 오셀로' 리뷰
글 입력 2018.09.0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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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납게 쏟아지는 비를 헤치고 관객석에 앉았다.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프리뷰를 썼기에 '오셀로', '처용가', '판소리'가 작품의 큰 테마인 건 알았지만 나의 짧은 공연 관람 경험으로는 좀처럼 함께하는 것을 상상하기 힘든 세가지였다. 이야기가 붕 떠서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을까 괜한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소리꾼 박인혜가 등장해 또렷한 발음으로 '비 오는데 오느라 수고 많았다'며 '원래 이야기는 극한 상황에서 들어야 재밌는 법'이라고 운을 띄울 때, 화자 덕에 극에 집중하는 것만큼은 보장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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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등장하는 배우가 한명 뿐인데다가 그 한 명이 역량이 뛰어난 소리꾼이므로, <판소리 오셀로>를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소리꾼 박인혜가 극을 속된 말로 '멱살 잡고' 이끌어간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오셀로', '데스데모나', '이야고'와 같은 이름이 한복을 입은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온다는 이질감도 잠시다. 국적과 인종, 선별, 선악을 넘나드는 박인혜 소리꾼의 뛰어난 연기는 특별한 무대장치 하나 없이도 관객을 극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가장 무고한 피해자에 해당하는 '데스데모나'와 절대악인 '이야고'를 연기할 때의 목소리는 완전히 다르다. 극에서 다른 것이 다 지워져도 소리꾼 박인혜만은 오롯이 남을 정도로 돋보인다.

그러나 극에서 가장 돋보이는 게 소리꾼의 존재 자체라는 사실은 <판소리 오셀로>가 내세운 것들을 생각하면 칭찬이 아닐지도 모른다. 극에서 소리꾼의 역량을 능가할 만큼의 인상깊은 점은 없었다는 뜻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봤고, 대사 하나 하나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박수를 쳤지만 어딘가 모르게 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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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오셀로>가 어딘가 허전한 까닭은 프리뷰를 쓰며 기대했던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판소리 오셀로>는 단순히 텍스트와 형식을 접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안적 세계관으로 '처용가'를 제시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겠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자리에 오른 사람이 스스로 파멸을 향해 가는 이야기는 그냥 들어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덕분에 <판소리 오셀로>는 재미있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기에는 '오셀로' 이외의 요소들이 다소 약한 느낌이다.

극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처용'의 이야기는 오셀로와 함께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이지만 그 영향력이 미미하다. 소통이 부족해 생긴 비극, '오셀로'와 역신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이야기 '처용가'를 '이방인'이라는 키워드로 묶기에는 약간 무리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히려 조선 후기 하층민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나중에는 전 세대의 사랑을 받았던 '소통'의 장르인 판소리와 소통이 부재한 '오셀로'의 세계관을 대비시켰다면 새로운 관점이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단'은 오셀로 이야기를 하는 중간 중간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감상은 오셀로를 접한 사람이라면 보편적으로 느끼는 단순한 안타까움이나 한탄에 가깝다. 처음 강조했던 '동양'과 '여성'은 그 특징이 흐려지고 '오셀로'를 이야기하기 위한 도구에 머무른다. 기계적인 이분법적 해석이나 관점은 물론 문제가 되겠지만 프리뷰를 쓰며 새로운 담론을 만나길 기대했던 만큼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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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를 쓰며 볼 수 있을거라 기대했던 내용은 부족했지만 <판소리 오셀로>는 실험적인 일인극으로서 판소리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판소리가 일인극이라는 얘기는 조금 낯설기도 하다. 일인극이라 하면 왠지 실험적인 극이 자연스레 연상되기 때문이다. 배우는 대부분 한 사람 분의 역할을 맡고 무대 위에 최소 두 명의 인물은 있어야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고정관념이 알게 모르게 꽤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연극'이라 하면 대부분 서양식 근대극을 많이 떠올리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배우가 한명만 등장하는 극은 새롭고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누군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말하고자 할 때 여러 사람이 동원되는 게 먼저였을지, 화자 혼자 서술자와 인물 역할을 다 하는 게 먼저였을지 생각하면 일인극은 어쩌면 가장 오래된 극의 형식일 수도 있다.

<판소리 오셀로>는 판소리가 얼마나 개성넘치는 일인극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우선 기존의 한문 표현으로 가득한 대사를 알아듣기 쉬운 한글로 바꾸었다. 덕분에 내용 이해에 문제가 없었다. 또, 전통 판소리에서 소리꾼이 하는 대사 뒤에 깔리는 음악은 고수의 북소리가 전부이지만 이번 극에서는 악기 연주를 하는 사람만 네 사람이다. 분명 연주하는 건 전통 악기임에도 어우러짐이 진부하거나 지겹지 않고 신선했다. 극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음악 덕도 컸다. 고치고 바꾸기만 한 것은 아니다. 즉흥적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연주자가 추임새를 넣는 판소리의 장점은 그대로 살렸다. 판소리를 여러 모로 조율한 끝에 <판소리 오셀로>는 꽤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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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맞게 그 예술에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판소리 오셀로>에서 아쉬웠던 점들은 그걸 잘 보여준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통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하다.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공연에는 관심이 없고 좀처럼 보러 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러니하게도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전통은 '전통'이라는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아쉬운 점이 있음에도 <판소리 오셀로>가 재미있고 매력적인 극으로 다가왔다는 건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시도가 유의미했음을 말해 준다.

여러가지 전통 예술 중에서도 판소리는 전통에 그저 머물러 있기에는 아까운 장르다.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더 많은 실험적인 극들을 보고 싶다. <판소리 오셀로>가 판소리의 새로운 도전, 그 시작점에 있으면 좋겠다.

 



판소리 오셀로
- 2018 정동극장 창작ing 첫 번째 -


일자 : 2018.08.25(토) ~ 09.22(토)
 
*
09.07(금) ~ 09.09(일)
공연없음

시간
화-토 8시
일 3시
월 쉼

장소 : 정동극장

티켓가격
R석 40,000원
S석 30,000원

주최/제작
(재)정동극장

주관
(재)정동극장, 희비쌍곡선

관람연령
8세이상 관람가능

공연시간 : 80분




문의
(재)정동극장
02-75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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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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