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녀 이야기꾼이 전하는 '오셀로' [공연]

글 입력 2018.09.04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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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판소리 오셀로' 관람을 위해 정동극장을 찾았다. 외딴 섬처럼 검은 무대 한 가운데에 설치된 평상 형태의 설치물에 소리꾼이 고고하게 앉아 존재감을 내뿜었다.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이야기를 전하는 기녀 '단'은 그야말로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네 명의 연주자를 뒤로 하고 혼자서 주어진 공간을 사뿐사뿐 걸어다니며 여유롭게 연기를 소화한다. 그녀는 '전지적 단 시점'으로 자신의 몸짓과 언성을 통해 관객들을 긴장시키고 웃기기도 하며 처용과 오셀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연륜있는 '전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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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단이라는 기녀는 말 그대로 이야기를 스스로 구연해내는 전달자의 역할은 훌륭히 수행했으나 인물에 대한 평가나 자신만의 관점이 담긴 해석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이로써 이 공연을 통해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총 3가지로 정리된다. 여성 화자가 직접 남성 캐릭터를 표현하고 연기한 점과 동양적인 정서가 반영되는 판소리로 서양 고전을 전달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오셀로라는 고전 자체의 교훈이 그것이다.

패션 매거진 마리끌레르는 올해 초 창간 25주년을 맞아 '젠더 프리' 기획을 선보였었다. 마리끌레르는 공식 유튜브를 통해 배우 문소리, 진경, 김소연, 김새벽, 한예리, 최희서, 김향기가 참여한 ‘젠더 프리’ 기획 영상을 공개했다. 배우들은 다양한 영화 속 남성 캐릭터를 자신의 색깔로 소화했다. 남성 캐릭터 중심의 작품이 주를 이루는 현실을 지적하고, 연기에 있어서 ‘성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출처 : 국민일보 기사)

박인혜 소리꾼이 오셀로와 이아고의 대화 장면에서 두 인물을 각자의 특성을 잡아 순식간에 왔다갔다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이 젠더 프리 기획 영상을 떠올렸다. 혼자서 여러 인물을 표현해야하기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단순한 포인트만 잡아내 반복하는 것이 살짝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데스데모나에서 오셀로로, 오셀로에서 이아고로 캐릭터를 옮겨가는 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표현해내는 박인혜 소리꾼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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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는 서양에서 쓰여진 고전이고, 판소리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악이다. 판소리 공연을 제대로 관람한 게 처음이어서 무대 뒤에 보일듯 말듯 신비스럽게 앉아있던 다양한 악기 연주자들과 북을 치는 고수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소리꾼이 창을 하는 도중에 고수가 계속해서 '그렇지!', '어이!' 등의 추임새와 맞장구를 곁들이는 것을 직접 보고 들으니 판소리만의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한국적인 무대 세트와 의상, '휘영청 비춘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커다란 달 조명과 '단'이 꽃가지를 들고 건너는 연못 위의 징검다리 등 극 속의 배경과 연출 많은 부분에서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와중에 '오셀로'의 이야기가 들려오니 이 또한 '판소리 오셀로'가 갖는 개성이 아닐까 싶다.

소리꾼 박인혜 씨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판소리 오셀로'는 '판소리'보다 '오셀로'에 방점이 찍혀 있기를 바란다." 판소리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전달 수단으로서 택한 것일 뿐, 핵심은 이야기와 메시지에 있다는 것이다. '단'의 입장으로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사실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공연을 보면서 한 쪽 구석에서 장이 넘어갈 때마다 화면에 영어로 된 설명 자막이 떴는데, 그 중 기억에 남았던 문장이 있다.

"What we see depends on what we look for"
-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찾느냐에 달려있다. -

이 문장을 작품과 연관해 내 나름대로 해석한 바로는 '사람은 자신이 보고싶은 것을 보게 된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오셀로는 극 후반으로 가면 이아고의 세 치 혀에 휘둘려 자신이 보고 판단하는 것까지 이아고의 말에 휘둘리면서 이미 정해져있던 결론 마냥 데스데모나를 살해한다. 이는 자신이 못 가진 것에 대한 이아고의 질투와 보고싶은 것만 보려한 오셀로가 만들어 낸 파국이다. 우리 주변에도 혹 이아고나 오셀로와 같은 태도를 지닌 인물이 있지는 않은지 경계하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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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에서 단은 다음과 같은 대사로 관객에게 당부하듯 말한다. "여기 오신 여러분도 오늘의 이야기를 허투루 듣지 말고 상상의 물꼬를 신중히 돌리오. 삼키기 전에 그 맛을 가만히 살피오. 사나운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마오." 소리꾼 박인혜는 이 대사에 대해서도 인터뷰를 통해 "인간의 마음에 짐승이 하나 있는데, 이 짐승을 잘 보살펴야 한다. 안 그러면 잡아먹히는 순간이 있고, '오셀로'가 살인에 이른 것 역시 이 때문이다"면서 "임영욱 연출이 원작에 없는 것을 쓴 것이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는 '판소리 오셀로'가 전하려고 하는 메세지라고 한다.

관람 후 원작 오셀로와 작품 관련 인터뷰 기사 등을 더 찾아보면서 추가적으로 더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됐던 작품이었다. 홍보 문구에서 그친듯한 '여성 시각의 재해석'과, 오직 전달 수단으로써 판소리를 채택했다고는 하나 판소리보다 '오셀로'라는 이야기의 비중이 더 다가왔는가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포인트가 있었던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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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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