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리꾼 박인혜의 활약은 훌륭했지만

정동극장, [판소리 오셀로] 리뷰
글 입력 2018.09.0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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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정동극장에서 [판소리 오셀로]를 관람했다. 소리꾼 박인혜의 1인극으로, 조선시대의 기녀 ‘단’이 처용의 이야기를 곁들여 오셀로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줄거리다. 여성과 동양의 관점으로. 앞서 프리뷰에서는 과연 이 극이 어떻게 ‘여성’과 ‘동양’으로 극을 해석할 것인지, 이 거창한 숙제를 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질문을 품은 채 극을 관람했고, 질문에 대한 답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남은 것은 있었다. 박인혜의 열연과 명품 목소리.

조용한 무대에는 4명의 연주자가 앉아있다. 고수를 포함해서 남성 두 명, 여성 두 명이다.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뜻밖에도 극의 유일한 배우, 박인혜는 관객석 뒤편에서 등장한다. 그녀는 여유롭게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으로 돌리고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처용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다리는 아내의 것인데, 나머지 두 다리는 누구의 것인지! 이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누구나 정신이 잠시 아찔할 것이다. 하지만 전설 속의 처용은 여유롭게 노래를 부르며 역신을 감동시켜 몰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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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박인혜 배우, 기녀 ‘단’은 멀리서 온 이야기라며 오셀로를 소개한다.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하나로 질투에 눈이 먼 오셀로가 간신 이아고의 꼬드김에 넘어가 아내를 죽이고 신하를 죽이는 내용이다. 단은 오셀로와 처용이 모두 이방인이라는 것부터 공통점을 찾는다. 그리고 오셀로의 이야기를 감칠맛 나게, 여러 인물을 모두 다른 톤으로 연기해가며 극을 풍부하게 이끈다.

잔잔한 사고는 있었지만 박인혜 배우는 흔들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장식으로 두른 겉치마 끈이 끊어져 바닥에 끌리는 상태로 20분 넘게 연기를 하다가 결국은 접어버린다든지, 화로에 넣어야했던 잔이 바닥에 떨어져 깨진다든지, 중요한 장면에 터져나온 관객의 웃음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 모든 돌발사고에도 불구하고 배우는 흔들리지 않고 내용을 전개했다. 목소리는 쩌렁쩌렁 객석까지 울렸고 각 인물에게는 뚜렷한 성격이 주어져서 인물들이 서로 헷갈리지 않았다. 동화책은 저렇게 읽어줘야한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뿐만 아니라 연주자들의 실력도 무척 좋았다. 연주자들은 고수를 제외하면 아무런 말도 없이 2시간 여 되는 시간동안 자리를 지키며 연주를 들려주었다. 실수를 느낄 수도 없었고, 관악기를 담당하는 연주자는 3가지 악기를 다루었다. 국악 콘서트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음악의 퀄리티, 배우의 퀄리티, 노래의 퀄리티가 모두 높았다.



"그래서, 동양+여성의 시선에서의 재해석은요?"


그러니까, 이 극을 박인혜 명창의 실력과 훌륭한 4인조 국악 연주에 포인트를 두고 홍보했다면 실망이 조금 적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극의 포인트는 ‘동양과 여성으로 재해석한 오셀로’였다. 이 극에서 찾을 수 있는 동양은 창자가 동양인이고 이 극의 형식이 동양의 형식이라는 점밖에 없었다. 이것은 해석이라고 할 수 없다. 응용 혹은 적용 정도가 되겠다. 동양의 가치관이라든지 동양의 정서로 재해석된 오셀로는 찾기 힘들었다.

또한, 여성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것이 아니라 여성이 들려주는 오셀로였다. ‘정조에 목숨까지 바칠 필요가 있겠는가’같은 문장은 재해석이라고 하기는 좀 민망하고 아쉽다. 그건 무척이나 일반적인 수준의 평가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부인의 정절을 가장 중요시 여겨서 아내를 목졸라 죽인 남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주인공을 아주 나쁜 놈으로 몰아가지 않고서야 이 극을 여성적 시각 즉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것보다는 더 시각이 들어갔어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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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박인혜 배우의 역할은 기녀 ‘단’이다. 직업이 기녀인 여성이 보았을 때 여성에게 부여된 정절이란 어떤 의미인지 짧은 대사를 통해서 들려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만약 미리 시놉시스를 읽지 않고 갔다면 단이 기녀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또한, 이아고가 데스데모나를 두고 ‘자기 아버지를 속인 여자입니다’라며 오셀로를 꼬드길 때에는 ‘자신과 연애할 때에는 아버지를 속일 수 있는 능수능란함을 원하지만, 자신과 있을 때에는 마냥 순진하기만을 바라는구나’라며 오셀로의 이중성을 비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런 부분이 없어서 정말 아쉬웠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시각으로 묘사했다고 하기에는 데스데모나를 오지랖 넓은, 그렇지만 다소곳한 여인으로 묘사했다. 가장 의아했던 것은 박인혜 배우가 데스데모나를 연기할 때 장옷을 쓰듯 머리 위에 한복을 걸쳐 얼굴만 내보이는 것이었다. 극에서 해당 옷은 그 자체로도 데스데모나를 상징한다. 데스데모나의 죽음 뒤에 그 옷은 곱게 개어져 서랍 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옷을 어깨에 걸칠 수도 있지만, 조선시대의 정숙한 여인상처럼 머리 위로 둘러 얼굴만 빼꼼 나오게 하는 액션은 데스데모나가 가진 조언자로서의 역할, 오셀로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담대함 같은 것들을 감소시켰다. 한편으론 정숙하지만 한편으로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부하의 복직을 무척이나 졸라대는 여인처럼 그려졌다. 정말 데스데모나가 그런 식으로 복직을 채근하고 졸라댔다면 나라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실수를 한 부하가 데스데모나에게 자신의 복직을 간절히 부탁하는 장면이 간단한 서술로 생략되어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

극을 보고 배우와 연주자들을 향해 누구보다도 열띤 박수를 보냈다. 박인헤 배우가 관객 한 명 한 명 눈을 맞춰준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몰입도 있는 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다음 번에 어떤 고전을 해석, 재해석한다면 그 때에는 판소리의 특성을 살려 화자의 개입이 더욱 적극적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현대적인 가치로 고전에 접근하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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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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