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화장을 하는 이유는 [사람]

단순히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글 입력 2018.09.06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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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성들이 이때까지 당연히 해야만 했던 의무를 벗어던지자는 '탈코르셋'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젠 모두가 잘 아는 단어겠지만 코르셋은 옛날 유럽의 귀족들이 여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허리를 꽉 옥죄는 속옷의 일종이다. 허리가 잘록하고 엉덩이가 큰 것이 여성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이미지이기 때문에 드레스를 아름답게 입기 위해서 그런 속옷을 입었다. 유독 유럽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엄마가 보는 TV 홈쇼핑에서만 봐도 몸매보정속옷을 많이 판매하고, 정말 놀랍게도 매번 매진이 된다. 속옷이 엄청 많은데도 홈쇼핑에서 선전할 때마다 속옷을 사는 엄마를 보고 있자면, 다른 집도 다 그렇겠지..하고 납득하게 된다.

요즘은 그래도 탈코르셋이 화두가 된 덕분에 편한 속옷을 많이 판다. 와이어가 없는 브라라던가, 나시와 브라가 일체형이 된 것, 패드가 없는 브라. 처음엔 무척 불편했고 누가 내 몸을 볼까봐 신경쓰였는데 살다보니 자의식 과잉이었단 생각이 든다. 아무도 남의 가슴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냥 자기 살기 바쁠 뿐.

그리고, 화장을 하는 것이나 예쁘게 꾸미고 다니는 것도 모두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위라며, 더이상 그러지 않을 것을 추구하고 있다. 확실히 요즘 밖을 돌아다니면 내가 대학교 1학년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개강여신'이라는 단어가 유행이었고, 개강할 때쯤 되면 사람들은 모두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옷을 새로 샀다. 정말 충격이었던 게 3학년 1학기에 개강을 하는데, 나는 이미 화석이 되어서 먼지투성이의 학교 돕바를 입고 노트북을 맨 투박한 백팩을 메고 슬리퍼를 신고 터벅터벅 등교를 하는데 내 앞에 어떤 여자가 하늘색깔의 쇼퍼백을 메고, 긴 머리를 찰랑거리면서 또박또박 하이힐을 신고가는 것을 보았다. 1년하고 6개월이 지난 아직도 그 여자의 모습이 생생할 정도로 충격이었다. 위축이 될 정도였다고 할까? 아니면 가방이 너무 예뻐서 부러웠다고 할까. 나도 덩달아 옷을 사게 되고 화장품도 사고 렌즈도 사고 한동안 학교를 꾸미고 다니다가 일주일 지나서 다시 원래의 먼지투성이의 나로 돌아왔다.

근데 그게 정말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걸까? 어떤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남자들이 많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 여성이 있다. 그 여성은 회사에 익숙해져 더이상 스스로를 꾸미고 나오지 않는다. 화장도 하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고 옷도 대충 입고 다닌다. 그러다가 신입으로 여성이 새롭게 등장하는데, 그 사람은 화장도 예쁘게 하고 머리도 예쁘고 옷도 예쁘다. 다음 날부터 회사직원 여성은 자신을 꾸미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를 하며 글쓴이는, '여자들이 꾸미는 건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레깅스를 입는 것을 좋아한다. 일반적인 바지나 치마와는 다르게 레깅스는 몸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엉덩이라인부터 무릎옆에 튀어나온 살과 우락부락 다져진 종아리 근육까지 모든 라인이 그대로 나타난다. 가장 아름다운 옷이며, 그러면서도 가장 편한 옷이다. 옷에 나를 끼우는 게 아니라 나에게 옷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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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이틀 전 내 사진이다.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 내가 하체비만이라 허리는 25사이즈도 커서 못 입는데, 허벅지가 유난히 굵어서 청바지와 핫팬츠 등등의 옷을 입지 못한다. 핏이 정말 엉망이 된다. 하지만 레깅스는 그렇지 않다. 어느 누구라도 입을 수 있는 옷이다. 하체 운동 직후라 펌핑되었다는 점을 고려해도, 나보다 상하체의 차이가 심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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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용산역 아이파크몰에 레깅스를 사러 아디다스 매장에 들렀는데 그날 치마를 입고있어서 직원이 내 허벅지가 얼마나 큰 지 몰랐나보다. 저지를 하나 입었는데 xs 사이즈도 좀 헐렁헐렁했다. 그래서 레깅스도 xs사이즈를 내주는 거였다. 근데 또 xs사이즈를 매장에서 입었을 때는 잘 맞았다. 그래서 사왔더니 확실히 남들이 입어서 늘어진 옷과 새 옷은 달랐다. 너무 작아서 골반 부분에서 요즘도 낑낑 거리면서 입는다. 근데 또 막상 입으면 정말 편하다. 하지만 다음번에 레깅스를 산다면 s사이즈를 사야겠다.

나처럼 하체비만이 아닌 사람의 경우에도, 일반 청바지가 너무 크다거나 불편하다거나 해서 레깅스를 입는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편의에 의해서가 가장 큰 동기가 된다.

레깅스와 관련해서도 여성의 몸매를 왜 보여주려고 하냐, 는 삐딱한 시선의 질문이 있었다. 연예인 손나은씨가 입은 레깅스가 완판되었을 때 한창 레깅스가 이슈였는데, 뉴스 기사를 보면 '왜 레깅스를 입는지 모르겠다, 민망하다, 수치스럽다' 그런 식의 댓글이 많았다. 왜 입는 당사자는 당당한데 너네가 수치스럽냐 싶었다. 물론, 그런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절대 소수는 아닐 것이다.





이제는 나이가 꽤 많아져서 더이상 새내기처럼 화장을 하거나 꾸미고 다니지 않는다. 마트를 갈 때도 생얼로 가고, 학교를 갈 때도 그냥 티셔츠 하나에 레깅스 하나만 입고 간다. 집과는 거리가 좀 있는 종로 한복판에 있는 치과에 갈 때도 꾸미지 않고 대충간다. 그러나 중요한 약속이나 데이트, 봉사활동, 대외활동 등의 외부의 일이 있다면 나는 화장을 하고 최대한 꾸미고 간다.

일반적인 외출과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는 나에게 갖는 의미가 다르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기때문은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종로에 가도 교정 치료를 위해서라는 목적을 갖는다면 화장을 굳이 하지는 않으니까. 한번 봉사활동이 있던 날에 화장을 하고 치과에 갔더니 간호사가 나를 못 알아볼 정도라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혼자있는 것을 즐긴다. 혼자있는 게 외롭긴 하지만, 그게 인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는 외로움에 좌절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극이나 전시회도 거의 혼자 다니는 편이고, 음식도 혼자 먹는 편이다. 외롭다고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혼자인 순간 나는 진정으로 나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있는 시간에는 바깥활동을 하더라도 굳이 나를 꾸미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나라는 것을,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의 나와 집 밖에서의 내 모습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다만 유일한 차이라면 집 안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호피무늬의 레깅스를 입지만 밖에서는 아디다스나 나이키 레깅스를 입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도 남의 시선을 의식한 행동이기는 하다. 내가 진짜 나로 존재한다고 당당히 말하려면 밖에서도 호피무늬의 레깅스를 매일 입을 수 있어야 하겠지만 큰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원하지 않아서 요즘은 자제하는 편이다. 그래서 제일 무난한 브랜드의 옷을 입게 된다.

데이트를 할 때 꾸미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일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남자친구의 옆에 있을 때, '그래서 저 사람과 사귀는구나'하고 납득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와 밖에서 데이트를 하는 시간이 내가 가장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이다.

다른 친구들과, 또는 바깥일정이 있을 때 화장을 하는 이유는 약속을 준비하는 행위이다. 물론 예뻐지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나는 혼자있는 시간엔 최대한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다. 태초부터 이기적이고 나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남과의 약속을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타의에 의한 약속들이 많이 생기는데 평소에 약속날짜까지는 그 약속을 굳이 생각하지 않다가 약속시간 한두시간 전부터 그 사람을 만나거나 그 일정을 수행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먼저 식사를 한다. 나는 섭식장애가 있어서 식사약속은 최대한 잡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공복감, 4시간 간격으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약속 직전 시간에 밥을 먹어서 최대한 그 시간 간격을 좁혀야 한다. 식사 후에는 설거지를 하고, 양치를 하며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며 집과 나 모두 깨끗해진다. 그리고 늘 같은 순서로 로션을 바르고 수분크림을 바르고, 비비크림을 바르며 피부화장을 끝낸다. 그리고 뷰러로 속눈썹을 올리고 마스카라를 칠하고 섀도우를 바른다. 뭔가 더 날카로워보이고 싶을 때는 아이라인도 그리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립을 바르고 옷을 입고 외출 준비를 한다. 늘 그렇듯이 30분이 걸린다. 식사시간까지 합하면 50분이다.

그리고 그 일련의 동일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생각한다. 내가 한두시간 뒤에 만날 사람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지에 대해서. 하지만 생각을 하면서도 아무 생각이 없다. 나는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서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더이상의 생각이 나아가지 않는다. 그냥, 이런 이런 사람을 만나겠구나. 오늘 봉사활동은 또 스트레스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만약 그 시간이 없다면 나는 준비되지 않은 채 약속 장소에 떠맡겨지겠고,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할 것이다.

나에게 화장은, 혼자인 세계에서 나와서 타인을 만나는 경계가 되는 행위인 것이다.





요즘 남자친구가 인턴을 하게 되어서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오늘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겹쳐서 만나 두시간 정도 남자친구가 식사를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도 보통 커플이라면 오랜만에 만나서 저녁을 같이 먹겠지만 남자친구는 3년째, 나는 6개월째 식단조절 중이라 각자에게 명확한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같이 먹지 않는다. 대체로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 오후가 되면 식사를 모두 끝낸 상태고, 남자친구는 밤에 활동하는 편이라 내가 저녁을 먹으면 남자친구는 아침을 먹는다. 요즘은 그래도 인턴 생활로 남자친구도 아침형 인간이 되긴 했지만 '먹는 약속'을 따로 잡지 않으면 보통 내가 남자친구의 식사를 지켜보는 시간을 가진다. 아마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일년 가까이 한 습관같은 일이라서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밥을 먹는 걸 보는 게 즐겁다. 친구들과 만나면 밥약속이라던가 디저트를 먹어야 하는데 남자친구와 함께 있으면 '먹어야 한다는' 강박이 없어서 마음이 편하다. 아마 그렇기에 내가 그와 이렇게 오래 사귈 수 있는 거겠지. 그리고, 밖으로 데이트를 나가지 않고 집에서 데이트를 할 때는 내가 혼자인 상황과 남자친구가 함께 있는 상황이 거의 동등한 상태라 화장을 안하고 있을 수 있는 걸거다.

어쨌든 남자친구가 나에게 왜 자기도 안 만나는데 화장을 했냐고 삐진 척을 했다. 원래부터도 데이트할때만 화장을 했어서 그런가 다들 내가 화장을 하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 같다. 데이트를 할 계획도 없었는데 화장을 하고 있어서 질투를 했던 것 같다.

오늘은 아트인사이트 대표님과 티타임을 가졌다. 처음 가보는 부천 송내역까지 가서 티타임을 갖기 위해 화장을 했다. 과연 어떤 자리일지, 어떤 분위기의 카페일지. 대표님은 어떤 사람일지. 나는 또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이 더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나에게 가장 집중하는 순간이자,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연결을 위해 나아가는 자리. 나는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스스로를 그리고 만들어가는 시간이다. 지하철 안에서는 오랜만에 연락된 동기언니와 카톡을 열심히 했고 내릴 때가 다 되어서야 지도를 켜고 길을 찾아갔다.

나도, 잘 보이기 위해서, 어떨 때는 강의 마지막 날 발표를 해야하기 때문에. 가끔은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 화장을 억지로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 날과 오늘같은 날은 마음가짐이 다르고, 나의 모습도, 스스로를 인식하는 체계도, 준비된 마음가짐조차 달라진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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