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멀어지는 게 아니라 가까워지는 것, 연극 '당신이 그리운 풍경 속으로 멀어져 간다는 것은'

글 입력 2018.09.05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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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당신이 그리운 풍경 속으로 멀어져 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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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플랫폼 위에 서 있는 상상을 한다. 건너편 플랫폼에 서 있는 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당 역에 도착했다는 알림판을 멀뚱히 쳐다본다.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건너편에 있던 이는 사라지고 없다. 스쳐가는 지하철의 소리와 어둠을 가르는 불빛만이 여기 누군가가 왔다 갔음을 알릴뿐이다. 플랫폼은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거쳐 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발 디딜 틈 없는 도시에서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긴 하겠느냐만, 플랫폼을 떠올리면 치열하다 못해 척박한 도시의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만 같다.
 
이를 더 객관화 하자면, 어쨌거나 플랫폼이란 장소는 ‘이동’을 가능케 하는 곳이다.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고 다시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플랫폼 위에 서서 다가오는 열차를 기다리는 나의 모습은 이동을 통한 생(生)의 표현이 아닐까. 수많은 이들이 이동하고 아주 잠시나마 삶에 대한 숨고르기를 하는 플랫폼은 곧 떠남과 머무름이 공존하는 복합 공간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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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당신이 그리운 풍경 속으로 멀어져 간다는 것은’은 지극히 서정적인 제목에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운 풍경과 멀어짐이라는 서정적인 단어들 속에는 서사가 주는 아련한 감동과 추억보다는 치열하기 그지없는 삶 그자체가 담겨 있다. 작품은 ‘이주’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사실 작품을 보기 전에는 ‘이주’란 거의 이민에 가까운 개념으로 일상을 벗어나 아주 머나먼 곳으로 떠나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작품은 이주를 아주 보편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특정한 누구만이 겪는 삶의 애환이 아닌, 알게 모르게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이주 본연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주의 양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스스로(라 칭하지만 마지못해서가 더 가까운) 떠나온 자발적 이주고, 다른 하나는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은 강제적 이주다. 같은 이주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전자는 ‘이민’의 느낌에 가깝고 후자는 ‘입양’의 개념에 가깝다. 복잡하게 흘러가는 서울 하늘 아래서 이민과 입양은 이주라는 울타리 속에서 오묘하게 교차된다.

연화의 경우는 고려인의 후손으로, 척박한 현실을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서울로 이주했다. 형선은 언젠가 떠날 캐나다 이민만을 꿈꾸며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저 멀리 경상도에서 이주해서 악착같이 돈을 벌고 있다. 연화와 형선은 서로 같은 듯 다른 입장에 놓여있다. 두 인물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으면서도 직장 내 계약문제가 일어날 때 마다 누가 우선해야 하는가에 대한 끝없는 갈등과 고민에 빠진다. 연화는 어떻게든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야 하고, 형선은 떠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해나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경상도에서 온 이방인들은 언제까지나 이 땅이 자신의 일상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어떻게든 삶을 이어지게 하기 위해 발버둥을 계속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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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와 형선의 경우가 아주 운 좋게 발버둥을 쳐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해외 입양아 순주는 그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다. 그저 태어난 자신의 고향이 어딘지 궁금해서 왔을 뿐인데, 그에게 해답을 알려주는 이는 그 누구도 없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치자. 그러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있는가. 그 또한 불확실하다. 순주에게 확실한 것은 그저 고향이라 불리는 이 땅, 이 곳에 서 있다는 사실 뿐이다. 순주와 함께 짝을 맞춰 등장하는 인물은 한나다. 한나는 순주와 달리 해외 입양을 보낸 경험이 있는 인물로, 자신이 낳은 아이를 강제 이주 했다는 사실에 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삶은 연극보다 더 극적일 테지만, 연극 안에서는 연화와 형선, 순주와 한나라는 두 인물의 등장을 통해서 동질감과 이질감 사이에 있는 이주의 모습이 표현된다.
 
이주는 ‘본래 살던 집에서 다른집으로 거처를 옮기’는 행위를 의미한다. 사실 작품 속 인물에게 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집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확실한 공간’의 존재다. 나의 일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이곳, 그곳이 바로 집이자 이주의 목적이 된다. 서울 하늘 아래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결국 ‘자기 존재 증명’에 이르는 길일 것이다. 괜히 많은 시간을 출퇴근에 투자하는 게 아니다. 궂은일이라도 계속해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매일 같이 집을 나와 하루를 꾸려가는 와중에도 이주는 이미 계속되고 있다. 연화와 형선의 재계약 문제가, 순주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일은 모두 이주가 가져다주는 문제이자 현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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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 어디서 밀려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 있다. 이주는 어느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삶을 항해하는 내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지하철 플랫폼 위에서 작품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는 김지나 연출의 말이 새삼스레 공감된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플랫폼에 서 있다. 마음 편히 앉아 쉬지도 못하고 재빨리 또 어디론가 떠나야만 한다. 떠난 그곳에서 겨우 발 디디고 한 숨을 돌릴 때쯤에야 또 다시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이주, 그것은 아주 보편의 이야기다. 아주 보편의 이야기는 지금 당신이 서 있는 플랫폼 건너편 누군가에게도 동일하게 펼쳐지고 있는 삶의 연속이다.

부디 눈앞에 비춰지는 광고판 속 나의 모습을 보지 말고, 가끔은 저 건너편에 있는 겨우 숨 돌리기를 하고 있는 나와 닮은 타인을 바라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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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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