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청소'를 고찰하다

'청소 끝에 철학' 리뷰
글 입력 2018.09.0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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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청소


솔직히 고백하자면 청소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집 바깥에 있는 개인적인 공간, 예를 들어 사물함이나 책상은 나름 깨끗하게 쓴다고 자부하는데 방 안에만 들어오면 내가 봐도 전혀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 같다. 아마 내 방이야말로 내가 있을 수 있는 공간 중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인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물함이나 책상은 아무리 '나의 것'이라고 해도 공적인 장소와 접점을 둘 수밖에 없지만, 내 방은 문을 닫아버리면 타인은 결코 알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인 것이다. 방에서 긴장을 풀고 휴식하다보면 어느새 청소는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조금 흐트러진 방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편안한 정도의 흐트러짐'이 거슬리기 시작하는 건 한순간이다. 문득 방이 더럽다는 걸 인식하지만 귀찮은 마음에 치우는 걸 미룬다. 미루는 횟수가 늘면 방도 점점 더 더러워진다. 더러워진 방을 보면 더 청소하기가 싫고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다가 벼랑 끝에서야 울며 겨자먹기로 청소를 하는 게 내 일상이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봐도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인지 방을 늘 깔끔하게 유지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청소 끝에 철학>이라는 책이 궁금했다. '청소'라는 소재로 책 한권을 쓸 정도의 사람이라면 얼마나 청소를 자주, 또 즐겨 하는 걸까 하고. 왠지 읽고 나면 청소 습관을 들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청소에 대한 오만가지 생각


청소는 방법이나 빈도는 달라도 누구나 하는 일이므로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일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는 건 은연 중에 그 일을 하찮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청소 끝에 철학>은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을 청소라는 행위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한 바를 풀어낸다. 청소하는 방법이나 정리정돈의 노하우를 소개한 실용서는 많아도 청소를 이렇게 깊게 사유한 책은 드물기 때문에 흥미롭다.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가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제시했던 방법 중 효과적인 것이 두 가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야구장에 가서 열렬한 함성과 응원을 쏟아내는 사람들 틈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으로 주변의 열정적인 기운을 체감할 수 있는 장소를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일주일 내내 집을 대청소하는 것이었다. 구석구석 먼지를 떨어내고, 걸레로 가구와 바닥을 닦고, 쓰레기를 모아 버리면서 무거운 감정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을 덜어내면 그 자리에 에너지를 채울 수 있고 다시 일상을 꾸려갈 수 있다.

222쪽


그 수많은 사유 속에서 청소는 여러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다. 청소는 무언가의 증거이자 원인이며 또 결과이다. 어떤 때는 특정 사회 현상을 보는 렌즈였다가, 누군가를 떠올리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청소를 하면서 '비어있음'의 의미를 깨닫고 상처가 치유됨을 확인할 수 있다. 청소하는 방식의 차이는 개개인의 특성을 보여준다. 중요하지 않은 일로 여겨지던 청소가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었다는 점에서 청소와 성평등을 연관시킬 수도 있다. 동양과 서양이 각각 공간을 인식하는 방법이 다르므로, 청소 방식 역시 달라진다는 것도 흥미롭다. 사회, 문화, 역사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여덟 개의 목차는 청소 하나에서도 엄청나게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청소라는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다 보면 저자가 얼마나 청소를 애정하는 사람인지 잘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청소



청소는 현재에 과거를 치우는 일이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치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흔적이 쌓여 치워야 한다고 느껴질 때가 그 흔적이 치워지는 시점이다. 다시 지저분해지면 그때 또 치우면 된다. 삶도 그렇다.

120쪽


머물렀던 공간에는 나의 자취가 묻는다. 그 자취를 지우는 것은 미래의 내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따라서 청소는 과거에 내가 존재했던 증거를 돌아보는 일인 동시에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내가 하는 행위다.

89쪽


청소에 대한 수많은 생각 중에서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해 청소라는 행위를 설명한 부분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 청소는 기본적으로 때를 지우고 필요가 없어진 물건을 버리면서 진행된다. 그러나 버리고 없애는 것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진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 것도 청소 과정의 일부다. 그러니 청소는 과거를 내다버리는 일이 아니라 과거를 꼼꼼하게 살피고 그것을 현재에 맞게 적절하게 조율하는 일에 더 가깝다. 올바른 청소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는 연속적인 시간을 살아가므로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단절될 수 없다. 이때 청소는 시간을 잇는 다리가 되어 준다. 수많은 추억이 드러났다가 다시 깊은 서랍 속으로 들어가고, 때로는 아예 버려진다. 모든 것을 끌어안고 갈 수는 없는 법이다. 방을 어지럽히던 것들이 하나 둘 제자리를 찾아갈 때 어지럽던 마음도 덩달아 정리가 되곤 한다. 아마 물리적인 공간을 차지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기억을 담은 채 우리의 마음과도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일 거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청소를 하라는 조언은 매우 신빙성 있는 말이다.



미래의 나에게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것은 '현재의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의 나를 말한다. 지금의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소중한 것이다. 예전과 달라진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 과거의 나를 배신하는 것은 아니다. 에전에 소중히 여겼던 것을 버린다고 해서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210쪽


책을 다 읽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너저분한 가운데 버리지 못한/않은 갖가지 공책이며 전시 팜플렛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수많은 '더미' 중 유난히 오랫동안 갖고 있는 게 바로 영화 포스터를 모아 둔 화일이다. 2008년, 2009년 무렵부터 모으던 영화 포스터가 100장을 훌쩍 넘어간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포스터 모으는 게 즐거웠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수집이 의무가 되고 귀찮아지기 시작하면서 모으는 걸 그만뒀다. 이제는 책장 한구석에 쳐박아 두고 거의 보는 일도 없으면서 이상하게 버릴려면 망설여지는, 나의 애물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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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는 미래의 내가 포스터 모으는 걸 그만두게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포스터는 작은 예시에 불과하다. 사소한 취향부터 사고방식이나 가치관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은듯 해도 어느새 나는 변했다. 하지만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는 존중한다. 과거를 돌아볼 때는 후회와 원망이 아닌 그저 청소가 필요하다. 단지 방을 깨끗하게 치우기 위해서 하는 의무적인 청소가 아니라 나의 과거를 돌보고 현재의 나에게 충실하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즐겁지 않을까.

책의 저자는 몇 달 후에 세상이 멸망한다면 청소같은 건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내가 청소를 고민하는 까닭은 미래가 올 것이라고 어느 정도 믿고 있기 때문일 거다. 현재의 나도 미래에는 청소해야 할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현재를 사는 나에게는 지금의 내가 전부다. 어질러진다면 또 치우면 된다는 말은 많은 위로가 된다.






저자 임성민

148*210 │ 4도 │ 면수 224쪽
가격 13,000원 │ 2018년 3월 14일

ISBN 979-11-88248-17-9 03100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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